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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Jun 06. 2020

여러 개의 작은 구원

단 하나의 완벽한 문장보다는 여러 개의 작은 문장을


4. 불변의 법칙이 만들어 낸 문장


나는 작은 아이와 배를 깔고 바닥에 엎드려 눕는다. 우리는 큰 스케치북에 이런 저런 것들을 적어 본다.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 그 때 우리가 했던 생각, 그 때 우리를 사로 잡았던 감정, … 그것들은 머릿속에서 너무 오래 반복되었기에 불변의 법칙처럼 느껴진다. 불변의 법칙은 제멋대로 이런 문장을 만들어 낸다. 나는 부모님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고, 그 결과 타인의 욕망을 우선하는 습관이 생겼으며, 그 습관은 극도의 불안함을 야기하였다.


문장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히 일리 있다. 나는 엄마 아빠를 많이 도와줘야 한다며 양육된 ‘맏딸’이고, 선천적으로 좀 예민한 편이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 아빠의 갈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는데, 그런 엄마 아빠를 보면서 나는 늘 그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생각이야 기특하지만,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미성년자가 무슨 수로 다 큰 성인 둘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늘 그들을 도와주고 싶었고, 그들을 돕지 못하는 것에서 죄책감을 느꼈다. 거기에 더해 기본적으로 나와 엄마의 인터페이스가 잘 안 맞는 문제가 있어서.. 나는 부모님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나에게 부모님은 내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존재였다. 이런 상황이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내 경우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으로 번졌다. 꼭 내가 잘못해서 그들이 불행한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어깨를 쫙 펴고 똑바로 설 수 없었다. 언제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타인과의 갈등 상황에 놓이면 내 욕망은 내팽개치고 타인의 욕망을 생각했다. 좋아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너무 너무 싫은데 억지로 그랬던 것도 아니다. 그건 정말 습관 같은 거였다. ‘넌 괜찮아?’라고 물을 때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습관은 그 때부터 생긴 걸까. 그래도 무언가를 쓰는 동안에는 자유로우니 괜찮았다. 내가 얼마나 괜찮지 않은지 빈 종이에 백줄 이백줄 마음껏 쓸 수 있으니까. 게다가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습관처럼 나를 내팽개친다. 상대가 부모님이면 특히 그렇다. 타인과 갈등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나는 나를 버리고 상대 편에 선다. 그래서 나는 다른 욕망을 가진 타인과 마주하는 것이 두렵다. 내가 일본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 곳에 살고 있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이 곳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중력이 약하다. 나는 이 약한 중력장 위를 해파리처럼 둥둥 떠다니며 살고 있다.




5. 불길한 예언과의 싸움


과거의 사건에서 도출된 문장은 자꾸만 내 미래를 넘본다. “아직도 모르겠니? 나는 법칙이야. 이걸 봐. 이 문장이 지금까지의 너의 모든 불행을 설명해주잖아. 앞으로라고 뭐 다를 것 같니?” 불변의 법칙은 불길한 예언이 되어 나를 잡아 먹으려 한다.


나는 역접의 접속사로 맞선다.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 덕에 비극에 잡아 먹히는 걸 면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저 간신히 버티고만 있을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 이야기의 다음 문장으로 어떤 게 좋을까, 도대체 어떤 문장을 써야 저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런데 정말 그런 문장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러는 동안 불변의 법칙은 다시 주도권을 가져가 버린다. 버티다가 끌려가고, 다시 버티다가 끌려가고, ... 그것을 반복하는 나를 바라보던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거, 불변의 법칙이 아닐 지도 몰라요.”


단 하나의 완벽한 문장을 찾으려던 나는 고개를 들어 불변의 법칙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여태껏 모아 온 생각의 파편들을 모아 불변의 법칙에 맞서는 여러 개의 작은 문장을 잔뜩 만들어 낸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했어.

> 그치만 지금 나에겐 좋은 친구들이 있어.

> 사실 최근 몇 년을 생각해보면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

> 그리고 또 나쁘면 어때? 부모님과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해서 꼭 불행해 할 필요는 없어.


나에겐 타인의 욕망을 우선하는 습관이 있어.

> 그치만 일을 하면서 조금씩 극복하고 있어.

> 또 친구들을 대상으로 조금씩 연습도 하고 있고.

> 솔직히 어떤 습관을 고쳐야 하는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해.


나는 극도의 불안함으로 괴로울 때가 있어.

> 하지만 지금 내가 그렇다고 해서 영영 그것에 속박되어 살아야 하는 건 아니야.

> 일단은 내가 나를 내팽개치지 않는 연습부터 해보면 되잖아.

> 그런 연습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어디니?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을 것만 같던 단단한 법칙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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