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에도 일상은 있다
4월 30일
- 하루 남았다.
알래스카에서 4월이 끝났다는 것은 한 계절이 진정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5월이 되면 어김없이 여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겨울을 붙잡고 있는 풍경은 아랑곳없이 여름이 햇볕의 폭포수를 쏟아내며 성큼 들어선다. 그렇게 하루종일 해가 지지 않는 시간으로 끌려들어갈 계절이 바로 코 앞이다.
재작년부터 4월이면 찾아오는 단기거주 이웃이 생겼다. 집 앞에 겨우내 싸인 눈이 3월부터 녹기 시작하다가 4월 초 며칠 푸근한 날이 지속되자 빠르게 녹아가면서 마른 잔디를 드러내는 땅의 한쪽이 작은 임시 연못이 되었다.
알래스카의 지질은 툰드라로, 동토라고 불리는 언 토양으로 구성되어있다. 동토는 2년이상 언 땅을 의미하는데 기후변화에 따라 땅 속 얼음이 녹았다 다시 얼어붙는 과정에서 땅 속에 구멍이 생기거나 땅이 들리기도 한다
숲 뿐 아니라 대로변 한켠에도 움푹 패이거나 어느 지형에는 나무의 뿌리가 거의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얼어붙은 땅이 풀려서 생긴 구멍이다. 그렇게 눈이 녹고 땅이 풀리면 물웅덩이가 생기고 자연스레 연못이 들어선다. 툰드라지대에 유독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많은 이유이다.
그렇게 생겨난 집 앞 웅덩이에 청둥오리 한쌍이 날아왔다. 임시 연못이 마치 자기들이 늘 지내던 서식처인 마냥 유유자적 천연덕스럽게 지내다 가던 오리들이 올해는 옆집 앞마당 까지 뒤뚱거리며 와서 나무밑에 떨어진 해바라기씨를 먹고있다.
해바라기씨는 지난 여름 새로 이사온 이웃의 소녀들이 나무에 매달아놓은 새 모이통에서 떨어진 것이다. 새들은 먹을때 부산하기가 이를데 없는데, 얼마나 시끄럽게 모여 먹는지, 먹이통에 담긴 해바라기씨가 바로 아래쪽 땅으로 떨어져 수북히 쌓일만큼 소란을 떤다. 그 결과 내 이웃의 집 앞 나뭇가는 멀리서보면 초록의 잔디 대신 거뭇거뭇한 풀이 돋거나 검은 흙이 덮힌 듯 보였다. 뭐지, 하고 다가가 보면 껍질벗기지 않은 새모이용 해바라기씨가 쌓여 있다 그 위로 내내 눈이 소복히 쌓여있다가 4월에 눈이 녹으면서 다시 드러난 해바라기씨들은 이번에는 오리들에게 손쉬운 먹거리가 되었다. 그뿐인가. 알고보니 그 여리여리한 산수유과 나뭇가지에 다람쥐가 집을 짓고 들어앉아 겨울을 났더랬다. 날이 풀리는 기미가 보이자마자 온동네 다람쥐들이 기지개를 펴고 몰려나와 재잘재잘 꽥꽥 거리기 시작했는데, 오늘보니 4월이면 오는 손님 청둥오리 한 쌍과 집 주변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다람쥐가 적당히 서로 거리를 유지하고는 해바라기씨로 식사를 하고있었다
바야흐로 내 이웃의 집 앞 나뭇가는 동네 야생동물들의 식당이 된 셈이다.
누가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레 생기는, 눈 녹은 물로 만든 연못에, 새들의 북새통에 만들어진 간이식당.
물론 여기엔 살짝 인간의 개입도 있었다.
산수유나무에 먹이통을 걸어둔 이웃의 그 두 아이 말이다.
그들의 어우러짐을 그저 창가에서 말없이 지켜본다.
이제 4월이 가면 저 연못도 마를 것이고, 청둥오리는 목을 축이며 느긋하게 놀다가 먹이를 부리로 쪼아댈 물가를 찾아 떠날 것이고 그렇게 다시 가을이오면 더 따듯한 기후의 어디론가 날아가겠지.
아직 여름이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가을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