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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Nov 01. 2019

현명하게 포기하고 싶어요.

넷플릭스 <언브레이커블 키미슈미트>

저는 요즘에 <언브레이커블 키미슈미트>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인상 깊게 본 장면에 대한 아주 주관적인 코멘트를 남겨볼까 해요. 

오늘의 키워드는 [포기]입니다. 


* * *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키미입니다. 키미는 열다섯살 어린 나이에 사이비 교주에게 납치당한 뒤 무려 15년 동안, 그러니까 살아온 인생만큼의 긴 시간을 지하 벙커에 감금당한 채 지내게 됩니다. 각각의 사정으로 끌려온 다른 세 명의 여자들과 함께 말이죠. 혼자가 아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구출됩니다. 다른 세 명은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키미는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고 하죠. 그녀가 뉴욕에서 겪는 다양한 일들이 이 드라마의 주요 소재입니다. 


키미는 15년의 감금 생활을 겪은 사람답지 않게 무척이나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캐릭터입니다. 그녀의 그런 노력에는 자신이 괜찮은 존재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마음과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뒤섞여 있습니다. 키미의 노력에서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키미, 힘든 과거는 괜찮은 척 한다고 사라지지 않아요.


하지만 키미는 자신의 방식을 계속 고수하죠. 


"강한 사람이라면 과거는 과거에 묶어둬야죠. 과거가 탈출하려고 하면 키미처럼 벙커에 가둬두면 돼요."


"진정 좀 해봐요." 


"난 이미 너무 많은 걸 놓쳐버려서 진정할 시간이 없어요. 크리스마스를 15번이나 놓쳤다고요." 


그 동안 놓쳐버린 15번의 크리스마스를 되찾기 위해 키미는 가짜 크리스마스를 지정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키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아주 단적인 장면이죠. 그게 키미의 방식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 할 지라도 어떻게든 만회하려 애를 쓰죠. 키미의 사전에 포기란 없으니까요.


짝사랑을 할 때조차도 키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키미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베트남 친구 동을 좋아하게 됩니다. 동도 키미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이민국의 단속을 피해 어쩔 수 없이 검정고시 학교 동창인 할머니와 부랴부랴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 위기가 닥치죠. 이민국에서는 그 결혼이 사실혼인 걸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미국에서 추방될 위기에 처한 동을 돕기 위해 키미는 애를 씁니다.


좋아하는 상대를 눈 앞에 두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면서, 상대의 가짜 결혼생활이 유지되도록 돕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죠. 하지만 키미는 여기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동과 할머니의 가짜 앨범을 열심히 만들면서도 동이 자신의 남편이면 좋겠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릴리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포기 같은 거 안 하는 사람인 건 알아.
그치만 가끔은 포기하는 게 제일 힘든 일이기도 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라면 계속 마음을 쓰며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는 깨끗하게 포기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구나. 사람들은 포기가 노력보다 쉽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포기야말로 무겁고 어려운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릴리안이 키미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 역시 그런 거겠죠. 헛된 희망을 품으며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는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세상에는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면 마음에 병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부모님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을 가정해볼까요? 자식으로서는 당연히 부모님의 관계가 좋기를 바라겠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할 테구요. 두 분의 행복을 바라는 편지를 쓴달지, 두 분이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자신의 앞가림을 잘 한달지.. 돈이 문제인 것 같으면 자기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집안을 부양하려고도 하겠죠.


하지만 자식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사이가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문제는 두 분 사이의 일이니까요. 그럼 이 상황을 자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포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죠. 그건 사실 너무나도 슬프고 힘든 결정입니다. 화목한 가족이라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결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야만 중심을 잡고 자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포기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 것이 아닙니다. 이 쪽 길로는 가지 않겠다는 하나의 '선택'입니다. 그 선택은 이 쪽 길로 가겠다는 선택만큼이나 용감하고 의미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마음이 너무 괴로운 분들이 계시다면, 그래서 포기를 하고 싶은데 포기하면 왠지 지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포기 또한 용감하고 의미 있는 선택이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그건 저에게도 유효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지금의 저에게 필요한 건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보다는 현명한 포기를 위한 지혜와 용기인 것 같거든요. 


https://www.youtube.com/watch?v=V0C1okmu_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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