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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욱 Wook Dec 24. 2016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내 이야기"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누구나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못해 억울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삼겹살 한 조각을 양보해야만 했던 씁쓸한 경험부터, 원치 않는 부탁을 들어주느라 힘들고 괴로웠던 경험이 내게도 있다.


난 스스로를 꽤나 온화한 사람이라 생하는데, 이는 험한 말 주고받는 일을 싫어하는 내 성격도 원인이지만, 좋은 사람은 친구로 삼그렇지 못한 사람을 굳이 으로 만들지는 말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좋은 일이 있으면 웃고, 갈등이 있어도 금방 화해하고 웃어넘기고. 나와 가치관이 정말로 다른 친구가 있어도 싸우기보단 거리를 두는 데 그쳤다. 크게 갈등을 빚는 일 없이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좋은 청자였다. 무슨 얘기든 잘 들어주는 편이었으니까.


이 때문인지 난 남의 말을 경청하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반대로 내 주장을 펼치는 데에는 영 미숙했다. 그러다 보니 갖고 싶었던 물건을 남에게 양보하거나, 친구에게 마지막 차돌박이 한 점을 허락하거나, 내 할 일을 신경 써야 할 와중에 남을 도와줘야 한다거나 하는 답답한 상황에 속이 탔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를 가장 여실히 느낀 때는 대학교 1학년 1학기, 새 환경에 적응하랴 수업에 열중하랴 정신없던 새내기 시절이었다.




문제의 그 날 저녁, 나는 유기화학 중간고사를 하루 앞두고 내 방 책상에 앉아 교과서에 코를 박고 노트 정리를 하고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해 처음 맞는 큰 시험에 나는 잔뜩 긴장한 나는 한번 본 내용을 복습하고 헷갈렸던 문제들은 다시 풀어보고 잠자리에 드는 걸 그날의 계획으로 삼았다.


그러던 와중, 수업은 같이 듣지만 별로 친하지는 않았던 친구 하나가 찾아와 헷갈리는 부분이 있으니 설명을 해 달라고 물었고, 나는 친구가 모르겠다는 부분을 아는 대로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영 감이 안 잡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친구는, 내가 공부한 노트를 빌려가서 공부해도 될까 내게 물어봤다.


나도 이걸로 공부하는 중이라 안돼. 이런 간단한 말을 난 하지 못했다.


내 딴에 피땀 흘려 만든 노트를 남에게 빌려주는 건 다소 망설여졌지만, 나는 이내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노트 대신 교과서로 공부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노트를 빌려준다고 공부한 내용이 어디 가는 건 또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물론 난 이 결정을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그날 저녁 마무리 공부를 할 때도, 시험을 치르기 한 시간 전 까다로웠던 부분을 마지막으로 쭉 훑을 때도, 난 요점과 공식을 보기 쉽게 정리 해 놓은 내 노트 대신 큼지막한 교과서를 들고 불편하게 공부해야만 했다. 그래도 시험장에선 노트를 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내 은근한 기대를 비웃듯 녀석은 시험이 시작하기 5분 전에 입실해 저만치 떨어진 자리에 앉아 시험 개시 직전까지 내 노트를 이리저리 훑었다.


당시의 나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생각해보면 이 사건은 내가 가서 노트를 돌려달라고 한마디만 했다면 그것으로 쉽게 해결되었을 문제였다. 친구가 알아서 노트를 돌려줬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난 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혼자서 끙끙 앓기만 했을까? 돌이켜보면, 그 날 시험을 보고 난 후 하루 종일 가슴속을 짓누르던 답답함은 진작에 필기를 돌려주지 않은 친구 때문이기도 했지만, 손해를 보면서도 돌려달란 말 한마디 못하던 답답한 나 자신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남에게 이야기를 못 꺼내고 속앓이만 했던 적이 내겐 여러 번 있었다. 당시엔 그냥 남에게 뭔가 요구하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행여나 교우관계에 금이 가거나 언쟁을 하게 될까 봐 말하는 걸 망설였지만, 고민하면 할수록 내가 싫은 잃은 싫다고 확실히 말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로 금이 갈 교우관계라면 애초에 그리 의미 있는 관계도 아니고 말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부터 나는 내가 정말로 원치 않는 상황에서까지 남 눈치를 보며 주장을 아낄 필요는 없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교훈을 얻는데 그쳤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일들을 곱씹을수록, 내 주장을 확실히 해야 하는 이유에는 억울한 일을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닌, 올바른 일을 행하기 위함도 있지 않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떻게 이런 생각에 다다랐는지 말하기 앞서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고사 하나를 인용하고자 한다. 논어 자로편(子路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자공이 여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면 어떻습니까.

선생님(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는 사람이 된다면 어떻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직 부족하다.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악한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를 두고 주희(熹)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모두 좋아하면 이는 영합하는 행실이 있기 때문이요, 모두가 미워한다면 이는 필시 좋아할 만할 실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대로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던 지난날을 되짚어가다 보니, 거기엔 내가 억울했던 순간들 말고도, 부조리를 목도하고서도 침묵하거나 동조했던 부끄러운 기억들이 있었다. 괴롭힘을 받던 반 친구의 편에 서서 싸워주지 못했던 일이나, 위법행위를 일삼는 친구를 보면서도 제지하지 않은 일 등이 바로 그랬다. 위의 말 그대로 이는 영합하는 행실이었다.


잘못된 일을 편들기는 쉽다. 다만 양심의 가책을 피하기란 어렵다.


부조리의 현장에서 나는 그것이 옳지 못한 행위임을 당연히도 자각하고 있었다. 다만 모난 돌이 정 맞게 될까 봐, 맞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 혹은 단지 나서기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나는 내 양심을 외면했다. 모두와 잘 지내라는 우리들 부모님의 가르침은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이지, "잘못된 일이 있어도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라"는 뜻이 결코 아닌데도 말이다. 물론 정말 아니다 싶은 상황엔 앞으로 나선 적도 있었지만, 백번, 천 번의 잘 한 일 한 번의 잘못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거야. 굳이 뭐라고 해 봤자 나만 욕먹을 거야.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은 수도 없이 떠올랐지만, 이 모두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던 데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단 사실은 너무도 자명했다. 현실적으로 내가 나설 수 없었던 상황도 분명 있었지만, 나설 수 있었던 상황도 많았고, 바로 이 점이 나를 힘들게 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일에는 발언을 아끼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말이다.


부정에 맞서는 일은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주장할 줄 아는 강단 있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에는, 앞서 인용한 논어의 고사대로, 선한 이들에겐 사랑받더라도 악한 이들에겐 미움받는 일을 기꺼이 감수하는 용기 역시 필요하다. 그렇기에, 싫은 일을 싫다고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옳은 일을 옳다고 말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행위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던가 적을 구태여 만들지 말자던가 하는 수동적인 입장을 벗어던지고 나니 마음은 홀가분하지만, 다소 두렵기도 하다. 내 입장을 확실히 표현한다는 소리는 내 의견을 좋아하는 사람 말고도,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만나게 될 거란 말이니까.


하지만 세계 인구가 70억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나와 가치관이 비슷하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하지 않은가? 오히려 그런 의견들은 나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도록 하는 기회를 주기도 하니, 마주치는 게 너무나 당연한 반대의견이나 색다른 의견을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난 생각한다. 


그렇다고 조용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주장과 신념을 이리저리 광고하고 다니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나는 간단한 일부터 실천하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을 담은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사람들의 답변을 기다리는 일이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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