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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유

<토지>와 함께 걸어갑니다.

by 날개 달 천사

오락가락 하는 날씨 속에 눈 한 번 감고 뜨니 꽃을 만끽할 새도 없이 봄이 지나갔습니다. 긴 소매 옷도 옷걸이에서 채 거두지 못했는데 엉겁결에 맞이한 여름. 땀 한 번 제대로 흘려 보지 못하고서 곧 가을과 맞딱드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세월 참 빠르네요.


어른들 말씀에 ‘시간은 나이만큼의 속도로 간다’더니 불혹을 훌쩍 지나고 보니 매일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기분입니다. 너무 빨라 멀미가 날 지경이에요. 브레이크 없는 시간이 어지러워 겨우 기둥을 붙잡고 뒤돌아 보니, 와.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집니다.




요즘 <토지>와 함께 세월을 걷는 중입니다.

소설이 인간사를 반영한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 삶이 한 편의 소설을 닮은 이유일까요.

토지 속 모든 인물이 현실을 고스란히 빼닮았습니다. 읽다 보면 내 모습도 보이고 주위의 여러 이웃도 소설과 고스란히 닮아 있어요. <토지>는 누구 하나 허구로 보이지 않을 만큼 진짜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논밭도 뺏기고 나라도 빼앗긴 백성.

그들의 삶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없이 통째로 흔들리며 요동을 칩니다. 그 억울함과 원통함은 텍스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책 밖으로 튀어나와 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풍전등화 같은 일상, 하루살이 같은 인생, 뿌리를 내리지도 못하는 부평초 같은 삶을 살고 있거든요.


어떤 것이 좋고 나쁜지 정답은 없습니다.

옳고 그름도 쉽게 판단할 수 없고요.

영원한 나의 것도 없고, 변함없는 내 편도 없습니다.

한(恨)과 정(情), 실상과 허상이 혼재하면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현실 속 우리도 마치 소설같이 살아가지요.




주인공 길상이의 시선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벅찬 두 남정네가 주막에서 내뱉는 술주정에 길상이가 귀를 기울이고 있어요. 내 땅붙이 하나 없고 있는 것 마저 족족 내어 주어야 하는 좌절과 고통의 하루.

‘차라리 친일이 낫겠다!’며 변절이 또 다른 희망일까 저울질하는 두 사내의 이야기는 답답하고 막막한 길상이에게만 질문하는게 아니라 제게도 부메랑처럼 많은 질문으로 돌아 옵니다.


‘나는 꿈이 있을까.’

‘내 꿈은 허상은 아닐까.’

‘혹시 한(恨)을 꿈이라 착각하고 잘못된 이정표를 따라가고 있진 않을까.’

‘옳고 그른 것은 뭘까.’


모진 시간 속에서 독립을 하든 앞잡이를 하든 그들에게도 나름의 꿈이 있을테지요. 복수를 하든 사랑을 하든 그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길상이도 역시 꿈과 현실에서 번뇌 중입니다. 나라를 위하는 것 따위는 모르겠지만 자아를 찾고 싶은 마음과 가족을 생각하는 두 갈래 길에서 진짜 가고 싶은 길이 어디인지 갈등합니다.

나의 질문도 길상에게 함께 얹어 길을 따라 갑니다.

우리가 꿈꾸는 시간이 헛되고 모진 고문이지 않길 바라봅니다.




길상이가 번뇌하는 동안 그의 반려자 서희도 한 쪽에서 독이 서린 모습으로 악을 쓰며 갈등 중입니다.

“나는 내 힘으로 내 잃은 것을 찾을거야!”라며 이를 악물고 다짐하는 그녀의 모습, 애처롭네요. 나의 어느 한 면도 그녀에게 투영됩니다.

서희는 자신의 집념 속에서 때론 고독이 때론 회한이 들겁니다.


나도 버티고 있는 삶 속에서 더러 고독과 회한이 밀려 옵니다.

지독하게 참아가며 살아 왔는데 여전히 끝나지 않은 레이스가 막막해서 숨이 찹니다. 어떤 날은 벅찬 호흡에 아슬아슬하기도 휘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서라도 꿋꿋이 버티는 서희가 대단하기도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덕분에 위안도 받고요. 동병상련이랄까요.

다 내려 놓고 싶을만큼 외롭고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이라 정신을 가다듬고 크게 숨을 들이키고 주먹을 쥐며 내일로 향합니다. 서희, 그녀도 버텨 주니까요.




‘나는 이 세상에 뭘 하러 나왔는가. 몸단장하고 술잔에 술을 따르기 위해 나왔나? 부평초 같은 서러움, 죽어서 망령 되면 난 어딜 갈까?’

법당에서 불경을 외며 정신을 가다듬는 서희 곁에 소리없이 앉아 있는 서희의 어릴적부터 함께 한 벗,기화의 속엣말입니다.

아.누구하나 버티지 않는 이가 없네요. 삶이 이렇게 버거운 것일까요?

기화가 부처님 전에서 속으로 울며 되뇌이는 말을 따라 나도 함께 눈을 감아 봅니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뭘까,’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어떻게 살아야 내 존재 자체가 이유가 될까.’


목적지가 없지도 않고 뿌리도 있는데 마치 자리하지 못하고 구름이 떠돌 듯 맴을 도는 것 같은 요즘입니다.

‘지아비는 밭 갈고 지어미는 길쌈하고......어머닌 나더러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지아비는 밭 갈고 지어미는 길쌈하고......사람이 사는 이치가.’ 라며 어미의 말을 떠올리면서 요동하는 기화처럼 저도 소용돌이칩니다.




평범한게 가장 어렵다지요. 모두가 범부(凡夫)의 삶인 듯 하지만 들여다 보면 소설책 1권은 족히 나올 법한 특별한 사연 일색입니다.

‘오순도순 정답게’ ‘누구나 그렇게 사는’ 보통의 삶, 모두가 희망하지만 아무나에게 쉽지 않은 그것이 어쩌면 우리 삶의 꿈이고 목표이며 살아가는 이유는 아닐까요.



역사의 운행(運行) 속을 흐르고 있는 이들처럼 나의 반 백년의 시간을 밑바닥에서부터 긁어 살펴 볼까 합니다.

그리고 거슬러 불어 오는 바람을 이제는 피하지 않고 느껴 볼까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의 반 백년, 내가 살아갈 이유를 더 잘 찾을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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