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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니 Jan 21. 2016

[오키나와 여행] 가장 가까운 낙원 도카시키섬

오키나와 여행 3일째. 도카시키섬으로 들어갔다.


2015년 12월 13일 일요일

오키나와 여행 3일째에 접어들었다.
나는 도카시키 섬으로 들어갔다.


오키나와 여행 3일 째. 도카시키섬 백패킹 에피소드.


이제 오키나와도 3일째이다. 가을 날씨처럼 포근한 날씨는 바로 적응이 되었지만, 바닷바람에 끈적거리는 얼굴과 손은 영 적응이 안된다. 3일째 날은 도카시키섬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정이다. 섬에서는 백패킹을 해야 하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배낭에 텐트를 욱여넣고 숙소를 나섰다. 배를 놓칠까 긴장해서 항구에 너무 일찍 도착한 모양이다. 은혜로우신 일본 패밀리마트에서 산 아메리카노로 부은 얼굴을 달랜다. 음 역시 카누보다는 맛있군. 그리고 어제 남은 샌드위치로 대충 배를 채웠다. 하루 지난 샌드위치 속 때문에 빵이 젖어서 울고 있다. 나도 눈물이 좀 났지만, 어쨌든 맛은 있었다.


나하시에서 도카시키섬까지 가는 배는 2종류가 있다. 하나는 페리로 소요시간이 1시간 10분가량 걸리고, 고속선을 탈 경우 단 35분이면 섬에 도착한다. 그러니까 나하시에서 가장 가까운 작은 섬*이었던 것. 게라마제도**에서는 자마미 섬***이 더 유명하고 유동인구도 많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작고 소박한 도카시키 섬이 더 끌렸다. 물론 가까워 이동시간이 짧다는 것도 선택의 큰 이유였다.

섬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배는 두 종 합쳐서 3번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가격은 페리가 더 저렴하다(1760엔, 고속선 2490엔). 돈도 돈이지만 배 2종을 다 경험하고 싶어 도카시키섬까지는 페리를 탔고, 다시 돌아올 때는 고속선을 탔다. -이렇게 편도로 끊지 않고 같은 종류를 왕복으로 끊을 경우는 약간의 할인이 된다.- 둘 다 경험하고 난 다음에 쓰자면 페리가 훨씬 좋다. 이 배에 비하자면 덕적도와 인천을 오가는 배는 노동자 수송선 같은 느낌이랄까. 크기나 서비스는 당연히 크루즈만 못하지만 깔끔한 시설이 감탄을 자아냈다. 선실은 장판 대신 카펫이 깔려 있고 화장실도 시설과 관리가 웬만한 호텔급이다. 화장실에 앉아서 오겠냐고 물어도 그렇다고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배든 저 배든 역시 선실은 옷을 둘둘 말아서 베고 누워버리는 사람들로 가득 하단 사실은 만고 불변의 진리인 듯.


쾌청한 이날의 하늘. 흔들림도 없이 편안했다.
바람이 부는데도 갑판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이 보기 좋다.
수평선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다.


도카시키 섬엔 크게 3개의 마을이 있다. 도카시키 항구 근처의 도카시키 마을, 도카시쿠 해변에 달린 도카시쿠 마을, 아하렌 해변에 있는 아하렌 마을. 이 중에서 내가 머물 곳은 아하렌 해변이었다. 도카시키 항구에서 배를 내리고, 버스로 10분가량을 가면 된다. 버스 타는 곳을 찾는 곳은 어렵지 않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 버스 타는 곳이라고 쓰여있는 큰 표지판을 들고 안내를 해주기 때문이다. 버스비 400엔을 준비해서 버스에 탔다. 사람들이 많이 탈 줄 알았는데, 대부분 민박에서 픽업을 나오는 모양인지 버스엔 거의 타지 않더라. 기사 할아버지가 내 큰 배낭을 보더니 캠핑을 할 거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했더니 내릴 때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으로 알려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하렌 해변(이후 비치로 표기)에는 캠핑장이 있었다! 그냥 바닷가에 텐트 치려고 했는데, 그렇게는 안 되는 모양이다. 캠핑장 이용료 500엔을 일단 냈다. 캠핑장은 어차피 바닷가에서 걸어서 몇 발자국 안 되는 곳이라서 일단 바닷가에 그늘을 만들 겸 텐트를 쳤다. 그랬더니 동네 주민인지, 안전 요원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를 사람이 와서 해가 지면 바닷가가 위험하니 잠은 캠핑장 안에서 자라고 한다. 바다거북이가 심심찮게 출몰한다고 들어서 코웃음을 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위험하다고 한 건 거북이가 아니고 뱀이었을 것 같다. 어쨌든.


코발트보다는 셀룰리안 블루에 가까운 뽀얀 바다, 더 뽀얀 곱디고운 모래, 얼기설기 꼬인 신기한 형태 줄기를 가진 잎 넓은 나무, 이미 낮잠을 즐기고 있는 어느 커플. 이게 아하렌 비치의 첫인상이다. 뛰어 놀라고 판을 벌려주는 느낌의 바다가 아니라, 좀 쉬었다 가라고 가만히 곁을 내주는 느낌의 바다. 수영복이 있었다면 들어가도 될 정도의 온도였지만 준비된 것이 없어서, 그냥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로 장난을 치고 그랬다.

그리곤 텐트를 쳐놓고 한 숨 늘어지게 잤다. 졸렸다기보단 그냥 여행 와서 바닷가에서 낮잠을 자는 그런 짓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12월의 아하렌 비치는 햇살이 너무 강렬해서 텐트 안이 마치 사우나처럼 푹푹 찌는 것이었다. 식은땀인지 더운 땀인지 땀을 흘리며 낮잠을 계속 잘 수는 없어서 카메라를 챙겨 들고 동네 마실을 나섰다.


고양이 섬이라고 불리는 섬에 따로 갈 필요도 없겠다. 도카시키 섬은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다. 비수기라서 그런가. 어쨌든 고양이 성수기임은 분명하다.
구역을 시찰하고 있는 고양이님. 이 구역의 길고양이는 나야.
바다와 햇볕의 아하렌 마을.
사인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정지라는 글은 어쩐지 귀엽다.
벽으로 들어간 시샤. 옆에 우체통과 어울린다.
너무나 강렬한 빛 때문에 눈이 흐려진 고양이가 많았다. 앞이 잘 보이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다. 불편할 것이라 예상만 한다.
빠지지 않는 시샤. 섬의 분위기와 잘 맞는 시샤를 하나 찍어보았다.
이 동네 유일한 상점. 안 파는 것 빼곤 다 팔았다.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샀다.
어딜가나 밝은 아이들.


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 다른 동네로 가보려고 하다가 언덕에서 다시 내려왔다. 좀 덥기도 했고, 습해서 짜증도 났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꾸 돌아다니려고 하는 것도 일종의 강박 같았다. 근처 카페에서 시쿠와사**** 주스를 한잔 사 마시고, 기력을 보충해 다시 바닷가로 돌아왔다.


얼추 해가 누웠다. 캠핑장 안 쪽에는 전망대로 가는 길이 있었다. 거대한 모뉴먼트 같은 전망대에서 일몰을 기다려본다. 소환석이 있으면 뭐라도 악마도 귀신도 소환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쨍쨍하던 낮과 달리  해질 녘엔 구름이 몰려와서 오늘은 해도 노을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시무룩. 정말로 해가 지기 전에 전망대를 서둘러 내려온다. 오늘 밤은 어쩐지 어둠이 무서워요.


전망대를 내려와 텐트를 걷어 다시 캠핑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이었다.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캠핑장보다는 사람이 1명 있는 캠핑장이 더 무섭겠지. 그래도 그 넓은 공간은 부담스러워 캠핑 사무소 근처 화장실 앞쪽 공터에 텐트를 다시 쳤다. 나무 사이에 아늑하게 텐트 한 동 모실 공간이 있었다. 캠핑장은 아니지만 괜찮겠지. 관리자가 뭐라고 하면 다시 안으로 들어가지 뭐. 라고 생각하는데, 관리자가 퇴근을 한다. 네? 할머니. 저를 두고 가시나요? 잠깐만요. 잠깐만. 그래도 괜찮을 거다. 그럴 거다.


사람을 피해서 오긴 했지만 한명도 없으면 무섭다. 그래도 바닷가에 최소 2명은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이 카메라는 사진이 차분하게 찍힌다. 실제 바다색은 채도가 훨씬 밝았다.
일몰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럼 별도 못 보려나.
바다 안 돌도 비치는 깨끗한 물
소박하고 아담한 아하렌 비치. 파스텔 물빛과 하늘빛이 조화를 이뤘더랬다.
둘이 맥주를 마시며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굉장히 궁금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계속 도시에서 사는 나에게 이런 적막함은 괴로움보다는 두려움이었다. 조금만 걸어나가면 불빛이 보이지만, 또 조금만 안으로 들어오면 칠흑 같다. 간간이 볼 수 있었던 사람들로 이 섬이 비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안심이 될지 몰랐다. 텐트를 쳤다 걷었다 하다 보니 배가 고프다. 가고 싶었던 식당은 문을 닫았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비수기라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캠핑장 바로 옆에 옥토퍼스 가든이라는 곳이 있는데, 저녁에 문을 열고 술을 파는 곳이지만 식사도 가능한 것 같았다. 식사가 되는지 물어보고 바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예약으로 만석인 것 같았지만, 한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혼자 다니면 이렇게 어떻게든 껴서 먹게 된다는 점이 참 좋다. 가게에서 틀어 놓은 데뷔한지 40년 된 가수의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는 다큐멘터리 + 토크쇼를 보면서 치킨 난바를 먹고 아와모리 칵테일을 마셨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은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며, 노모와 아직 함께 살며 다른 식구는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훌륭한 어머니에 훌륭한 딸이라며 사회자가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어쩐지 그 가수는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나보다 훨씬 외로워 보였다.   


밤은 깊어가지만, 술을 마신 나는 겁이 조금 덜 났다. 텐트 안에 들어와 살짝 취한 상태에서 랜턴을 찾아보았으나 어느 구석에 들어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침까지 이왕이면 가장 무서운 상태로 있으란 계시라고 생각하고, 하지만 정말 잠을 못 자는 건 싫었으므로 오리온 맥주를 한 캔 더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자리에 누웠다고 하니 술 마신 자리 다르고 누운 자리 다르고 할 것 같지만, 텐트는 1인용으로  앉은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바로 그 자리에 눕는 상황이다. 아 혈관에 알코올이 흐른다. 기분이 좋아진다. 잠에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 들었다가 깼다. 엄청난 무언가가 텐트 주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게였다. 다시 잠이 들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다시 깼다. 침입자인 것 같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핸드폰을 비췄다. 텐트 입구에 둔 음식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고양이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이번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 다시 깼다. 이건 확실하다. 일본이니까 천재지변이 생겨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잖아. 약하게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텐트 안에서는 모든 게 크고 확실하게 들린다.


나 혼자 아무것도 아닌 것들과 사투를 벌였지만 그런 밤은 없었다는 듯 아하렌 비치에 다시 아침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게다가 생각보다 몸이 개운하다. 이상도 하지. 이제 다시 도시로 돌아갈 시간이다.  


*작은 섬 : 오키나와 본토 외 작은 섬들에 '낙도'라는 표현을 쓰더라.

**게라마 제도 : 도카시키 섬이 속해 있는 제도. 자마미 섬, 이카 섬 등이 있다.

***자마미 섬 : 게라마 제도에 속한 섬으로, 후루자마미 비치나 아마 비치 등이 유명하다.

****시쿠와사 : 오키나와 특산 과일. 유자와 비슷한 맛으로 매우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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