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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06. 2023

서로의 안녕을 묻는 다정함이 고마워

관계에 대한 단상들

1. 얼마 전 친구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운전을 하며 조용히 조수석에 타고 있던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학창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가 E 성향이고 본인은 I 성향이라 이전에는 알지 못했으나 최근 들어 그 친구가 소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애썼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친구의 고해성사 같은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더 좋은 관계를 위한 방향으로 갈거라 믿어.”라는 말을 건넸다.


 10-20대엔 나의 의지가 아닌 학교, 동아리,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타인과 교류하고 다투고, 화해하기도 하며 인내심을 배우지만 30대 이후부터는 자신의 의지가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에게 어디까지 진솔하게 터놓고 대화할 수 있을지, 상대에 대한 나의 본능적 호감의 정도, 나의 배려를 당연시하지 않는 관계는 누구인지 등 많은 점을 나의 기준에서 들여다보고 이 관계에 대한 노력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 같다.  


 하나의 상황과 가치에 다각도로 오랜 시간 고민하는 태도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는 범주를 넓혀준다. '아, 저 사람은 저런 이유로 서운할 수 있겠다.' 혹은 '이 사람은 대화의 흐름을 읽고 분위기를 전환시켜주는구나.'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대의 배려와 아픔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좋은 관계를 위한 선택이 가능하다 믿는다.




2. 살아가는 동안 관계에 대한 고민은 끊이지 않고 계속 배우는 과정일 것이다. 요즘 문득 떠오른 또 다른 생각은 ‘나의 안부를 궁금해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만나면 대화가 즐겁고 헤어짐이 아쉬운 사람들이 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나이도 제각각, 모임의 종류도 다르지만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통점이 뭘까 생각해 보니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한다는 것'이었다.


가령 10년째 매달 만나는 독서모임 친구들도, 자주 보지 못하지만 만나면 한결같은 관계에 있는 친구들과의 대화도 시작은 늘 "요즘 이슈는 뭐야? 고민거리가 있어?"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답변 역시 형식적인 "별일 없지, 그저 그래."가 아닌 "나는 요즘 ~일이 있었어, ~생각을 했어."라는 솔직하게 서로의 현재를 공유하는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기준에 두고 소통하고 있다.


반면 서로에게 궁금할 것 없는 관계는 겉도는 이야기 혹은 지나간 추억을 안주거리 삼아 되풀이 되는 대화만 지속될 뿐이고, 귀가 후 에너지를 소진한 채 무슨 대화를 나눴더라? 복기해 보지만 그 순간 나눴던 대화들은 이미 흩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점차 현재가 부재한 과거는 힘이 약해져 간다.


어제는 가치관이 변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수할까 봐 말을 점점 줄이게 된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의견에 공감과 동시에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 나의 생각을 털어놓는 게 안전한 관계에서 비로소 솔직해질 수 있는 것 같다는 답변을 했다. 허나, 이 관계가 안전한지 아닌지는 먼저 솔직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있어야 확인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고립이 아닌 관계의 확장을 위한 용기를 잃지 말 것을 격려했다.


그러니 나의 안부를 묻는 상대의 세심함을 당연시 여기지 말고, 나 또한 상대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다정함을 갖춘 사람에 가까워져 가길. 관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스스로에게 당부와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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