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와 재회하며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와 재회한 적이 있다. 반가움에 어깨를 부둥켜안고, 어디서 뭘 하고 지냈나 물어도 보고, 근처 아담한 카페에 가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담소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달라진 모습에 어색한 인사만을 나누고 지나치는 친구도 몇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옛 시절로 돌아간 기분으로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도 있다. 내겐 글쓰기란 그런 친구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울로 코엘료 등 해외 작가들부터 황석영, 이문열 등 국내 작가들까지.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대표작들부터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들까지. 방 한쪽 벽을 가득 매운 책장은 청소년 시절 내 자랑이었다. 맨 아랫칸을 빽빽이 채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비록 장식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책장을 차지한 나머지 책들 중 대다수를 한 번쯤은 들춰 봤다는 건 내 크나큰 자부심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 글 읽는 걸 정말 좋아했다. 다만 활달하고 정신 사나운 면도 있어, 누군가 재밌는 일을 하고 있으면 그걸 지켜보기보단 "나도 할래!" 하며 끼어드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방관자보단 주인공이 되고픈 욕구가 있었고, 남이 쓴 글을 받아 읽기만이 아닌 나 스스로 글을 쓰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다. 독서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펜을 들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으로 내 나름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때는 10살 무렵이었다. 아래아 한글에다 나름 심사숙고를 거듭하며 쓴 내 처녀작의 제목은 "거북이와 병아리"였는데, 동심을 자극하는 제목과는 별개로 글 내용은 거북이 왕국과 병아리 왕국이 국운을 건 대 혈전을 벌이는 이야기 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듯 난 심심할 때면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끄적이다가 무료하면 게임도 몇 판 하고 학원도 가고 하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이윽고 중학교에 진학한 나는 쉬는 시간이면 교실이나 창 너머 운동장에서 뛰노는 급우들을 바라보며 소재를 찾고는 했다.
인터넷의 발달은 내 창작욕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2000년대 중후반기에 또래 친구들 사이에선 판타지 소설 혹은 소위 "라이트 노벨"이 인기였다. 환상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피를 마시는 새, 가즈 나이트, 월야환담 등등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인기 저서들을 읽던 내 안에는 어느덧 언젠가 판타지계의 거장 J.R.R. 톨킨처럼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세계를 글 속에 담아내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났다. 내 상상 속 나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대 문호였고 내가 상상 속 이야기는 그야말로 세대를 초월한 걸작이었다.
마음만은 작가였던 나는 당연히 연재처를 찾아 돌아다녔고, 당시 디자인도 이뻤고 종류도 다양했던 네이버 카페에 눈길을 돌렸다. 내가 몸 담았던 카페들의 성격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는데, "자캐 커뮤" 라 해서 개인이 창작한 캐릭터를 기반으로 미션을 수행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며 노는 카페도 있었고, 일본 애니메이션 카페도 있었다. 사람들의 글솜씨도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나는 이곳저곳을 떠돌다 한 네이버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 카페는 비교적 진지하게 글쓰기를 추구하는 분위기였고 회원분들 중엔 감탄을 자아내는 솜씨를 가진 분들도 여럿 있었다. 당시 지인분들 중 몇몇은 실제로 문예창작과로 진학하였다.
카페의 분위기에 매료된 나는 일과가 끝난 후 카페 채팅방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댓글도 달고 떠들기도 하며 활발히 활동을 하였다. 나보다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배우려고도 했으며, 인터넷에 기고되는 장르문학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란 딱지가 싫어 순수문학을 어쭙잖게 따라 해 보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 시도와 변화를 즐기며 나는 점점 더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카페에 가입한 지 일 년 정도 지났을까, 노력의 결과였는지 나는 카페 내에서 "비평단"이라는 역할을 맡을 수 있었는데, 사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 비평은 전문 비평처럼 날카롭고 통렬하진 않았다. 당시 카페 내에는 정말 전문적이고 멋들어지게 비평하는 회원이 한 분 계셔서 그분을 따라 하려고도 노력했지만, 포스트 모던이니 내러티브 훅이니 하는 것들을 배워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선 그럴 도리가 없었다. 이실직고하자면, 난 비평보단 작품을 읽고 주제를 찾아보거나, 맞춤법을 지적하거나, 작 중 전개나 내용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표현하는 선에서 그쳤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문예창작과로 진학하자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다만, 70여 개의 게시글, 3편의 쓰다 만 장편 소설, 단편 하나, 그리고 700여 개의 댓글로 대표되는 내 창작 활동은 중학교 3학년을 끝으로 서서히 그 막을 내렸다. 중학교 3학년 때, 난 미국 뉴 햄프셔 주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우리말을 접하기 힘든 환경 탓에 어휘력은 자꾸만 줄어만 갔다. 돌이켜보면 중학생 때의 내가 지금보다 말을 더 잘 했던 거 같다.
물론 미국에도 인터넷은 있었으니 카페 활동을 계속할 수는 있었지만, 내 관심이 생명공학으로 쏠리면서부터 난 글쓰기와 정말로 멀어져 갔다. 생각을 활자로 표현하는 의미로서의 작문엔 여전히 관심이 있었지만,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세계를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창작욕과 의지는 내 관심 밖으로 멀어져 갔다. 당시엔 이런 생각마저도 했다. "글을 쓴다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 같아? 말만 늘어놓기보단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게 더 중요해."
내가 이런 생각에서 벗어난 건 비교적 최근, 이 생각은 의공학과 학부를 졸업한 직후였다. "의공학을 통해 의학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직접적 도움을 주자"라는 일념 하에 수업과 연구에 성실히 임하며 기술적 지식을 깊이 하는데 치중했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무언가 중요한 걸 잊고 있다는 느낌이 내 머리 속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 생각을 애써 무시한 채 살다 보니, 미래를 꿈꾸고 그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 견딜 수 없었던 새내기는, 어느덧 앞으로 몇 발짝 내딛기조차 귀찮아하는 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이런 메마름의 근원이 인문학의 부재라는 것을 깨달은 건 학부를 졸업한 후 지난 몇 년간의 여정을 돌아보고 나서였다. 학점과 프로젝트에 얽매여 하루하루 버티던 탓이었을까, 학부 4년 동안 사색다운 사색을 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철학다운 철학도 가까이한 적이 없었다. 교양을 죄다 경영학, 심리학 수업들로 때우고 학점만 신경 썼던 탓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아, 글쓰기는 많이 했다. 실험 리포트나 코딩을 글쓰기라 한다면.) 기술을 배워도 이 기술이 무엇을 위해 쓰일지, 또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 생각을 게을리했으니 배움이 의미를 잃어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때문에 나는 다시 글을 쓰고자 한다. 이번엔 소설이 아니라, 내 생각과 경험을 인문학적 지식에 비추어 글로 표현해 보려고 한다. 물론 주제는 내 경험이나 생각만이 아니라 최근 읽은 책, 사회 현상, 아니면 전공에 맞춰 과학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깊이 고민하고 내 견해를 조리 있게 글로서 풀어내는 일은 창작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으리라 확신한다. 사실 지금 이렇게 타자를 치는 와중에도,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어떻게 말해야 좀 더 읽는 이에게 와 닿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나는 즐거워 견딜 수가 없다. 최근 몇 년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퓨리에 변환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련하게 표현할지 고민하진 않으니깐.
이렇게 자리를 지키며 돌아온 나를 따뜻이 맞아주는 글쓰기란 친구를 향후 일이 바빠져 다시 소홀히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 주에서 두 주 동안 글 쓸 시간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물론 난 이 글쓰기라는 친구가 그때도 다시 내가 언젠가 돌아오길 기다려 줄 거라, 그리고 변함없는 즐거움으로 나를 맞아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지금은 재회를 축하하고 즐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