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 생활 10년차, 아직도 고양이를 모른다
베리를 처음 만난 곳은 연희동의 한 '애견샵'이다. 아직도 저런 곳에서 동물을 '사들이는' 사람이 있나 혀를 차던 시절이었다. 그 샵 앞을 지날 때마다 눈에 띄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베리다.
베리는 성묘인채로 그곳에서 늘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떤 설명하기 힘든 묘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인연'이란 것이었나 싶다. 의욕이 없으나 약간의 호기심을 담은 눈빛.
동물을 사람보다 좋아하는 나에게 고양이란 존재는 극히 사랑스러우나 감히 넘볼 수 없는 어떤 이상향의 생명체였다. 그 우아함, 아름다움, 귀여움, 새침함...
그러나 생명을 돌본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개든 고양이든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동물들을 축복하며 동경할 뿐이었다.
1년이 넘게 그 샵을 지나칠 때마다 베리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저렇게 예쁜 아이를 왜 아무도 안 데리갈까' 궁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샵에서 동물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으나 성묘인채로 1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하루종일 창밖만 내다보는 아이를 마음 속에서 내치는 일 또한 만만치 않게 내 자신을 갉아 먹는 느낌이었다.
혼자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 남자친구와 함께 돌보기로 하고 마침내 샵의 문을 열었다. 당시 '블링'이라는 이름름으로 불렸던 베리를 소개받던 순간이 기억난다. 문이 열리자 뛰어 나와 자신에게 달려드는 작고 요란스러운 개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 내게로 오던 그 발걸음이 생각난다. 그리고는 내 손가락 냄새를 맡아 주었지.
가게 주인은 "어? 보통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안 오는데?"라고 했다.
나는 미리 익혀둔대로 처음 만나는 고양이의 눈을 똑바로 보지 않은 채 내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손가락을 내밀었을 뿐이다.
알고 보니 베리는 어느 신혼부부에게 입양되었다가 아내가 고양이 알러지가 있다는 이유로 파양되어 이곳에서 1년 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베리는 또 왼쪽 귀가 안 좋았고 뒷 다리 하나는 발가락 하나가 없는 기형이었다. 척추가 조금 뒤틀려 있었지만 걷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우리에겐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저 사랑스러워보였다.
그렇게 베리는 많은 우려 속에 우리 집으로 와 주인님이 되었다. 집사 생활의 시작이었고, 나의 피부 발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