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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Oct 30. 2022

배달의 수행

9. 경비원 할아버지의 보폭

도로 옆 바이크를 주차하고, 두꺼운 잠바를 목 끝까지 덮고 핫팩으로 손을 녹이고 있었다. 한강 주변 바람이 옷깃 틈 사이로 들어와 칼로 쑤시는 것 같았다. 배달 건수가 한참 없다가, 저녁 무렵 주문을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이촌에서 한남동으로 주문 3건을 잡고 출발했다. 한남동은 허름한 재개발지역과 부촌이 바로 옆에 붙어있다. 부유한 빌라촌은 참 까다롭다. 보안은 이중삼중 장치로 배달하기 쉽지 않은 구역이다.


음식을 들고 데스크에 있는 경비원에게로 다가갔다. 남색 복장의 고령의 할아버지는 깡마른 체구였다. '배달 왔습니다. 올라가도 되죠.' 할아버지는 나를 제지하더니, '혼자 가시면 안 돼요'. 보통은 들여보내 주는데, 여기는 달랐다. 




열쇠를 쥐고서 할아버지를 뒤따라 갔다. 그는 고객 현관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노란색 머리의 젊은 남자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행동이 좀 이상했다. 보폭은 짧고 어깨가 말려들어가 있었다. 


어디 불편하신가? 고령의 할아버지는 20대 젊은 청년에게 고개를 연신 숙이며 말을 했다. 나는 음식을 전달하고 그를 따라 다시 내려왔다. 짐작컨대 노란 머리 청년은 아이돌 하는 연예인 같았다. 나는 그보다 할아버지의 행동이 기억에 잊어지지 않았다. 


사극에서 나오는 내시의 발걸음이었다. 왜 그렇게 굴욕적인 자세로 그를 대할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뒤돌아가면서 내심 궁금했다. 퇴근 후 그 할아버지 모습이 머리에 떠나질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다.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과거에 한 번은 가르침을 받으러 유명한 분을 만나러 갔다. 그때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치료가 필요한 시기였다. 환자와 다름없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 아주 높은 위치에 있었고, 그가 나를 부를 때 난 총총걸음으로 다가갔다. 내가 필요했던 것을 그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없는 힘을 가진 이에게 나 자신이 움츠려졌다. 졸았던 것이다.


문제는 무지함과 가난, 즉 노력 없이 지식과 돈을 가지려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굽신거렸다. 이제는 졸지는 않는다. 내가 왜 그런 행동과 습관을 알게 되었다. 굽은 어깨가 펴지고 보폭이 넓어졌다. 허리가 펴지고 눈빛이 살아났다. 처음에 할아버지 경비원의 행동이 측은해 보였었다. 그 모습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니, 나 자신을 배달한 것 같다. 조금 더 성숙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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