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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editor Nov 28. 2023

부딪히며 생겨난 우연같은 말들

그림에서나를찾다-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

#그림에서나를찾다



나는 진짜 ‘나’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건 끊임없는 자기 창조의 과정이다”



방 안 희미하고, 은은하게 비치는 불빛을 좋아한다. 공간을 장악할 만한 선명한 빛에는 이마 주름이 한껏 짙어진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확실한 내 자리를 강요하는 사람들, 다소 확실한 내 편을 가리는 사람 앞에서 어깨가 움츠러지듯이. ‘소신’ ‘정체성’ ‘주관’이라는 단어에 짓눌려 작아지듯이.

그나마 적당한 자리에서 두리뭉실한 나 자신이 좋아질 땐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다. 뭐든 잘 듣고, 감탄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편안한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가끔 만만함으로 여겨지던 ‘편안함’은 이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되었다. 흑과 백, 선과 악, 00는 00다! 깍아내듯 구분짓고 단정하는 온갖 불편한 정의들을 경험했던 지난 시간 덕분이다. 탁월함, 선명함 대신 이젠 유연한 태도에서 오는 편안함이 좋다.


편안함은 열림이다.  우리의 정체성, 내 자리를 너무 명료하게 정의하는 일은 내 삶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자아와 어긋난다’고 여겨지는 일이나 상황을 계속 피하다 보면 ‘나’를 확장할 기회마저 놓칠 수 있을지도 모를 일. 덕분에 난 ‘나다운 것’이라며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것들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건 끊임없는 자기 창조의 과정.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은 욕구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능력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때마다 난 ‘시도하기’의 버튼을 누르곤 한다. 덕분에 요즘 시도하고 부딪히며 생겨난 우연같은 말들을 차곡차곡 쌓는 중이다. 내 삶의 예사로운 것들이 어느 시기, 인연과 만나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놀라운 발견과 함께.


이러한 ‘나에 대한 발견’은 유독 인상파 그림 앞에 머무르며 편안해했던 이유를 찾게 했다. 빛의 변화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깊이 없는 사물의 인상을 표현한 인상주의.

인상주의가 태동할 당시 19세기. 이때는 사진 기술의 등장으로 귀족과 부유한 상인을 상대로 사실적 회화를 팔아 생계를 꾸려가던 화가들이 위기를 맞게 되던 때다. 일부는 시류에 편승해 다른 직업으로 전직했고 심지어 사진사로 전향한 화가들도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사람들. 어쩌면 사실적 그림으로 사진과 경쟁하려 했던 화가들보다는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때 인상파 화가들은 사진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에서 광학과 빛의 역할을 발견해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게 된다. 어두운 화실에서만 그리던 사실적 그림의 세계를 넘어 태양 아래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채와 사물을 화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이를 도화지 위에 표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현실을 찍어내듯 담아내는 사진과 경쟁하는 대신 빛의 재해석이라는 인간만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회화의 시간을 개척해 낸 것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사진을 자신의 작품 세계에 활용하기도 했다. 기억하기 어려운 풍경과 사물 등의 순간적 장면을 카메라로 포착해 후일 그림의 소재로 쓰곤 했다. 그 덕에 그림은 훨씬 풍부해지고 디테일해졌다.



우리의 정체성을 너무 명료하게 정의해버리는 일은 자기자신에게 충실함을 가장한 그릇된 자기 자신의 생각에 충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한 인상파 화가들처럼 유연함이 필요한 때.

테라피와 명상, 여행, 모험 등 가면 속의 진정한 자아 찾기의 게임이 유행처럼 퍼져가는 요즘. 우리는 자신의 숨겨진 내면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실 알고보면 어수선한 내면의 감정, 굳게 다문 입술, 떨리는 다리 같은 것들이 합쳐져 복잡한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배운 태도라면 이런 것이다.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정직한가?,

나에게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은 어떤 것인가?, 되물으며 나를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시도같은 것들. 우리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빛나는 우연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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