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지 Feb 14. 2022

혼돈의 고관절 운동

몸 관찰일지 #1

새로운 필라테스 선생님이 오셨다.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들어갔는데 앞 시간대 수업이 끝났는지 선생님이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잘했어요. 오늘 완전히 에이스였어요! 네, 수고 많았어요. 고생했어요. 네네, 내일 봐요!!”


아침 9시가 되지 않은 시간인데 선생님 텐션이 엄청 높았다. 운동을 빡세게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수업까지 십여분 정도가 남아서 다들 수다를 떨거나 폰을 보고 나는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매트 깔고 잠시 몸 풀고 있으세요”라고 이야기를 하곤 나가셨다.


일주일 만에 필라테스를 하러 왔더니 어리바리를 타고 있었다. 미끌리지 않도록 운동할 때 신는 토삭스를 챙겨갔는데 갈아 신지 않고 신고 갔던 양말을 그대로 신고 있었다. 매트를 깔다가 후다닥 탈의실로 돌아가서 토삭스를 가져왔다.


운동이 시작되고 선생님은 높은 텐션 그대로 동작을 하나씩 설명해주셨다. 보통 아침 시간에 잠이 덜 깬 채로 운동을 따라 하다 보면 동작 설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딴생각을 하면서 따라 하곤 했는데 오늘은 정신이 바짝 들었다.


선생님 특유의 독특한 화법도 집중하는데 도움이 됐다. 필라테스를 할 때는 동작을 따라 하면서 호흡과 시선을 함께 체크한다. 자세를 하고 있는 내 앞으로 오셔서 미세한 동작을 교정해주셨다.


“자, 나 봐요. 시선을 좀 더 위로 들어야죠. 여기 봐봐. 여기 내 목걸이. 이거 어제 샀어요. 이것 좀 봐줘요. 여기, 여기. 그렇지! 잘했어요.”


정확한 턱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 목걸이를 얘기하시는 게 너무 웃겼다. 웃음을 참지 못했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5분씩 나누어서 체어와 바렐이라는 기구를 이용하는 수업인데, 전반부보다 후반부 수업이 훨씬 어려웠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악’ 소리가 날 정도로 내가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이용해야 하는 동작이었다.


동작 사이의 휴식 시간을 5초밖에 주지 않고 다른 동작을 또 밀어붙이셨다. 오른쪽 다리가 끝나면 다시 또 다른 왼쪽 다리로 넘어가 같은 동작을 했다. 다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힘들었지만 오기가 생겨 자세가 조금 흐트러져도 끝까지 따라 했다.


수업의 마무리는 각자가 사용했던 기구를 닦고 선생님께 인사를 하며 나가는 식인데 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씩을 붙여주셨다. “오늘 많이 힘들었죠? 수고했어요. 어려운 동작이었어요. 오늘 필라테스 처음 하신 거죠?” 등등 한 마디씩을 해주셨는데 “고생 많았어요. 오늘 너무 잘했어요”라는 얘기를 해주셨다.


탈의실에 가서 양말을 갈아 신고 두꺼운 옷들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왔다. 50분 동안 혼이 쏙 빠진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정말 금방 갔다. 혼이 빠지면서 우울감도 함께 날아간 것 같았다.


매일 지나가는 꽃집에 ‘오늘의 꽃’이라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라넌큘러스 두 송이 4,000원, 튤립 두 송이 6,000원, 백합 한 송이 4,000원. 한 송이, 두 송이로 만들어질 작은 꽃다발이 너무 예쁠 것 같았다.


문이 닫혀있었는데 다음 운동이 끝나고 열려있으면 꽃을 사 와야지 싶었다. 뭔지 모르겠는 알스트로메리아와 델피늄도 검색해봐야지.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