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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나는 소년, 길상

by 날개 달 천사

대막대기 갈라진 틈 사이, 이끼 낀 돌무더기 틈 아래 뭐 대단한 게 있겠냐 싶어도 어둡고 축축한 곰팡내 가득한 땅 속에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무수합니다.

새까만 개미 떼와 동글동글한 개미 알 무더기.

그것들을 톡 터뜨리고 싶은 욕망을 누를 줄 아는 길상이에게 발견되니 요녀석들, 운이 참 좋습니다.

눈에 띄지도 않는 곤충과 알조차 존귀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길상이니까요.


이런 미물은 물론 영팔이네 소까지 염려하고 미천한 신세의 한복이도 불쌍히 여겨주는 길상이는 따스운 마음 한쪽을 누구에게라도 내어 줄줄 아는 인물입니다.

작은 틈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 그 틈을 비집고라도 들어가 보고 싶은 사람.

어여쁜 꽃같지만 구슬 같이 차갑고 작은 독수리 혹은 늑대 같은 서희에겐 훈풍의 길상이가 세상으로 향하는 작은 통로이자 숨 쉴 틈이었을 겁니다.



내 작은 틈은 나를 숨 쉬게도 하지만 누군가를 쉬어 갈 수 있게도 하지요.

내 안의 번뇌와 욕망이 꽁꽁 갇혀만 있으면 곪고 썩겠지만 길상이 같은 이가 곁에서 숨을 불어 넣어 준다면 사는게 따뜻한 건 물론 신명날 것 같네요.


나도 길상이를 보면서 틈이 있는 사람, 틈이 있는 일상을 꿈꾸어 봅니다.

옹골차고 단단한 사기그릇이기 보다는 투박하게 매만져진 외양에 군데군데 숨구멍이 있는 옹기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길상이처럼 사람 냄새 나는 이가 되고 싶습니다.

와글거리는 개미 떼를 짓이기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따뜻한 시선도 보낼 줄 아는 사람, 온돌같은 뭉근함으로 마음 귀퉁이를 내어 줄줄 아는 사람.

빈 틈이 있는 덕분에 빛이 스며 드는 사람.



그렇게 되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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