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집을 만나는 여정
외부의 세계로부터 안전하고 안온한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은 중요했다. 그렇게 시작한 독립 가구로서의 삶도 어느덧 6년을 꽉 채웠다. 지금도 첫 독립의 밤 느꼈던 낯섦과 설렘이 묘하게 뒤섞인 감각을 잊지 못한다.
짧지도 길지도 않던 타지 생활을 마치고 낯선 듯 익숙한 동네로 돌아와 사계절을 보냈다. 직주접근을 위해 직장까지 도보 5분 거리에 살고 있었으나 stop을 선언한 이상 그곳에 더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천회귀 본능이 있듯 나도 자연스레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아니, 사실은 당시 번아웃을 겪고 있었으니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집에 가고 싶다는 욕구가 먼저였을지 모르겠다. 마음속에서 어떤 선택이 선행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정을 붙이기 어려웠던 그 집을 나는 그렇게 떠났다.
작년 5월부터 6월 초까지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 위해 여러 집을 둘러봤다. 안락한 거주를 위해 필요한 여러 조건에 부합하면서 경제적인 면도 충족하는 집을 찾기란 역시 쉽지 않았다. 고개만 들면 빼곡한 집들 가운데 왜 내 몸뚱이 뉘일 곳은 없는가. 집을 구하러 다닐 때면 매번 떠오르는 질문은 이번에도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발품 팔며 다니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던 내게 주변사람들은 “내 집인 것 같은 곳은 들어가면 마음에 강한 끌림이 느껴진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최대 10개까지 본다 생각해라.”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마음이 조급했으나 ‘주(住)’ 결정하는 일이기에 직감이 올 때까지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동산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사장님은 분명 마음에 들 거라며 호언장담 하셨다. 이미 몇 차례 별 소득 없이 발걸음을 돌린 경험이 있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날이 흐렸던 그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며 지금의 집을 만났다. 채광이 들지 않는 빌라에 살며 그토록 바랐던 큰 창 너머로 왼편은 작물을 경작하는 밭이 보이고 오른편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과 논이 있었다. 더욱이 노을 감상을 즐겨하는 내게 당시 거주자 분께서 “여기가 남서향이라서 오후엔 산 너머로 해 지는 것도 잘 보여요.”라고 말씀해 주시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 집 안 곳곳에 있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푸르른 나무들의 풍경에 마음은 하릴없이 빼앗겼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계절의 변화와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니. 만약 이 집을 놓친다면 많이 아쉬워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던 끌림이라 믿으며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2023년 6월의 기록)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어벙벙하다. 대출을 알아봐야 하고 공부방 정리 문제도 남았지만 걱정보다 기대와 설렘이 앞선다. 마음이 후련해졌다.
오늘 여둘톡에서 김혼비 작가님은 ‘후회가 없다’고 하셨다.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고들 하는데 작가님의 단호하고 명쾌한 후회가 없다는 말은 어쩌면 오랜 시간 고민의 과정을 거쳐 내가 어떤 사람일지 알고 있기에 후회가 남지 않을 선택들을 해왔음에 분명해진 태도가 아닐까.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고 소심한 성격이라 큰 결정을 하기 전 마음의 직감이 오기까지 충분히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시간들을 거친 선택들을 해왔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마음이 피폐해지고 공허했던 시간에 대해 어떤 의미도 발견하지 못했다 여겼는데 이번 선택으로 지난 경험이 어떤 의미였는지 선명해졌다. 불안했던 과정을 거쳐 내 삶에 좀 더 큰 안정감을 가져다줄 안식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숙성의 기간을 지나 의미를 마주하고 나니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게 됐다.
‘나다운 집’이란 어떤 집이냐는 질문에 우아한 형제들의 CBO를 맡았던 브랜더 장인성은 이렇게 답했다.
“나다운 게 뭔지 알아야 나다운 집이 되는데, 그러려면 우선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살고 싶은 삶이 구현되는 집이 나다운 집 아닐까요?”
지난 일 년 간 천천히 흘러가던 시간과 이 공간으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았다. 창 밖으로 녹음이 무르익고 저무는 것을 관찰하며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담고 새, 개구리, 귀뚜라미의 울음을 가까이서 귀로 듣는다. 일주일에 두어 번 자전거를 타거나 도보로 도서관에 가고 공원이나 하천을 따라 달리기도 한다. 이곳에서의 일상은 내가 추구한 삶과 다르지 않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구현하게 하는 이 집은 나답다. 차곡차곡 시간이 쌓여 나의 집이 고요하되 잘 정돈된 생활의 흔적이 묻어나는 따뜻한 공간이 되길. 고마운 마음을 담아 오늘도 정성스레 집을 가꾼다. 친애하는 나의 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