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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네이트 Dec 19. 2017

설국을 읽고 한마디...

                                                                 

85번째로 읽게 되는 책 입니다.


 아이 학교에서 권장한 도서 中 또 한권을 읽게 됩니다. 정작 아이는 읽지 않는데 혼자만 읽고 있는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암튼 그렇게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동일한 문화권에 있어 읽기는 어렵지 않았으나 읽은 후에 더욱 난감함이 밀려온 책이 아니였나 싶기도 합니다. 눈과 온천이 어떨것이라는 그림은 그려지나 그 속에 시마누라, 요코(그나마 이 둘은 어떨까에 대한 상상이 되어지지만), 고마코의 연상의 쉽게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책을 읽는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약간의 그로테스크 한 책의 표지를 가지 민음사의 책입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 바닥이 하애졌다. 

신호소가 기차에 멈춰섰다'  


 길을 떠납니다. 아마 지금의 사는 곳의 날씨와 비슷한 시기에 시마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현실과는 다른 세상은 눈의 고장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아마도 시마무라의 현실이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눈의 고장으로의 설레임이 전혀 있어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여행을 떠났고, 그 안에 고마코가 있을 뿐입니다. 흥분, 설레임, 사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회피, 그리고 그 회피속에 새로운 시간과 장소에 발걸음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흥분, 설레임, 사랑은 어짜피 '헛수고'일 테니까요.


 '유키오와 고마코 그리고 요코', 유키오를 중간에 둔 어쩌면 아무런 연관이 없을 수도 있는, 그들의 관계속에 역시 드러나는 것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소문에 의한 유키오의 요양비를 벌기 위한 고마코의 게이샤 입문, 죽음으로부터의 회피 불가능의 인식속에 간병, 그리고 성묘. 그러나 동생을 챙기려는 의지와 죽음. '헛수고'를 벗어나려는 약간의 의지는 동생의 부탁 이라는 유일한 동기가 있었지만, 토교행의 언급과 실현 불가능은 어쩌면 모든 것의 '헛수고'의 반증이며, 이는 '헛수고'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유키오도 마찬가지의 헛수고를 마무리 했지만, 고마코만은 아직은 그 헛수고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시마무라라는 기대와 일기와 독서노트 샤미셍의 연습이라는 얇은 동기부여가 있기에, 그래서 시마무라는 떠나야 하고, 떠남으로 인한 재회에 대한 동기부여가 그녀의 헛수고를 유지하게 합니다.


 요코는 유키오를 돌볼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묘지에 성묘를 갈 수 밖에는 없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햄릿이 부친의 살인범인 삼촌을 동료(오외디푸스 컴프렉스-부친살행에 이른다고 합니다)라는 생각에서 처럼, 요코는 요키오의 죽음에서 자신의 죽음을 이미 예견하고 자신을 돌보는 것 처럼,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방문하는 이의 부재를 슬퍼하여 그의 묘를 지킬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요코에게는 돌봐야 할 동생이 있지만 실제로는 돌보지 못하는 동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책에 등장을 하지 않습니다. 요코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그래서 그녀는 이미 죽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시마무라의 '헛수고'는 무용에 대한 번역으로 대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헛수고'로 부터의 해방이 바로 설국으로의 여행입니다. 그리고 '헛수고'의 끝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설국와 지지미를 생각해봅니다. 시마무사는 눈이 내리는 시기에만 이 도시를 방문합니다. 그의 방문은 'Not Always'가 아닙니다. 일상의 헛수고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시기가 설국의 방문입니다. 그리고 지지미를 만드는 곳을 방문합니다. 오랜 시간을 버틸수 있는 옷재료들, 그러나 그 속에서 그는 흥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미 일상이라는 헛수고를 버리고 온 해방터이기에 그것은 팩트와 이상의 차이속에서 그나마 사그러 들게 됩니다.

 당위와 욕망의 저울질을 보게됩니다. 처와 자식이라는 당위와 고마코라는 혹은 요코라는 욕망속에서 우리들의 현실을 보게됩니다. 사랑은 당위성이 되고 당위성은 해방의 욕구로 불활하는 모습, 그리고 사랑이 당위성이 되려 할때 시마무라는 사랑을 떠나려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설국 역시도 시마무라의 개입으로 인해 일상이 되어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마무라는 그 개입에서 벗어나려 할 때 요코의 죽음이라는 새로운 개입이 일어나게 됩니다. 시마무라의 선택이 어떻게 될지...


 '밤의 밑 바닥이 하애졌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이 어둠입니다. 개인으로의 당위와 니즈 사이에 우리는 어쩌면 점점 당위라는 것의 늪속에서 헤메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쓴이의 마음과 읽는 이의 마음이 같지 않아도 관계없이 읽을 수 있음이 바로 소설이 주는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헛수고'가 계속 머리에 남는 건, 아마 나의 존재감이 심한 바람속의 촛불이라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서정적인 표현이 그리 아름답지 않게 다가옴 역시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https://blog.naver.com/2035ic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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