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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Nov 23. 2022

매일 전화 거는 여자

엄마와 딸

여자는 매일 저녁 딸에게 전화를 건다. 혼자 타지에 사는 딸의 안부는 매일 물어도 항상 궁금했다. 밥은 뭘 챙겨 먹었는지, 미뤄둔 빨래는 했는지, 친구는 누굴 만나는지 같은 것들. 무뚝뚝한 딸은 매번 전화하는 여자를 성가셔했다. 똑같은 걸 왜 계속 물어보냐며 투덜거리고, 전화 좀 그만하라며 짜증을 부려도 여자는 딸의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됐다.


늦게 얻은 딸이었다. 남편 없이 20년을 키웠다. 일하느라 바쁘고 먹고 사느라 어렸을 때는 뭐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는데, 어느새 성인이 되어 자기 앞가림을 한다니 이상하게 서운했다. 품에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되지 않았다. 가끔 집착인지, 사랑인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있었지만, '하나뿐인 딸이니까'하며 합리화했다.


여자는 항상 딸에게 말했다.

"결국 남는 건 가족이야. 네가 아무리 성인이 되더라도 부모한텐 평생 어린애야. 네 할머니 생각 안나? 60 넘은 나한테까지 차조심, 사람 조심하라고 했었잖아. 어쩔 수 없어."

 

삼 남매의 맏이인 여자는 가족이 우선이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동생들과 괴팍한 성격의 구두쇠 아버지 때문에 돈을 벌면 족족 집에 썼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대학도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아 전문대에 겨우 입학했다. 돈에 인색했던 집 때문에 여자는 모든 걸 혼자 견뎌내야 했다. 그 덕에 결혼도 남들보다 늦게 했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찰나 남편이 떠났고, 어린 딸만 남은 뒤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뒤를 돌아보니 딸은 이미 훌쩍 커버린 후였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았던 여자는 본인과 다르게 즐기며 사는 딸이 사실은 부럽다. 바깥으로 나돌기만 하는 딸에게 서운하면서도 뭘 해도 예쁜 젊은 시절은 빠르게 지나가니 충분히 즐기는 게 맞지 하는 양가적인 감정도 든다. 어쩌면 돌봐야 할 누군가가 없어진 데에 대한 공허함 때문일지도 모른. 동생들은 지 자식들 챙기기 바쁘고, 징그럽게 돌봤던 노모와 노부까지 다 떠났으니.


여자는 프로필 사진 속 딸을 보며 고민한다. 주말이 되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실까 봐 조마조마해서. '요즘 유튜브에 하도 흉흉한 소식이 많이 들리니 집에 일찍 들어가라고 얘기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전화를 건다. 귀찮아하는 딸의 목소리를 들을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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