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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니 Sep 10. 2016

[베를린에서 한 달] 어쨌든 저녁이 있는 삶

Viktoria Park의 일몰

Viktoria Park의 일몰


처음부터 공원에 가려던 건 아니었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Florida Eis는 발견하는 즉시 사 먹도록 하자. 이름은 이렇지만 Made in Germany 제품이다.)을 한통 사들고 먹을만한 곳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던 우리는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서울에서는 찾기 쉽지 않은 공원이지만 베를린에서는 곳곳에서 큰 규모의 공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겐 한강 고수부지가 있다. 이것도 감사할만한 일이다.


대부분의 직업을 가진 한국 사람은 저녁에 공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근처에 한강에 들러서 맥주 한잔을 하려고 해도 벌써 해가 진 다음이다. 어두컴컴한 다리 밑에서 모기를 쫓으며 감상하는, 야근하는 사람들이 밝혀 주는 한강의 야경은 아름답지만 꽤 쓸쓸하기도 하다. 언젠가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주말에 전시장에 들러서 이런 말을 했다. '왜 전시장은 늦게까지 하지 않아? 회사원들은 평일에 올 수가 없는데.' 그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글쎄, 다들 그렇게 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라고 답했지만, 늦게까지 일을 하는 한국의 문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문득 든 건 몇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다. 늘 늦게 끝난다면 평일에 하루쯤은 쉬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주말에도 일하는 게 당연한 사람들에게 주말조차 갤러리를 들르라는 건 배부른 소리 같다. 밀린 잠을 자도 모자란 주말이란 걸 알고 있다.


프리랜서인 나는 물론 직장인보다는 시간 유용이 자유롭다. 그래서 팽팽 노는 것이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보통 오전에 일을 시작해 내 나름의 칼퇴를 시전 한다. 그동안은 꽤 압축적으로 일을 한다. 그 편이 효율적이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저녁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보내기 위해서다. 저녁이 있다는 삶은 어떤 것이냐면, 평일에 미용실을 갈 수 있다는 것. 조금 늦게까지 하는 병원에도 역시 갈 수 있다. 물론 서두르면 갤러리도 한 군데 정도 들를 수 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 한강에서 노을을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그것이 오히려 행복하다는 것은 회사를 나오고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회식도, 일이 늘어져서 늦어지는 퇴근도,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을 수 없는 생활도 이제는 원하지 않는다.


베를린에서는 이런 결정이 멋지다거나 대단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한국에서는 민망하게도 종종 듣는 이야기). 카페는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이 되면 문을 닫는다. 점심메뉴까지 해야지 겨우 이문이 남는 술집 같은 건 없어 보인다. 어떤 갤러리는 심지어 일주일에 이틀만 문을 연다. 평일에 문을 닫는 가게도 많고, 휴가를 길게 쓰는 가게들도 많아 단기 여행자들은 가볼 수도 없는 곳들이 많다. 자신의 삶은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결정으로 채우겠다는 것을 잠깐 머물고 있는 내게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아마 남은 시간은 자신의 가족과 연인과 가족인 개들과 함께 보내지 않을까. 이렇게 해가 지는 것을 천천히 감상하기도 하면서. 그 삶 속에 고단함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결정엔 휘둘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좀 한국적이긴 하다.


'주인, 넌 나만 바라봐'
사물의 식별이 어려울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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