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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자 Dec 29. 2016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5가지 작품 4편

오늘은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5가지 작품을 살펴보겠습니다.


16. 아기 예수의 구유 (Crib of the Infant Jesus), Gallery # 306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306번 방은 다양한 유럽의 중세 (5-15세기) 미술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기독교 도상을 주제로 만들어져있으며, 중세와 고딕미술양식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아래 이미지에 보이는 작품은 아기 예수를 위한 요람으로 15세기 남부 네덜란드에 있는 브라반트 (Brabant)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른 편에서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의 역사를 설명드린 적이 있는데 브라반트는 공국 (Duchy of Brabant)으로서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였다가 부르고뉴 네덜란드 (Burgundian Netherlands) 소속으로 1482년 부르고뉴 공작부인 메리 (Mary of Burgundy)가 죽으면서 합스부르그 가문의 스페인령 네덜란드 (Spanish Netherlands)로 편입됩니다. 지금 이 지역은 벨기에의 영토이지만 1995년 네덜란드어를 쓰는 지역,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 두 언어를 다 쓰는 지역으로 분할됩니다. 아래의 요람은 혼돈의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인거죠.

크기가 13 15/16 x 11 3/8 x 7 1/4 in. (35.4 x 28.9 x 18.4 cm)로서 별로 크지 않고, 요람 자체는 나무로 만들어졌고, 배개와 이불은 실크, 금실, 진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15, 16세기 유럽에서 아기 예수의 요람 모형은 인기가 많은 종교의식물로서 주로 수녀원에서 새로 수녀가 되는 분들에게 주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요람은 벨기에의 뢰번 (Leuven; 프랑스어로는 루뱅 Louvain; 1425년 루뱅 카톨릭 대학이 설립된 브라반트 공국의 실질적 수도였음)에 있는  대 베긴회 (Grand Béguinage of Leven)지역에서 발견된 것인데, 이 지역은 12세기부터 수녀는 아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독신으로 사는 여성들 (Beguine; 베긴회 수녀로 불림)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습니다.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에서 차로 30분 정도 가면 나오는 지역으로 역사보존지구로 중세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유명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요람의 머리맡과 발끝에는 동방박사의 경배 (The Adoration of the Magi)와 예수의 탄생 (The Nativity)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침대기둥에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등장하는 도상에 자주 나오는 4명의 천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세상에 온다는 것을 천사들이 알리게 되는데, 네 무리의 사람들에게 그 계시를 보여줍니다.세례 요한의 아버지 즈가리야 (Zechariah, the Father of John the Baptist), 에수의 어머니인 메리 (Mary, the mother of Jesus), 메리의 남편인 요셉 (Joseph, the husband of Mary) 그리고 베들레헴의 들판에 있었던 한 무리의 목자들 (a group of shepherds on a field in Bethlehem of Judea)이었죠.

 

진주와 금색실로 수를 놓은 비단 침대보 (coverlet)에는 예수의 가계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새의 나무 (Tree of Jesse) 도상으로 베들레햄의 이세 (Jesse of Bethlehem)로부터 시작되는 형태로 중세에 예수 가계의 족보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많이 등장하고,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에도 많이 보입니다. 배개에는 하느님이 어린 양 (Lamb of God)에 머리를 기대는 모습이 수놓아져 있는데 이 도상 역시 중세에 등장한 도상입니다.

비엔나와 베를린의 수집가들 손에 있다가 1930년대에는 나치에게 압수당하기도 했던 이 작은 요람은 최종적으로 뉴욕으로 오게 되었고 1974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됩니다. 실제 아기 예수를 누이기 위한 요람이 아니라 유물함 (reliquary)으로 쓰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여러 성인들의 유물함이 교회나 수도원, 수녀원에 있어서, 성지순례의 거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성인의 시체 뿐 아니라 성인이 입었던, 옷, 심지어 머리카락 몇 가닥이라도 발견되면 화려한 유물함을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이 요람도 분리가 가능해 침대보를 걷어 내면 빈 공간이 나오고 여기에 예수와 관련된 물건을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17. 마리아 막델레나의 유물함 (Reliquary of Mary Magdalene), Gallery #306


계속해서 같은 방의 중세 유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작품은 14, 15세기 경 북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Tuscany)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구리를 도금한 것으로 가운데 수정 (rock crystal)으로 만든 용기가 있습니다. 1917년 제이 피 모건 (J. P. Morgan)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중한 것입니다.

유물함 (reliquary)은 성인과 관련된 물품을 보관하는 용기인데, 이 유물함의 경우에는 가운데 수정으로 만든 타원형 용기안에 마리아 막달레나의 치아가 들어 있습니다. 보이시나요?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지켜본 증인으로 중세 기독교 미술에서는 성모 마리아 다음으로 가장 많이 표상된 인물이었습니다. 중세에는 다양한 성인들의 숭배문화 (cult)가 있었고 마리아 막달레나도 그 중 한명이었습니다. 동방정교회에서 그녀는 에페소스 (Ephesus)에서 죽고 그녀의 유물 (relics)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고 하지만 중세 로마 카톨릭교에서는 남부 프랑스에서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메트로폴린타 미술관에서는 수정 용기안의 치아가 인간의 치아임을 확인하는 의사의 편지를 가지고 있지만, DNA 검증을 위해 꺼낸 적은 없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달걀모양의 수정용기가 무슬림들이 향수병으로 만든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탈리아의 장인들이 유물함의 용도로 바꾸어 사용한거죠.

특히 중세시기 프로방스 (provence)지역에서 마리아 막달레나 숭배문화가 있었는데, 그녀의 유물이 최초로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은 1050년 부르고뉴 (Burgundy) 지방의 베즐리 수도원 (Vézelay Abbey)에서 였습니다. 액상 프로방스 (Aix-en-Provence)의 예배당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진 마리아 막달레나의 유골을 베즐리로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58년에 교황 스테파노 9세 (Pope Stephen IX)가 그녀의 유물의 신빙성을 선포하면서 유명한 순례지가 됩니다.

중세시기 가장 유명한 순례길은 예루살렘, 로마, 그리고 스페인의 산티아고에 있는 성 제임스 성당으로 이어지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 (Camino de Santiago; Road to Santiago)’이었습니다. 바로 이 순례길의 출발지가 마리아 막달레나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고 알려진 베즐리 수도원의 교회였습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유적지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유물함 윗부분에는 작은 원반 모양으로 앞, 뒤로 성경에 나오는 두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예수의 탄생 (The Nativity)이 오른쪽에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The Crucifixion)이 유리 장식 기법 중 하나인 에글로미제 (verse églomisé; a reverse-glass painting technique) 방식으로 그려진 것으로 무늬가 앞에서 보이도록 뒤쪽에 도료를 칠하거나 금박을 입힌 것입니다. 중세 기독교 미술품의 상당수는 수도원이나 수녀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에글로미제 기법은 특히 이탈리아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승 (Franciscans)들이 주로 썼던 기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원반 자체도 유물함 (reliquary)으로 프란치스코회의 성인들인 아시시 (Assis)의 성 프란치스코 (St. Francis), 성 클라라 (St. Clare)등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유물함이지만, 여려 성인들의 유물함이기도 합니다. 맨 윗부분, 중간 부분, 아랫부분이 별도의 유물함으로 각각 다른 시기에 만들어져서 합쳐진 것입니다.


18. 작센 왕자 크리스티앙 1세의 갑옷(Foot-Combat Armor of Prince-Elector Christian I of Saxony), Gallery # 371


크리스마스하면 가족과 주고받는 선물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쇼핑을 합니다. 남편에게 해 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 있으신가요? 아래의 갑옷은 브란덴부르크의 소피 (Sophie of Brandenburg)가 그녀의 남편 크리스티앙 1세 (Christian I, 1560-1591)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갑옷입니다. 크리스티앙 1세는 1586년부터 죽을 때까지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 (prince-elector)중 한 명으로 황제를 선출하는 역할을 맡아 황제 다음으로 가장 높은 위계에 있었습니다.

독일의 작센 (Saxony)의 선제후였던 그는 베틴가 (House of Wettin)의 후계자였습니다. 베틴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18년에 왕이 퇴위하면서 왕가의 역사는 막을 내립니다. 그는 1582년 드레스덴 (Dresden)에서 브란덴부르그 (Brandenburg)의 선제후이며 호한졸레른 가문 (House of Hohenzollern)의 요한 게오르그 (John George)의 딸인 소피 (Sophie of Brandenburg, 1568-1622)와 결혼합니다. 남편이 31세로 죽은 후, 당시 8세였던 아들 크리스티앙 2세 (Christian II, 1583-1611)를 대신해 1591년부터 섭정을 합니다.

 

호한졸레른 가문은 독일 남부의 슈바벤 (Schwaben; Swabia) 지역의 귀족가문으로 튀빙겐 (Tübingen)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호한졸레른 성 (Hohenzollern Castle)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1415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오스만제국과의 싸움에서 전승을 쌓아 브란덴부르크 지역을 하사받고 브란덴부르크 후작의 지위를 갖게 됩니다. 호헨졸레른 가문은 슈바벤의 카톨릭 집안과 브란덴부르크의 개신교 집안으로 나뉘는데 슈바벤 집안은 루마니아의 왕실을, 브란덴부르크 집안은 프로이센 공작 가문으로 후에 프로이센과 독일 왕실 가문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독실한 루터교도 (orthodox Lutheran)였던 소피는 드레스덴에 있던 프란체스코 수도원을 1610년 루터교 교회로 바꾸고 성 소피아 교회 (Sophienkirche; Saint Sophia’s Church)라고 이름짓습니다. 이 교회에는 1725년과 1747년에 바흐가 연주했다고 알려진 실버만 오르간(Silberman organ)이 있었습니다. 1945년 2차세계대전 중 교회가 폭격을 당하며 오르간도 파괴되었습니다. 1960년대 동독시절 그나마 남겨져있던 잔재마저 다 허물도록 결정되고 재단만 드레스덴의 다른 교회로 옮겨집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갑옷은 소피가 남편인 크리스티앙 1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1591년 슈바벤의 아우크스부르크 (Augsburg)의 갑옷 장인 안톤 페픈하우저 (Anton Neffenhauser)에게 위탁한 것입니다. 기마용 갑옷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결투를 위해 만들어진 갑옷으로 16, 17세기 유럽에서 인기가 많았던 운동경기를 위해 착용하는 갑옷입니다. 허리까지 오는 장막뒤에서 창이나 칼로 결투하는 것으로 하반신 갑옷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해 1월에 막내딸을 출산한 소피의 이 크리스마스 선물은 남편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크리스티앙 1세가 생일을 한 달 가량 앞두고 1591년 9월에 사망한거죠.

가슴에는 베틴가문의 문장인 루타 (rue; Ruta graveolens; herb of grace)라고 불리는 식물의 문양이 세겨져 있습니다. 얼굴의 투구 아랫부분에는 아우쿠스부르크의 상징인 전나무 방울 (Augsburg fir cone) 문양이 세겨져 있습니다.

남편에게 전달하지 못한 이 선물은 대대로 가문내에서 물려지다가 작센왕국의 마지막 왕인 프리드리히 3세 (Friedrich August III, 1865-1932)가 1918년 왕위에서 물러나며 작센왕국이 작센주가 됨에 따라 작센주의 소유물이 되었다가 1925년 베틴가문으로 넘겨지고 딜러에게 팔면서 1927년 미술품 수집가이자 볼티모어에 있는 월터스 미술관 (The Walters Museum)의 설립자 헨리 월터스  (Henry Walters, 1848-1931)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합니다. 가업을 이어받아 철도사업을 했던 월터스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이사회 위원이기도 했습니다.


19. 장식용 잔 (Standing cup with cover), Gallery # 533


중세와 르네상스시기 유럽에서 남편에게 갑옷을 선물했다면 아내에게는 뭘 선물했을까요? 아래의 장식용 잔은 1695-1700년 경에 독일 아우쿠스부르크 (Augsburg)의 은세공 장인이 붉은색 유리 (Gold-ruby glass; cranberry glass라고도 함)로 만든 것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붉은색 유리는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에 쓰이기는 했지만 식기나 용기를 만들기 위해 쓰인 적은 없었습니다. 17세기말 독일 포츠담의 화학자가 브란덴부르크 공작 (Duke of Brandenburg)의 후원아래 용기용으로 실험을 완성하며 붉은색 유리가 식기와 용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술은 금방 알려져 독일의 바이에른 (Bavaria)주의 프라이징 (Freising)시에 있는 작업장이 여러 종류의 장식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붉은색 유리로 만든 장식품들을 아우크스부르크의 은세공 장인에게 보내 은으로 도금한 받침대를 부탁해서 만들어진 것이 위의 장식용 잔입니다. 독일에서 은셍공 장인으로 유명한 마타우스 바우어 (Matthäus Baur)가문이 만든 것으로 이 가문에서 만든 각종 식기들은 전세계 유명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크리스티 (Christie’s)같은 경매회사를 통해 거래되고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뿐만 아니라 시카고 미술관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도 마타우스 바우어가문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붉은색 유리는 영어로 루비-금 유리 (ruby-gold glass)로도 불리는데, 붉은색을 내는 화학적 성분이 바로 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붉은색 장식 용기는 매우 고가품이었습니다. 금은 또한 항독성 (anti-toxic)이라고 알려져 독이 들어간 음료로부터 보호해준다는 속설이 있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붉은색 유리 장식잔과 아주 유사하게 사과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역시 마타우스 바우어 가문에서 은세공을 한 포도주잔 (goblet)을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 크리스티앙 5세 (Christian V, 1646-1699)가 부인 샬롯-아말리에 왕비 (Queen Charlotte-Amalie, 1650-1714)에게 1695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그 포도주잔은 덴마크 왕실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샬론-아말리에 왕비는 독일 카셀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위의 갑옷에서 설명한 브란덴부르크 가문출신입니다. 종교적으로 그녀는 칼뱅파 (Calvinism; reformed faith)였고 남편인 크리스티앙 5세는 덴마크의 국교인 루터파 교회의 수장으로 정치, 외교적으로 결혼한 부부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1699년 크리스티앙 5세가 죽은 후 궁을 떠나 그녀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 샬롯텐보그 궁 (Charlottenborg Palace)은 1754년 덴마크 왕립 미술학교 (Royal Danish Academy of Fine Arts)가 설립되었을때부터 학교 건물로 사용됩니다.

1695년이 장식용 잔을 선물받은 샬롯-아말리에 왕비는 그렇게 기뻐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티앙 5세가 예전 가정교사의 딸인 소피 아말리에 모스 (Sophie Amalie Moth, 1654-1719)를 둘 사이의 첫 아이를 출산한 1672년 시녀 (chief mistress)로 고용하며 왕실에 공공연히 소개하고 1677년에 삼세 (Samsø)의 백작부인 (countess)으로 임명하고 둘 사이에는 6명의 자녀도 있었기 때문이죠. 소피 아말리에 모스는 덴마크 왕실에서 최초로 공식적으로 인정된 정부였습니다. 현재 코펜하겐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은 크리스티앙 5세가 그녀에게 준 궁 (Thott Palace)이었습니다. 그녀의 후손들은 지금도 덴마크의 귀족 가문 중 하나로 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Virgin and Child), Gallery # 641


아래의 그림은 15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디어릭 바우츠 (Dieric Bouts, ?-1475)가 1455–60년 무렵 나무 위에 유화로 그린 성모 마리아와 예수입니다. 서양미술에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주제로 그린 그림의 역사는 길고 두 인물의 재현 방식도 다양합니다. 15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성모 마리아와 예수 도상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쓰다듬거나 얼굴을 부비는 도상 (glykophilousa; affectionate Virgin)이었습니다.

바우츠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중세 유럽 미술에 있어서 성모 마리아 도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전설에 대한 미화는 5세기 시리아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탄생과 죽음을 다루는 여러 미술 작품들이 비잔틴 제국의 미술에서 보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뒷편에 있는 303번 방에  비잔틴시기 미술작품이 소장되어 있고, 10세기 말 성모의 영면 (Koimesis; Dormition in the West)을 상아에 부조로 조각한 작품이 있습니다. 이 도상은 중, 후기 비잔틴 미술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교회의 문에 달아놓아 교인들이 예배가 끝나고 나가면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아래 작품은 책의 덮개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영면한 채로 상여에 누워있고 하나님이 들고 있는 아기는 그녀의 영혼을 상징합니다.

현재 이스탄불인 비잔티움을 콘스탄티누스 대제 (Constantine the Great, 272-337)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름을 바꾸며 수도로 삼은 동로마제국이라고도 불리었던 비잔틴 제국 (c. 330-1430)시기 성모 마리아는 콘스탄티노플의 수호여신으로 그녀의 도상은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성수태고지 축일 (Feast of the Annunciation)이나 사순절 (Lent)에서 찬송가로도 많이 불리고 시각적으로 도상화된 성모 마리아는 주로 그녀의 잉태 (무원죄 잉태설; Immaculate Conception), 어린 시절, 영면을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상아로 만들어진 책 덮개도 그 중 하나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어머니로서의 위치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아기 예수와 함께 등장하는 도상은 많은 형태를 띄며 나타납니다. 각각의 도상이 별도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의 형태로 고착됩니다. 예를 들어, 버진 호디저트리아 (Virgin Hodegetria; she who guides)라는 도상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왼쪽팔로 안고 오른손으로 가리키며 그가 구원의 길임을 나타내는 도상입니다. 비잔틴시기 이 도상을 작은 조각형태로 만든 것 (Icon with the Virgin and Child)이 위의 책 덮개와 같은 방 (303번 방)에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또 하나의 도상은 버진 일리어사 (Virgin Eloisa; Eleusa icon; Virgin of Compassion)로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볼을 부비고 있는 도상입니다. 1300년대 초반 콘스탄티노플에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아래의 아이콘도 303번 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디어릭 바우츠의 그림도 이 도상에 근거를 두고 만든 것입니다.

비잔틴시기 기독교 도상에 등장하는 성인들은 주로 후광을 가진 모습으로 재현되었습니다. 위의 모자이크 도상에도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 머리 주변에 후광이 색깔이 있는 돌로 모자이크 처리되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디어릭 바우츠의 그림에는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 둘 다 후광없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또한 비잔틴 시기의 도상보다 훨씬 더 인간과 가까운 모습으로, 당시 네덜란드에서 볼 수 있는 여성과 아기, 혹은 엄마와 아기의 모습으로 성인들을 재현함으로써 보는 이가 성인들을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것입니다. 이는 인본주의가 강조된 르네상스시기 북부 유럽 미술의 특징입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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