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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Mar 24. 2024

121화 조선대악귀전 - 혼돈 1



“이 근처에 있어. 오랜만에 육신을 떠났으니 조금 허둥대겠지만 가벼워진 영체 덕에 더 빠를지도 모르지. 그리고 삼방악신도 조심해야 해. 좋든 싫든 녀석은 이제 사방악신의 후보니까.”


‘제길, 이무량. 생각해 보니 저건 윤대감의 꼭두각시였잖아.’


‘히히, 뭐 어떠냐. 윤대감 본체라고 별거 있겠냐. 난 다만 악신들이 좀 신경 쓰이는데.. 흐음.’


윤대감은 사실 크게 당황했다.


과거, 오랜 시간 동안 조선의 최악의 화신이었던 이무량에 대해 익히 들어왔지만, 이 정도로 강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 씨.. 내가 수십 년 간, 악귀를 모았건만, 반쪽짜리 이무량이 저리 강하단 말인가. 하아, 골치 아프네. 이거 당장 악신이 될 수 도 없고.’


윤대감은 실로 수십 년 만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해치가 불의 기운까지 먹어치우고 저승에 봉인되었다던 이무량이 이렇게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자신의 계획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한다. 어떻게 하지. 곧 녀석들이 날 찾아낼 텐데. 이대로라면 내가 이길 승산이..’


그때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일었다. 그리고 윤대감은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맞아..!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지. 그냥 혼돈을 만들면 되는 거야. 영류천 (靈流川, 수천의 귀신을 쏟아부어 지상의 인간들을 모조리 미쳐 서로 죽이게 만드는 기술)으로 먼저 방해꾼들을 처리하면서 이무량에게도 덫을 놓자..!’


할멈 일행은 사방을 둘러보며 윤대감을 찾았다. 하지만 마음먹고 몸을 숨긴 대악귀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귀안이 열린 자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영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자령은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 살피는 중이었다. 소나무 숲 옆으로 대나무 숲이 우거졌는데 그 안에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스윽’


자령은 축사도(逐死刀, 악귀를 잡는 칼)을 꺼내 들었다. 두 자가 좀 넘는 축사도는 자령이 쓰기에 알맞았다.


‘붉은 도포에 파뿌리같이 흰머리 그리고 큰 덩치.. 그렇다면..?!’


자령은 손끝까지 기운을 숨긴 채 천천히 윤대감의 뒤로 다가갔다. 악령도 베어버리는 축사도로 뒤를 친다면 윤대감을 잡을 수 도 있겠다는 착각을 하고 만 것이다.


자령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축사도로 윤대감의 등을 내리쳤다.


‘슈아악!’


‘풀썩’


‘어라! 됐다. 잡았다. 내가 윤대감을 잡았..’


윤대감을 기습해 처치했다는 기쁨에 들뜬 자령은 쓰러진 윤대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끼아아아아악!”


자령이 베었다고 생각한 자는 알고 보니 바로, 귀로, 자신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아.. 아빠, 아빠!!”


자령은 귀로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귀로가 몸을 움찔하며 의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빠, 미안, 난 진짜 윤대감인줄..”


‘번쩍’


귀로가 눈을 뜨자마자 귀로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윤대감이 입에 피를 흘리며 입이 찢어져라 씨익 웃고 있었다.


“끼아악”


자령은 자지러지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당장 총을 꺼내 축귀탄을 장전했다.


“뭐.. 뭐야, 환각 결계야? 이런 잡기로 우리를, 우리를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크아아아아..”


“꺄아아아아..”


순간 자령의 주변 여기저기에서 고통에 찬 신음과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대숲은 물론 방금 전까지 일행들이 다 같이 모여있던 소나무 숲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젠장.. 언제 걸려든 거지.’


곧장 윤대감이 자령을 덮치려 달려들었다.


자령은 곧바로 총을 겨눴지만 그 순간 다시 윤대감은 귀로의 모습이 되어 고통에 찬 얼굴로 자령을 바라보았다.


“자.. 령아..”


‘아빠..?! 아니다. 저것은 윤대감이 만든 허상이야.’


‘타앙-‘


순간 귀로의 배에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오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가짜겠지. 아빠가 아니겠지.’


하지만 귀로는 더 이상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순간 진짜 아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자령은 다시 주저앉아 쓰러진 자의 몸을 살폈다.


“헉!”


‘진짜.. 아빠야..?!’


그런데 자령이 간과한 게 있었다. 사람을 농락하는 귀신들은 기본적으로 간사하다. 그중 원한이나 독을 품은 악귀들이 얼마나 간계했는지 자령은 차마 몰랐던 것이다.


‘휘익’


‘푸욱’


“끄아아”


귀로의 모습을 한 채 쓰러져 있던 놈은 자령이 다가오자 자령의 복부를 단검으로 찔러버린 것이다.


‘풀썩’


자령은 곧바로 뒤로 넘어져 쓰러졌고 극심한 고통과 함께 눈이 감겼다.



“장태 형님, 근중 형님 못 보셨습니까?”


“그러게 이 안개가 다 뭐냐 갑자기. 윤대감은 어디로 사라진 거야.”


사방은 안개로 가득했다. 뿌연 안개가 눈앞에 쏟아지자 장태와 물포는 한 치 앞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위잉 위잉 위잉. 위잉 위잉 위잉’


‘어라..?’


“물포야, 이 소리 들리냐?”


“무슨 소리 말입니까?”


“이 소리 말이야. 윙윙 거리는 소리.”


그러자 물포가 소리의 근원을 찾으러 안갯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물포야, 위험하다. 그냥 여기에 있어.”


“아따, 형님. 그래도 이게 뭔지는 알아봐야 우리가 대처할 수 있죠.”


어쩐 일인지 물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물포야, 위험..”


‘휘익’


‘푸우욱.’


“으허억.. 크흐흡.”


장태가 물포를 말리러 가던 순간 물포가 뒤를 돌며 장검으로 장태의 옆구리를 관통하며 찔렀다.


“야.. 크윽.. 너..”


“아따, 형님, 그러니까 호기심을 좀 줄이셨어야지. 히히, 내가 아직도 물포로 보이쇼?”


장태는 의식이 희미해지며 쓰러지고 말았다. 물포는 칼을 도로 빼낸 뒤 피를 핥으며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장태의 귀에는 목소리가 찢어져라 웃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정법아, 결계다. 영류천(靈流川, 수천의 귀신을 쏟아부어 지상의 생명체를 모조리 미쳐 죽게 만드는 기술)으로 잡귀들이 쏟아졌어. 거기에 환각 결계로 우리 모두를 갈라놓았다. ”


할멈은 바로 부적 두장을 꺼내 들었다. 당장이라도 축귀경을 날릴 기세였다.


“정법아.. 어라, 저거 정법이 아니구나.”


할멈은 곧장 부적하나를 공중에 띄우고 전방을 향해 축귀경을 욌다.


‘휘리릭’


그러자 부적은 곧장 정법을 향해 날아가 그의 몸에 붙더니 삽시간에 불타 올랐다.


‘끼아아아아’


‘화르르르륵’


‘역시 잡귀였어. 그나저나 큰일인데. 이거 윤대감을 잡는 건커녕, 이러다 많은 사람들이 죽겠어. 간사하고 치졸한 놈.’


할멈은 가지고 있던 모든 부적을 꺼내 들었다.


남의 결계를 깨고 나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도 윤대감처럼 막강한 능력을 가진 녀석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이럴 땐 결계와 상관없이 어디든지 다닐 수 있는 영물들, 즉, 해치와 불가살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결계 속이라 될진 모르겠지만, 제발 집중해서 들어라. 흰둥아, 불덩아..!’


‘옥갑경..!’


‘즉시 옥갑경은 약인가중에, 생시화지도야라 세강속말에, 인물이 총총하고 인민개중에, 귀신이 분분하여 인신이 잡여고로 옥황상제 내토하사 즉설..’


곧 허공에 부적 일곱 장이 떠올랐다. 부적들은 곧장 파란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허공에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때였다.


‘휙, 휙’


“아구랴구랴! 구랴랴 구랴!”


“끼에에, 끼르르르르”


“아이구, 녀석들아. 너무 반갑구나.”


해치와 불가살이는 할멈을 보자마자 꼬리 치며 달려왔다. 그리고 머리와 몸통을 부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얘들아, 지금은 이럴 시간이 없으니 일단 날 좀 도와다오.”


“아구갸?”


“끼르르?”


“이 근방을 쏘다니면서 결계를 깨트려! 그리고 혹시나 위험해지면 무조건 도망가거라!”


할멈은 혹시라도 윤대감이 해치와 불가살이를 흡수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당장 결계를 해제하지 않으면 모든 일행들이 몰살당할 판이었기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후다닥’


해치와 불가살이는 할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양옆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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