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아가는 법
오랜만에 흰 도화지 같은 모니터 위 깜박이는 커서 앞에 앉아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멈췄던 리추얼을 재기하며 이번 달을 ‘내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쓰기’를 선택한 건 자연스러웠다. 글쓰기 근육을 키우고 싶어 도전했던 3월의 ‘필타&에세이 쓰기’ 리추얼에 참여하며 나는 스스로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고 더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간 써 내려갔던 것들을 통해 얻을 수 있었는데 나의 글들이 향해 있는 시선은 일관되게 ‘나’로 모여들었다. 나의 글은 나를 마주하고 반성과 자책이라는 괴로움을 거쳐 미래의 나에게 건네는 다짐과 희망을 품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내가 어떤 기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로 귀결되었고 그것이 명확해질수록 비로소 나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 주말 스토리젠터 채자영 님의 <나다운 이야기로 세상에 서는 법> 밑미 라이브에 참가했다. 자영님께서는 “나다움이란 건 뭘까요?”라는 질문으로 라이브의 포문을 여셨고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해주셨다.
‘나’로 존재한다는 말은 내가 ‘우리’가 되기 이전의 오직 나에게만 있는 고유한 충동, 힘, 의지, 활동성, 비정형성의 감각등이 주도권을 가지고 행위 과정에서 최초의 동기로 작동한다는 뜻입니다. 이성적이기 이전에 내적 충동성에서 출발한다는 뜻이지요. 나의 내적인 충동성이 외적이고 이성적인 계산법으로 제어되기 이전의 감각에 집중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오직 ‘나’에게만 있는 고유한 충동, 힘, 의지, 활동성, 비정형성의 감각 등을 ‘욕망’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 최진석
최진석 작가님의 견해에 따르면 ‘나다운 삶 = 나에게만 있는 욕망에 충실한 삶’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고유한 욕망이란 무엇일까? 자영님은 우리에게 르네 지라르의 ‘모방욕망이론’을 소개해주셨다. 우리의 욕망은 사실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욕망하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만족도가 높아지는 진짜 욕망인지, 시간이 갈수록 만족도가 낮아지는 타인에 의한 가짜욕망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해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정한 욕망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기록이며, 나의 경우엔 글쓰기였다. 비정형화된 생각들을 글이라는 형태로 옮겨 담는 과정을 통해 정형화해나갔고 돌이켜 보니 그 과정이 ‘언어의 자립’이었다. 나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표현했을 때 온전한 내 것이 되었다.
직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일들과 행위와 느낌과 생각들로써 그는 하나의 무늬를, 다시 말해, 정연하거나 정교한, 복잡하거나 아름다운 무늬를 짤 수 있다. (중략) 행복이라는 척도로 삶을 잰다면 이제까지 그의 삶은 끔찍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척도로도 잴 수 있음을 알고 나니 절로 기운이 솟는 듯했다. -<인간의 굴레에서 2>, 서머싯 몸
유퀴즈에 둘리를 창작하신 김수정 작가님이 나오신 편을 봤다. 인터뷰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둘리가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을 때 오히려 작가님은 인간으로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셨다고 했다. ‘나는 왜 사는가,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 앞에서 답을 얻지 못해 무기력하고 회피하는 시간을 보내셨다고 했다. 그 시기를 보내면서 얻게 된 해답은 ‘삶은 물과 같아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답은 없다.’고 하셨다.
나 역시 20대에는 삶의 의미나 소명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러나 작가님의 삶에 대한 견해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된 건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 난 후였다. 어쩌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소명이나 의미를 찾기 위해 나를 갉아먹고 있던 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재에 이르러 나의 언어로 포착된 것들을 통해 나의 삶은 ‘나다워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마주하게 됐다. 목적성을 가지지 않았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레 지나왔고, 흘러갈 방향이 있다면 이것이 내 삶의 의미가 아닐까. 오늘처럼 이렇게 글을 쓰며 나의 욕망에 귀 기울이고, 가장 나다운 선택을 해나가고 싶다. 그리하여 그 모든 선택들이 나다운 삶으로 향하는, 삶의 의미에 가까워지는 방향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