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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Oct 04. 2021

3.0 MHz. 성DJ, 성시장, 성발라

좋아하는 라디오 DJ가 다시 돌아왔을 때 애청자의 마음

어느날의 라디오 일기: 2011. 6. 8. 음악도시 부활, 심플해진 밤 풍경

요즘, 슬프고 바쁘고 기쁘고 느긋한 하루하루의 마침표는 라디오로 찍고 있다.

매일 밤 10시가 가까워지면 내가 생방송하는 디제이처럼 부산스럽다.

퇴근 후 방송 시작 한참 전부터 시계를 연방 흘낏하며 자리를 잡고 앉는다.     

만화책도 정독하는 미련한 성격이라 라디오 들으면서 멀티플레이를 할 수 없다.

홈페이지 보고 실시간 메시지 읽고 좋은 노래 제목은 수첩에 적어두고...

광고시간에는 후다닥 물 마시고 화장실 다녀오고

잘 안 읽히는 책이나 어려운 신문은 밀어 두고 방송 들으며 병행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을 찾는다. 빨래 개고 마스크 팩 붙이고 책상 정리하고....

밤 10시 방송 시보를 들으며 정해진 시간, 반복되는 의식이 이루어진다.     

감성의 샘, 유년의 뜰, 평화로운 하루의 끝에 라디오가 있다.

느리고 차분하고 내밀한 매체의 성격상, 중독되면 이렇게 일삼아하게 된다.

엄마는 나보고 한심하다고, 누군가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겠지만,

의미 부여하고 소소한 공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잘 들어주고 조곤조곤 말을 거는 라디오가 잘 맞는다.

그렇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게 맞는 친구, 늘 찾게 되는 오랜 친구가 어느 순간 라디오가 되어있었다.     

10시-12시 -2시-3시-4시 심야 라디오 황금라인!

(성시경의 음악도시-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이동진의 꿈꾸는 다락방-이주연의 영화음악) 복 터졌다. 

라디오 제왕' 잘 자요~'의 귀환으로 요즘 많이 설레고 들떠있다.     

예전부터 라디오 쭉 들어왔지만 이렇게 사이좋게 쭉 이어진 적은 처음인 듯! 

이래저래 종속돼서 괴롭고 행복하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거나 오후에 유난히 졸리거나 라디오를 억지로 끄고도 여운과 생각들로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을 때에도 도저히 끊을 수 없다.

덕분에 드라마를 끊었고 (정확히는 주말에 몰빵ㅋ), 

이래저래 이어지던 오락프로 시청이나 엄마와의 수다도 줄어들었다.     

심플해진 밤 풍경,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침묵의 시간,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말을 듣고 하는 시간. 

화려한 침묵의 시간이 오늘도 펼쳐진다. 오프닝 시작~쉿!


이윽고성시경    

요즘 아이돌 팬처럼 엄청난 덕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는 소소하고 꾸준한 덕후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고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면서부터,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또래보다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항상 어떤 대상을 선망하고 흠모하는 마음이 삶의 동력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심야 라디오를 듣고 음악을 좋아하게 되며, 열정적으로 어떤 대상에 마음을 쏟으며 그 온기로 예민한 사춘기를 건너갔다. 혼자 조용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꺼내어 표현하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했다. 반 친구들이 ‘HOT’나 ‘신화창조’ 팬클럽 활동을 할 때, ‘토이’ 유희열에게 팬레터를 썼다. 30여 년간 덕후로서 벌집처럼,  좋아하는 대상들이 살아가는 마음속의 많은 방이 있었다. 열렬히 좋아했다가 차게 식으면 방을 빼고, 새로운 뉴페이스가 방에 들이기를 반복했지만, 장기 세입자가 나타난 것은 2000년 고등학생 시절의 일이다.     


어쩌자고 난 널 알아봤을까

2000년 9월 "내게 오는 길"로 온라인 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가수로 데뷔한 성시경은 내게는 “별에서 온 그대”처럼 첫눈에 반한 대상이었다. 그의 ‘엄친아 대학 오빠’ 이미지에 ‘심쿵’한 나는 그의 대학 후배가 되고 싶어서 그가 다니던 고려대 투어까지 쫓아갔지만, 수능시험장에서 장렬히 입학을 거부당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운명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상형이나 좋아하는 연예인을 묻는 질문에 언제나 나의 대답은 ‘성시경’으로 귀결되었다. 훤칠한 키와 섬세한 성격, 무엇보다 그의 독특한 음색에서 비슷한 다른 가수들이 부르는 발라드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나만의 ‘귀쁨(귀로 느끼는 기쁨)’을 발견했다. 그는 사랑만이 전부였던 소년과 청년 사이의 감성을, 배우의 연기처럼 마음을 담아 노래했다. 슬픔을 기쁨으로 잊기보다, 슬픔 그 자체를 직시하며 이겨내려는 나에게 늘 조용하고 잔잔한 그의 발라드는 좋은 BGM이 되었다. 

 방송에서 비치는 이미지에 오만하다는 악플도 많았지만 오랜 팬으로서 나는 알았다. 그는 까칠한 것이 아니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애매한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욕을 먹는 쪽을 택하는 당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녕, 나의 사랑

 2008년 6월 28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성시경의 군 입대 전 마지막 콘서트에서 비 오는 궂은날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그도 울었고 팬들도 오열했다. 시경님에게는 보이지도 않을 2층 좌석에서 풀 메이크업을 하고 아끼는 원피스를 입고 나는 혼자 울먹였다.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내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간접체험을 했다. 며칠 뒤 현역으로 입대한 그가 군악대에서 복무하는 기사들을 보면서도, 그의 짧은 머리가 마냥 어색했다. 잘 돌아올 수 있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던 나의 기우와 달리 그는 무사히 2010년 5월 제대했고, 나도 매년 그의 축가 콘서트와 연말 콘서트에 출석했다. 혼자 콘서트를 가도 여전히 씩씩하게 떼창을 했고, 공연이 끝나면 공연의 여운으로 허전한 마음을 팬 카페에서 위로받았다.



더 아름다워져

 그가 2011년에 MBC 라디오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의 DJ ‘성 시장’으로 다시 돌아왔던 날은 잔칫날이었다. 2008년 군 입대로 어쩔 수 없이 하차하게 된 라디오 <푸른 밤, 성시경입니다> 이후 그의 라디오에서 DJ와 청취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관계였다. 국가의 부름으로 그간 못 보여준 애정을 서로에게 쏟아부었다. 군 제대 후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애틋해진 마음을 열심히 라디오를 들으며 표현하고 싶었다. 매일 본방을 사수하며 사연과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가 읽어주면 자는 순간에도 행복했고, 읽어주지 않으면 몹시 섭섭했다.     

 그런데 그가 변한 것인지, 이를 받아들이는 내가 변한 것인지, 전역 후 상업적인(당연히 모든 티브이가 다 상업적이지. 예능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고, 걸 그룹이 좋다는 등 그(에 대한 나의 환상) 답지 않은 발언을 거침없이 하는 아재스러움에 실망하기 시작했다(지금 돌아보니 어느덧 30대가 된 아저씨 나이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취업준비를 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나의 덕질은 안팎으로 흔들렸다. 게다가 그의 수많은 팬들 중 모래 한 알 같은 내가 아니어도 그는 언제나 인기가 많지 않은가. 이렇게까지 합리화하니 그간의 소소한 덕질들이 시간낭비로 느껴지고 자괴감이 들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의 조각들이 풍화되었고, 그의 라디오 “잘 자요” 멘트를 듣지 않고도 잘 자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에게서 서서히 멀어지며, 어떤 대상에 대한 시간과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했지만, 그만큼 일상은 무색무취로 황량해졌다.


 “모른 체 내가 버린 것들/ 언제라도 되찾을 수 있다 믿었어/ 

그렇게 하나씩 잃어버렸다는 걸 알 것 같아/ 다시 또 하루가 흘러”     


성시경의 노래 ‘잃어버린 것들’ 가사처럼,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코로나 시국에 변함없이 따뜻한 그의 목소리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를 자극했다. 

 코로나로 음반 발매가 미뤄지고 공연도 할 수 없게 되어 그도 변했다. ‘성식(食) 영’ 캐릭터로 SNS를 시작했고, 매일 자신이 만든 음식 레시피를 올리고, 인스타그램에 블로그처럼 구구절절 긴 글을 쓰는 그의 순박함이 귀여웠다. 팬들의 사랑에 그간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는 그의 진심에 나 역시 외도 기간을 반성한다. 올해로 데뷔 22년 차 오랜 기간 동안 감성적인 발라드로 ‘성발라’, '고막남친(원조를 앞에 꼭 붙여주시라)'으로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 추억이 들린다. 그 노래를 들으면 그 자리에 그 시간에 그때의 나와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그는 나의 봄이다 

 2021년 5월 그가 무려 10년 만에 8집 앨범을 내고 왕성히 활동 중이다. 팬으로서 그가 요리 도구를 내려놓고, 마이크를 다시 잡게 되어 반가웠고, 활동이 시작되어 덕질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니 매일이 선물처럼 고마운 나날이다. 아이돌 음원 위주의 시장에서도 꿋꿋하게 14곡을 담은 정규앨범을 내고, 안전한 발라드 대신 새로운 댄스를 시도하는 내 가수님에게 보답하려 새 앨범을 주문하고 낡은 CDP를 수리했다.

 스케줄이 너무 바쁘고 음악이나 음식 등 그의 재능은 정말 다양해서 당분간은 그의 목소리를 라디오에서 듣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그를 떠올릴 때 라디오는 빼놓을 수 없는 조각이다. "라디오가 어떻게 보일 수 있지요?"라며 그렇게 '보이는 라디오(보라)'를 싫어했던 그이지만, 현재 주기적인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그의 목소리를 '보이는 라디오'처럼 듣는다.  그와 편하고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하다.

 덕후의 세계에선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고 한다. 아무튼, 성시경. 내일의 월요병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따뜻한 그의 목소리가 있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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