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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니 Sep 06. 2016

[베를린에서 한 달] 동네에 작은 주말시장이 섰다.

그리고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음악

나는 힙스터가 싫어요.


그전에 잠깐 잡담을 하자면, 나는 홍대에서 오래 살던 사람이었다. 대학교를 서울로 온 후 기숙사 1년을 살았고, 기숙사에서 '더 이상 너는 여기 살 수가 없어.' 하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짐을 싸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자취생활이야말로 오랜 나의 로망이었던 것인데, 실상은 밥 먹자마자 하지 않으면 벌레가 새로 리젠되는 스폿이 되는 설거지 더미와, 누가 갈아주지 않으면 석봉이와 어머니가 있었던 그 어둠 속에서 몇 달이고 있어야 하는 전구와, 한 달은 찰나와 같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공과금 고지서만이 나를 반기는 것이었단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활이란 것이 이렇게 쓴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홍대에 대한 나의 사랑은 한결같아서, 학교를 다닐 때도, 졸업을 하고도, 취업을 하고도, 그리고 다시 프리랜서가 되어서도 집을 옮길지언정 동네를 옮기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등산이라는 아재 같은 취미가 생긴 내가 며칠간의 등산을 마치고 큰 배낭을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등산가방을 짊어진 대신 서로를 부둥켜안은 어린 커플들이 가득한 상수역에서 나는 문득 초라해짐을 느꼈다. 흙 묻은 등산화와 화장하지 않은 얼굴도 나인데 이것이 불편한 나의 동네라니 떠날 때가 된 것을 느꼈다.


안 그래도 밤늦게까지 능숙하지 않은 라이브를 연주하는 가게들과, 서로 사랑한다고 새벽에 목을 놓아 부르짖는 소리와, 집 앞에 아침의 비둘기 밥을 만들어놓는 취객들이 지긋지긋한 터였다. 나는 이제 창문을 열어놔도 조용한 곳으로 이사를 가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멀지는 않지만 조용한 동네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베를린으로 날아왔다.


대체 왜! 힙스터가 싫어서, 힙스터를 피해서 이사를 해놓고 다음날 힙스터의 원조도시로 온 걸까? 어디든 한 달 살아보고 싶었던 내가, 미술관도 많고, 볼거리도 많으면서도 너무 번잡하지 않은 도시를 찾은 게 왜 여기였을까? 비행기 표를 끊은 그때 나는 무엇엔가 홀렸던 것일까? 여긴 정말 어느 곳에서나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중정이 가운데 있는 디귿자(ㄷ) 또는 미음자(ㅁ) 건물의 한 곳에선 반드시 누군가가 음악을 틀어놓는다. 구조상 메아리치듯 잘 들리는 건 당연하다. 심지어 지하철 열차 안에서도 음악을 틀어놓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다양한만큼 장르도 다양하다. 음악이 싫은 건 절대 아니지만 (오히려 좋아하는 편) 왠지 이런 식으로 방해는 받고 싶지 않았다.


예상과 다른 상황들이 하나둘 생기자 괜히 심통이 난 나는 적응이라고 쓰고 잠이라고 읽는다 을 하는데 시간을 며칠 보낸 다음 외출을 했다. 숙소가 있는 동네도 토요일이라 작은 시장이 서는 모양이다. 이 곳은 주말엔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는 대신 벼룩시장 등의 장이 곳곳에 선다. 집 근처에는 장이 설만한 공터나 광장이 없는데, 차가 다니는 길을 막고 장터가 생길지는 몰랐다. 여느 장과 마찬가지로 옷을 파는 사람도, 아이들을 위한 체험부스도, 집에서 가지고 온 음식을 가지고 온 곳도 있었다. 음식을 앉아서 먹을 수 있게 간이 테이블과 의자도 잘 구비되어 있었다. 살만한 게 없나 부스를 둘러보던 나는 조금 놀랐으니.



바로 엠프가 설치되고 있었던 것! 그리고 드러머가 머리에 두건을 맸던 것! 아니 이건 최소 데쓰메탈이고, 나는 소음으로 죽을 것이 분명해. 빨리 집으로 들어가 창문을 꽁꽁 닫아야겠어. 시장을 둘러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숙소로 들어갔다. 상수동의 우리 집에선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서 도망 나갔어야 했던 상황이 오버랩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작은 장터에서도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조금은 부러웠다. 음악과 그림이 녹아 있는 삶. 그건 강을 막아서 보를 만드는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임을 알기에. 아 그리고 곧 들려오는 음악은 잔잔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블루스였다. 나는 창문을 다시 열고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왜 난 힙스터의 도시에 온 걸까? 어디서부터 홀렸는지 더듬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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