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시절 기억에 남는 회의가 있다. 인턴의 숙명인 만성 수면 부족으로 비몽사몽 앉아있던 와중에도 발표자의 말은 귓구멍으로 흘러들어와 반쯤 잠든 정신을 깨웠다.
프로바이오틱스 투여 및 식이요법에 따른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의 기능적 예후를 비교 분석한 연구였다. 프로바이오틱스의 투여와 장내 미생물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위주로 한 식이요법이 유익한 장내 미생물의 수를 늘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기능 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도표를 보는 순간, 새어 나오던 하품이 덜컥 멈췄다.
그러니까, 내 장 속에서 똥과 함께 뒹굴고 있는 균들이 나의 인지 기능에 영향을 준다고? 그렇게 내가 먹은 음식이 내일 내 뇌의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이게.. 정말 유사과학이 아니라고?!
내가 이해한 게 꿈인지 생시인지 조금 헷갈리는 어리벙벙한 상태로 인턴 숙소로 돌아와 회의 시간에 나눠 준 프로바이오틱스 분말만 하나 까먹고는 그냥 잠 들어버렸다. 하지만 그사이에도 의학에는 장내 미생물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 후 다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땐, 이미 우울증과 알츠하이머 등 수많은 정신 질환과 장내 미생물의 관계에 관한 논문들이 무더기로 쏟아진 후였다.
출산 과정에서 엄마의 자궁 속 균과 접촉한 아이의 대장에는 하루가 지나면 균이 자란다. 이렇게 형성된 장내 미생물은 성인이 되면 뇌와 거의 같은 무게인 1~2kg에 육박하고 종류는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2,000여 종에 이른다. 인간의 DNA보다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 군집의 유전자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연구도 있다.
과거에는 이 장내 미생물들이 단순히 배앓이나 소화관 관련 질환에만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은 완전히 폐기된 지 오래다. 뇌와 장을 연결하는 신경망은 결코 일방향적이지 않다. 둘의 관계는 쌍방향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역방향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장내 환경이 뇌 신경 전달 물질의 생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내 미생물 환경은 우울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알츠하이머 등 정신과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고 그 외에도 천식, 당뇨병, 비만 등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이용해 효과가 입증된 치료 방법은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남의 똥을 내 장에다 집어넣는 것이다. 물론 유해한 균을 모두 제거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깨끗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충격적이지만, 실제 성과는 꽤 뛰어난 편이다.
이쯤 되면 브런치에 프로바이오틱스 팔이피플이 침투한 것인가, 싶겠지만 관련 연구가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당연하게 정반대의 결과도 많이 발견됐음을 언급하며 중립성을 지키고자 한다.
항생제 치료 뒤의 프로바이오틱스 복용이 오히려 정상적인 미생물 군집의 복원을 방해해 회복 속도를 느리게 했다는 동물 실험 결과가 있고, 설사 등에 프로바이오틱스가 전혀 효과가 없다는 대규모 임상시험이 있으며, 균의 종류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 거부 반응을 유발할 수 있어 오히려 유해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무엇보다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한 장기적인 안전성은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 2,000종이 넘는 장내 미생물이 짐작할 수도 없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체의 거의 모든 생리작용과 질병에 연관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 시판 중인 프로바이오틱스 영양제에는 고작 서너 가지의 균이 그 숫자만 조금씩 다르게 들어있을 뿐이다.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프로바이오틱스의 광고는 이러한 인체 내 미생물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효과를 과장하고 있다.
의학을 포함한 과학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어제 맞았던 것이 오늘 틀릴 수 있다. 그러므로 수많은 연구에서 발견된 결과들의 경향 속 최소한의 불변하는 사실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니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고민 중인 고가의 프로바이오틱스를 결제하는 대신, 우리가 이 새로운 지식을 통해 받아들여야 할 진실은 이런 것이다.
나의 몸과 지금껏 자유 의지라고 착각해 온 나의 생각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기절 직전의 산통 속에서 엄마는 DNA 반쪽과 무한한 감내로도 모자라 미생물 샤워를 통한 내 몸 안의 최초의 세균 씨앗까지 남겨 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 씨앗은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를 거쳐 마침내 내게로 온 것이라는 것. 그렇게 내게로 온 그 씨앗은 넘치는 사랑이 담긴 음식과 물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나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나와 함께 만들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나의 이 누추하기 짝이 없는 몸뚱아리조차, 지구에 처음 단세포라는 것이 만들어진 시절부터 축적되어 온 생명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태계이며, 그 사이사이 촘촘하게 새겨진 사랑의 흔적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므로, 내겐 나에게 맞는 맛있고 깨끗한 음식을 먹으며 나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우주적 사명이 있다는 것.
과학이라는 멋진 도구로 길어 올린 진정 신비롭고 경이로운 진실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러니 부디 오늘 한 끼도 대충 지나가지 말자.
맛있는 음식으로 건강하게, 잘 챙겨 먹자.
어쩌면 조금 믿기 힘들겠지만,
오늘 먹은 음식은 분명히 내일의 나를 만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