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질에도 사랑은 있다.
‘목을 쳐 죽일 년!’
걸쳐서 하는 말과 직통으로 하는 말의 차이를 평산은 똑똑히 구별한다. 어느 놈이 했느냐 하며 별의별 욕설을 퍼부었을 때는 오불관언이지만 네놈이 도둑이다 했다면 가만있을 수 없다.
평소 늘 개차반 같은 사내지만 자식과 마누라를 모욕하자 김평산은 부녀자에게 미친 개처럼 달려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양반'입네, 라고 뒷짐지고 다니는 그. 하지만 내 가족을 욕하는 상황에서는 '양반'은 개나 줘버려, 하고 눈에 쌍심지를 켠다.
오늘 다시 읽으니 망나니 평산이 다르게 보이며 ‘부성애란 이런 거네. 이 자도 내 가족, 내 새끼는 물불 가리지 않고 거둘 줄 알지.’ 괜히 쪼금 멋져 보이기도 한다.
끓어넘치는 가족애는 무모함도 통할 수 있구나. 평산이를 남편으로 둔 함안댁은 한편으론 든든하겠다.
아! 무식함과 비열함을 '든든함'과 '애정'으로 포장하는 나의 글에, 평소 김평산을 극혐하시는 분은 후일 닥칠 그의 짧은 생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눈 감고 읽어 주시길.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갖은 복(福)을 다 누리면 영화 같겠지만, 그중 하나 꼽으라면 눈에 불을 켜고 계집이든 사내든 안중 없이 주먹질로 피를 보고야 마는 평산이 같은 사내를 동료로 남편으로 복(福) 주머니 안에 넣어 두면 참 좋겠다 싶다.
억울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큰 소리는커녕 내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어보지 못하고 속으로 꺼이꺼이 울어대던 수많은 날, 이런 든든한 동료가 옆에서 버티고 있어 준다면 무슨 일이든 편하지 않을까.
무한 신뢰, 무조건적인 신뢰. 이런 관계가 비단 가족 안에서 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맺어지는 많은 인간관계에서 엮어지면 재물복(福) 부럽지 않은 사람복(福)으로 마음은 365일 한가위일 테니까.
평산에게는 함안댁이, 귀녀에게는 강포수라는 복(福)이 있어서 원하는 대로 소리치며 행동할 수 있었던 (비록 짧지만) 그들의 시간을 잠시 부러워해 본다.
복(福)이 많기 보다는 복(腹)이 위대한 위(胃)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