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 책 3
(2023.11.17.~23: 7일간 7권)
비자발적 퇴사자의 일일,선선
은유 작가님 22기 감응의 글쓰기 수업에서 함께 한 학인 선선의 독립출판물. 스토리지북앤필름 네이버스마트스토어 구매. 마지막 뒤풀이 때 선선의 옆에 앉아 선선의 독립출판 스토리를 들으며 그 자리에서 바로 주문 돌입. 자발적이 아니라 비자발적이라 그의 이야기가 정말 궁금했다. 백수 대신 ‘무업’이라니. 오~~. 같은 직장을 14년째 다니고 있는 나는 매일 퇴사를 꿈꾸면서도 퇴사 후의 삶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미생 명대사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무섭잖아. 일단 내공을 쌓자고 다짐하면서 버티다 보니 14년이나 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가기가 무섭다. 비자발적 퇴사자에게도 매일 해가 뜨고 진다. 무업 기간을, 그의 매일은 어떤 모습일까. 선선의 목소리가 들린다. 위트 있고, 시원한 선선 목소리.
소설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정진영, 파이퍼 프레스
20일부터 회사 교육 일정 때문에 일산에 있었다. 하루 종일 강의실에 앉아 업무 교육을 받았으니, 저녁 시간만은 오로지 내 시간. 공식적인 3박 일정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잖아. 근처 동네 서점을 검색했는데, <너의 작업실>이 걸렸다. 교육원에서 버스 타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무료 타로 원데이 클래스에 당첨. 어둑한 골목에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으로 향하니 아늑한 서점이 있었다. 찬찬히 서가를 둘러보는데, 정진영 작가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저는 알지요. 당신은 육지 거북. 우리는 책걸상 토크쇼에서 만났는데. 흐흐. 그날은 당신은 소설가가 아니라 자작곡으로 멋진 노래를 열심히 불렀습니다. 소설 작법서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야만 하는데, 비전공자의 소설 작법서라니 제가 안 사면 누가 사겠습니까.
돌봄 선언:상호의존의 정치학, 더 케어 컬렉티브 지음, 니케북스
바람의 글쓰기 과제 책. ‘돌봄’은 내가 아이를 낳고부터 온몸으로 겪고 있는 과제다. 이어 엄마가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겪는 여러 문제와 앞으로 내가 또 돌봐야 할 부모, 그리고 나 역시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서는 것임을 느끼고 있다. 개인의 문제, 한 가정의 문제로 돌봄 문제를 치부해 버릴 때, 무기력과 분노가 쌓여 결국 폭력으로 변질되어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마주하게 된다. 자주 은폐되기도 하지만. 불편하지만 나의 문제이면서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외면하지 않기.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김경원 옮김, 위즈덤 하우스
바람의 글쓰기 과제 책. 우와. 니은 서점 운영하는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님 추천사라니. 과제 책 정말 좋잖아. 감탄 또 감탄. 책 머리말에 무척 인상적인 문장이 있다. “사회학자로서 구술을 분석하는 일은 지극히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분석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을 모아 언어화하고자 했다.p13”
이해할 수 없는 것의 언어화. 얼마 전 동생을 인터뷰하며 글을 쓰던 날 새벽이 떠올랐다. 알고 있다고 믿었던 세계가 알 수 없는 세계로 변화하고, 알 수 없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내 세상으로 들어왔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살아볼 수 없는 어떤 세상을 책을 통해 들어가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결혼·여름, 알베를 카뮈, 장소미 옮김, 녹색광선
카뮈, 나는 그의 작품 중에 <전락>이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얇은 책인데, 쉽게 읽을 수 없고, 읽고 나서도 한참 머릿속에서 작품이 떠나지 않았다. ‘속죄 판사’라는 개념에 한참 꽂혀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위선과 가식으로부터 나는 더 이상 외면하거나 도망갈 수 없음을 책장 마지막을 덮으며 직감했다. 카뮈의 작품들은 삶을 허투루 살지 못하게 한다.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쉽게 꺼내 읽지 못하기도 한다. 뜻밖에 독서 모임 메이트가 카뮈 책을 추천했다. 설레고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든다. 이번에 카뮈는 나의 무엇을 들춰보게 할 것인가.
시 없는 삶, 페터 한트케, 조원규 옮김, 읻다
헉, 페터 한트케 선생님이 시를 쓰셨다고? 대박. 일단 같이 주문. <소망 없는 불행>, <아이 이야기>을 읽으며 가족에 대한 글쓰기의 새로운 형식을 경험했다. 어머니의 자살과 나, 이혼 후 아이를 양육하는 나. 나와 가족이 혼재하는 여러 감정들의 소용돌이와 그를 끝까지 바라보고 글로 쓰는 그에게 반했었다. 그런데 그가 시인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니. “그의 일생을 담은 단 한 권의 시집”이라는 띠지를 외면할 수 없지. 암.
숲은 생각한다. 에두아르도 콘, 차은정 옮김, 사월의 책
책이 책을 부른다. 박동수 편집자가 쓴 민음사 탐구 시리즈 1권 <철학책 독서 모임>을 두 달에 걸쳐 독서모임에서 천천히 읽었다. 편집자 철학책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책을 소개하는 책인데, 책이 책을 불렀고, 이 책에서 소개된 책 중 이전에 <나와 타자들>을 샀고, 이번에 <숲은 생각한다>를 주문했다. 마지막 3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책이었다. “인간 바깥에서 인간의 조건을 살핀다.p213”라니. 독서모임 메이트들과 12월부터 이 책을 조금씩 낭독하며 읽기로 했다. 나를 넘어선 인식의 사고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