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계급론, 2030세대 그리고 공정

애초에 수저는 부모를 향하지 않았다

by Rooney Kim


한 90년대생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세대 간의 이견 그리고 이들 사이에 촘촘하게 얽혀있는 갈등과 대립을 읽어내는 눈이 꽤나 매섭고 정확했다.


기사는 기회의 박탈, 노력과 능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에 대한 사회의 응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지금의 2030 세대, 소위 90년대생으로 불리는 이들이 직장인이 되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기성세대와 그들이 만든 사회의 구조가 얼마나 뒤틀려있는지 다시금 환기시켜주었다.


작가는 인터뷰를 하며 20대가 바라보는 기성세대를 40대 이상으로 규정했다. 사회에서 중년으로 구분되는 40~50대는 인생 중 가장 열심히, 많은 일을 하며 그들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 시간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라고 분류되는 범주는 매년 달라진다. 1년 차이로 바로 그 ‘기성세대’가 노년층이 되어 세대 분류에서 좀 더 멀어지는가 하면, 또 1년 차이로 하루아침에 청년세대에서 기성세대로 분류되기도 한다.


40대, 기성세대


하루아침에 기성세대가 된 나는 엊그제까지만 해도 30대의 끄트머리에 서서 아직은 2030 청년세대라는 생각에 ‘그래도 젊으니까’라는 핑계와 변명으로 포장하며 빈둥대던 주말을 향유하던 청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깨어있는 90년대생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050을 기성세대로 분류해버렸다. 구태의연하고 자기 욕심밖에 몰라 ‘저런 기성세대는 되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하며 살아왔는데 올해 들어, 하루아침에 갑자기 ‘그런 기성세대’로 분류되는 현실을 겪어보니 하루 차이로 변하는 나이로 인한 세대 분류의 냉정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 떠보니 분류된 ‘기성세대’는, 30대가 되었던 지난 2011년 이후, 31세, 32세, 33세 그렇게 한해 한해 나이와 세대에 대해 무감각하고 안일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일침이 아닌가 싶었다. 마치 어제까지 19세라 청소년이었는데 오늘 20세가 되었으니 ‘이제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어른’이라며 청소년기의 특권을 송두리째 빼앗긴 기분이 이와 비슷할까 싶지만 어째 그 시절에 비해 상실감은 더 크다.


그런데 왜 나는 그리고 대중은 ‘기성세대’라는 단어에 이토록 민감해졌을까. 이는 아마도 현재 기성세대의 대명사 격으로 불리는 386세대(현, 586세대)가 민주화라는 미명 하에 일군 기형적인 사회적인 구조와 그 안에서 그들이 누린 불합리, 불공정, 내로남불 그리고 안하무인적인 태도 때문이 아닐까.


386세대 역시, 그들의 20대는 정의로웠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누구보다 뜨거운 불같은 열정이 가슴에 불타올랐고 그 시절의 기성세대에 떳떳한 저항으로 맞섰다. 피와 눈물의 투쟁을 거쳐 얻은 민주화라는 성과를 채 누리기도 전에 IMF라는 국가 부도를 온몸으로 막아냈고 또 10년 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도 버텨냈다.


사회는 그런 386세대에 대해 거는 기대가 컸다. 당시의 기성세대의 독재와 악습 그리고 부패를 척결하고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열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저항과 투쟁의 20대를 보낸 그들의 권력과 순수했던 열망은 변질되어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더욱 병들게 하고 있다.


남용된 권력은 시민들의 입을 막았고, 지나친 재산권 침해와 조세정책은 서민들의 발을 묶었으며, 과도하게 퍼주는 복지 정책은 청년들의 눈을 가리고 사고를 막아 불투명한 미래를 생산 중이다.

그리고 이제 막 사회 속으로 들어와 경제활동을 하고 제 목소리를 내는 20대 청춘들은 이제 이 같은 기성세대의 행태를 ‘불공정’이라 부른다.


수저 계급론과 불공정


수저 계급론은 10여 년 전부터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한 넋두리다. 처음에는 ‘있는 집’과 ‘없는 집’ 아이들 사이에서 생겨난 투정에 가까웠지만 현대의 ‘수저 계급’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청춘은 왜 부모님의 재력이라는 내부적인 요인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계급화했을까.


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비교에서부터 시작되고 비교는 타인으로부터 기인한다. 물론, 불만과 분노는 개개인별로 내재된 경험과 가치 인식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타인과의 비교 사유가 그들의 재력, 인맥, 권위에 기반한 무임승차 때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단순 비교에 의한 열등감이나 부러움이 아닌 ‘불공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재력에 의한 ‘무임승차’는 시작점부터 몇 계단이나 높은 출발점은 물론, 그들의 인생 초반에 누리는 숱하게 많은 프리 패스들 가령, 무시험 전형, 부정입학, 학위 위조, 취업 논란, 스펙 조작 등으로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조차 못내는 많은 장애물들을 말 한마디로 쉽게 넘어버린다.


그리고 일반 대중이 이로부터 얻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과 허탈함 그리고 무력감은 상당하다. 따라서, 소위 ‘수저 계급론’으로 대두되던 넋두리의 원인은 명확한 실체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금수저, 다이아 수저, 티타늄 수저 등으로 분류되는 권력자와 재력가들의 자녀들이 누리는 불법적인 혜택에서 발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현대의 청춘들에게 ‘공정’을 가장 중요한 삶의 화두로 만들어버렸다.


수저 계급론은 ‘우리 집도 부자였으면’과 같은 유년기의 칭얼거림과는 그 기반이 다르다. 물론, 인성의 차이에 따라 단순하게 부모탓을 하는 못난 이들도 있겠지만, 10년이 넘도록 화두가 되고 있는 이 시대의 ‘수저 계급론’은 철저히 불법적인 기만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청년들의 수저 계급론이 지향하는 ‘탓’은 애초에 자신들의 부모를 향한 것이 아니다.


결국, 이 사회의 청춘을 병들게 한 ‘탓’은 안하무인과 내로남불로 일삼은 권력과 재력가들의 불공정과 불합리에서 발생한 것이다.


권력과 재력의 정점에 있는 기성세대가 휘두른 무소불위의 불공정은 아무것도 없이 바닥부터 시작하는 무수히 많은 젊음의 피와 땀과 눈물을 헛되게 하였고, 그들의 열망과 소망과 열정은 지지 기반을 위한 땔감으로 쓰였으며, 부모의 권력과 재력을 기반으로 수십 계단을 먼저 올라간 권력의 자녀들이 호령하는 갑질에 상처 받은 청춘을 대량 양산해내며 결국 전 국민적인 공감을 얻은 ‘시대의 분노’를 생산해냈다.


공정과 평등


30대 중후반에서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80년대 생의 어린 시절 사회적인 화두는 ‘평등’이었다. 당시 사회는 남녀평등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민주적인 기반의 사회에서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것에 큰 가치를 두었다. 당시에도 부정부패는 만연했었지만, 인터넷은 고사하고 언론의 통제가 훨씬 쉬웠던 시절이었던지라 보통 사람들은 높으신 분들이 어떤 부정을 저지르고 어떤 불공정으로 일상 속에서 호사를 누리는지 알 수 없었다.


TV와 신문 등 모든 미디어에서는 평등한 사회를 강조했고 우리 모두는 재력과 권력에 상관없이 모두 똑같은 기회를 얻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불공정은 만연했다. 단지, 대중은 그걸 몰랐을 뿐이다. 시대는 새로운 기술을 불러오고 새로운 기술(인터넷의 발달, 스마트폰의 보급)은 시대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는 항상 젊은 세대다. 평등할 것이라는 기회의 균등함은 애초에 없었고, 누구나 노력하면 보상이라는 결실을 얻을 것이라는 사회 구조는 붕괴 중이었으며, 조금만 더 열심히 살면 현재의 처지를 벗어나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다리는 소위, ‘가게붕(가재, 게, 붕어)’이라는 ‘주제 파악’ 앞에서 이미 사라진 과거의 사치에 불과해졌다.


공정함의 인정


그래도 다행인 점은, 현대의 청년세대는 불공정으로 점철된 사회 속에서도 타인의 공정한 성공을 인정하고 축하해준다는 것이다. 부러움에 시기와 질투로 타인의 노력을 무시하고 뭉개버릴 법도 하지만 불공정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박탈감과 피해에 삶의 기반 형성에 큰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공정’하게 만들어진 것에 시기하지 않고 이를 인정해주며 그 안에 ‘희망’을 보고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최근 아이유가 130억을 주고 고급 아파트를 샀다. 비슷한 시기에 방탄소년단의 RM과 지민도 50~60억 원대의 아파트를 구매했다. 어쩌면 보통 사람이 평생 직장 생활을 해서는 꿈도 꾸기 힘든 액수의 돈이라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불평을 할 만도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 시대의 청춘은 이를 인정하고 오히려 박수를 보낸다.


왜냐하면 아이유의 어려웠던 과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그녀의 도전과 엄청난 노력 등 인고의 시간을 보낸 것은 전 국민이 알고 있고, 무명 시절부터 특유의 긍정과 성실함으로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된 방탄소년단의 진심은 전 세계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땀과 눈물은 진실했고 그들의 성공은 공정한 과정을 통해 이뤄졌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따라서, 불공정의 불합리한 파편을 온몸으로 받아낸 청춘은 ‘공정한 성공’에 대한 축하에 결코 인색하지 않다. 이들에게 공정한 성공은 이 시대에 꿀 수 있는 최대의 꿈이자 희망이다.


2030 세대의 화려한 정치 입문


젊은 세대가 그토록 증오했던 과거 유신 세대의 망령이 뒤덮고 있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보수당인 국민의 힘, 하지만 청년세대는 새로운 역사를 쓰며 청년들의 미래를 밝혀줄 것이라 믿었던 민주당에서 오히려 지난 보수당 시절보다 더한 고통과 절망을 맛보았다. 더 이상은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돌파구를 찾았다.


사실은 그 돌파구는 이 글을 보며 저릿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주체 못 할 만큼 끓어 넘치는 열정을 발산하고 싶어 하는 2030 세대 자신들이다.


시대의 아이콘이나 유명 인사는 그저 그러한 현상을 만들어낸 세대의 대변인이자 마스코트일 뿐, 내 삶은 내가 바꾸어야 제맛이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평등은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것이지만, 공정은 그런 평등의 기회조차도 ‘합리적인 이유’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정확하게 합리적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청춘은 ‘가게붕’이 아니다. 가게붕은 그저 주어진 거짓된 평등에 좋아라 하며 넙죽 받아먹을지 모르지만, 이미 불공정의 답답한 맛을 본 그들은 이제 ‘공정’의 통쾌한 맛을 찾는 중이다.


통쾌한 맛을 내는 맛집이 있다면 그 집은 얼마 안 가 수많은 청춘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시대가 찾고 기억할 최고의 맛집이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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