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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Mar 31. 2024

124화 조선대악귀전 - 혼돈 4



은진은 곧장 산아래를 향해 뛰어갔다.


어머니를 만났다는 기쁨에 잠시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지금은 조선 최악의 악귀인 윤대감과 싸우는 중이라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어.. 뭐야!’


“할멈!!!”


산을 내려오며 안개가 걷히자 공터에 쓰러져있는 할멈이 보였다. 할멈의 옆에는 해치와 불가살이가 할멈을 깨우려는 듯 낑낑거리며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깜짝 놀란 은진은 당장 할멈에게 달려가 맥을 짚어보고 흔들어 깨웠다.


‘얼굴이 창백하고 온몸이 차. 설마 윤대감 자식이 역살을 날린 건가?’


일반적인 영력가와 다른 무당들에게 역살은 치명적이었다.


한때 조선의 대무당이었던 할멈이라도 윤대감의 결계 속에서 맞은 역살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놀라긴 일렀다. 할멈을 흔들어 깨우던 은진의 눈앞에는 은진이 전혀 예상 못한 살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허억.. 아아, 이런 끔찍한 일이..’


그녀의 지근거리에는 장태와 물포가 중상은 입은 채 쓰러져있었다.


오른쪽에는 귀로가 옆구리에 자상을 입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으며 왼편에는 천검 일행이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천검의 일행이었던 병팔은 배에 크고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숨을 거둔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으.. 은진아.”


은진이 충격에 빠진 채 주변의 정황을 확인하는 동안 할멈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불렀다.


“하.. 할멈! 할멈, 정신이 좀 드세요?”


“은진아..”


“네네, 저 여기에 있어요.”


할멈의 의식이 돌아오자 해치와 불가살이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할멈의 주변으로 다가왔다.


“윤대감은.. 어쩌면 거스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놈은 악신이, 아마도 악신이 될 게야..”


“할멈, 할멈! 안 돼요. 정신 차려봐요!”


“은진아.. 흰둥이랑 불덩이를.. 잘 부탁한다. 은진아 그리고..”


“어.. 할멈.. 할멈!!!”


할멈은 끝내 말을 잊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할멈..!!!”


은진은 슬픔에 복받쳐 부들부들 떨며 할멈을 꼬옥 안았다.


해치와 불가살이도 상황을 인지한 듯 배를 납작하고 깔고 앉아 낮고 구슬픈 소리를 내며 할멈의 옆에서 할멈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조아렸다. 하지만 할멈의 몸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고 더 이상 미동이 없었다.



‘이 자식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겸세는 북악산의 여러 골짜기를 뛰어다니며 윤대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윤대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무량, 뭐 좀 보이는 거 없어?’


‘히히. 난 이미 다 보이는데’


‘뭐야, 그럼 진작 말해줘야지!’


‘도와줄랬는데 결계가 깨지길래 이제 너도 알겠구나 했지.’


겸세는 달려가다 말고 제자리에 섰다.


‘야, 이무량.. 저기, 저기 좀 봐..!’


겸세는 그제야 할멈을 붙들고 오열하는 은진, 사방팔방에 난자한 무수한 핏자국 그리고 끔찍한 자상을 입고 쓰러져있는 일행들을 발견하고 했다.


‘어. 뭐야. 심각하네..’


“은진씨..!”


‘야, 겸세!’


이무량은 은진에게 달려가려는 겸세를 불러 세웠다.


‘너도 보이지. 이 쳐 죽일 놈이 우리 일행들을..’


이무량의 목소리도 자못 심각해졌다.


‘흔들리지 마. 감정적이 되어서는 되려 당할 뿐이야. 다시 집중하고 이제 끝을 내자.’


이무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겸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겸세의 눈이 닿은 곳에는 기다랗게 쭉쭉 뻗은 무수한 소나무 꼭대기 위로 붉은 도포를 입은 윤대감이 입이 찢어져라 벌린 채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저 쳐 죽일 새끼가..!’


겸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윤대감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생절공!”


겸세의 외침과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울컥하고 일렁이더니 진붉은 색의 원형 파공 여러 개가 허공에 떠있는 윤대감을 향해 분출되었다.


‘뭐야..?!’


‘푸와아아아아’


겸세의 재빠른 공격에 놀란 윤대감은 허둥대며 겨우 겸세의 공격을 피했지만 이를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다.


‘파바바바박’


겸세의 생절공이 만들어낸 기류의 칼날이 윤대감의 옷가지는 물론이고 전신에 얕은 자상을 만들었다.


‘휘이익’


윤대감은 겸세의 압도적인 힘에 놀라 곧장 하늘에서 내려와 인근의 큰 바위뒤에 숨었다.


‘저.. 저거 저거, 도대체 뭐야. 아깐 힘을 숨겼던 건가? 아니면 제 일행들이 당해서 일시적으로 강해진 거야? 이 씨.’


윤대감은 여전히 겸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무언가 엄청난 영령이 깃들었다는 건 알았지만 간헐적으로 새어 나오는 기운만으로는 누구인지 도무지 알아챌 수 없었다.


‘나도 곧 악신이 될 몸인데, 썩을 놈, 인간 주제에 날 이렇게나 위협하다니 말도 안 되잖아. 분명 저 안에 뭔가 강력한 놈이 있는데.. 오호라, 그렇다면 저 녀석은 꼭 잡아먹어야겠는데.’


윤대감은 바위 뒤에 숨어 겸세의 동태를 살폈다.


‘파아앗’


‘콰아앙!’


‘쩌어억’


“으아앗..!”


겸세는 어느새 윤대감이 숨어있는 바위까지 달려와 주먹 한방으로 집채보다 훨씬 큰 바위를 산산조각으로 박살 냈다. 윤대감은 겸세의 격파공 충격파에 놀라 뒤로 몇 자나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어이, 윤대감 할배.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몰랐으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설쳐대며 귀신들을 흡수하고 다녔겠지.”


겸세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못해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윤대감은 이때부터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했다.


겸세 안에 무언가는 한낱 강력한 귀신이나 요괴가 아닌 자신을 압도할 정도의 거대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하아.. 허허. 그래 너 이 새끼, 강한 건 인정하겠다. 그런데 도대체 니놈 안에 든 게 뭐길래, 누구길래 이렇게 자신 만만하냐.”


하지만 윤대감도 물러서지 않았다. 분명 영력의 크기나 세기로도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무언가가 겸세 안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야이 자식아, 그래봐야 너도 내 손바닥 안에서 놀게 될 거야. 왠지 알아? 내가 곧 북방의 악신이 될 거거든. 겨우 이 정도로 날 소멸시키진 못할 걸세. 껄껄.”


겸세는 얄팍하게 비웃는 윤대감의 모습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곧장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휘익. 휙휙’


하지만 이제 윤대감은 겸세의 공격 형태를 읽었는지 이제 겸제의 공격을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그렇게 겸제의 주먹을 십 수 차례를 피하던 윤대감은 갑자기 자세를 고쳐 잡고 빠르게 겸세에게 밀착하더니 겸세의 몸에 손바닥을 대고 크게 소리쳤다.


“흡령(吸靈, 상대방의 혼백을 직접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기술)!”


‘쭈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간 윤대감의 손바닥이 마치 빨판처럼 겸세의 가슴팍에 들러붙더니 엄청난 영력으로 겸세의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끄아악..”


‘뭐야.. 으으으, 이무량, 나 빨려 들어갈 것 같아..!’


겸세는 윤대감에게 기운을 뺏기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영력을 끌어모아 버텼다. 한시라도 방심하면 당장에라도 윤대감에게 흡수될 판이었다.


‘에헤이, 겸세 너 너무 나간 다했더니.’


‘야, 여유 부리지 말고 빨리 어찌 좀 해봐.’


겸세는 윤대감의 멱살을 쥐고 간신히 버텼다. 하지만 이무량은 웬일인지 빠르게 대응하지 않았다.


‘끄으으, 야, 이무량..! 내가 흡수되면 너도 금방..’


‘합배상 (合倍償, 타인의 부적, 영력 따위에 힘을 실어 그 능력의 두배로 돼 치는 기술)!’


‘파아앙!’


겸세의 힘이 빠지기 직전 이무량이 겸세 대신 주문을 욌다. 합배상이 시전 되자마자 도리어 윤대감의 기운이 겸세에게 넘어오기 시작했다.


‘으어어, 이게 뭐야. 내, 내 힘이.. 크흐흡’


‘파악’


위기를 느낀 윤대감은 겸세의 가슴팍을 발로 세게 밀치며 억지로 손바닥을 뗐다. 자칫 더 붙어있었다간 윤대감 자신의 힘을 절반도 넘게 빼앗길 판이었다.


“허억.. 헉헉. 너.. 도대체 누구냐.”


윤대감은 심지어 헐떡거리며 겸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윤대감은 자신의 평생은 물론 대악귀가 되고나서도 이렇게 강력한 기운은 처음이라 혼란스러웠다.


‘악신들, 아니 악신님들.. 이제 그만 절 시험하시고 얼른 악신으로 승격시켜 주시지요.. 이러다, 저승으로 가겠습니다. 네에? 그럼 악신들께도 안 좋을 텐데요.’


윤대감은 계속해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마음속으로 악신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조금 더 버텨라.’


‘엇. 뭐라.. 이.. 악신들, 자기네들도 저놈이 누구인지 모르면서 나보고 그냥 버티라고?’


반면에 겸세는 오히려 기운이 넘쳤다. 합배상으로 흡수한 윤대감의 기운 덕분에 더 강해진 기분마저 들었다.


겸세는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윤대감을 향해 뛰어갔다.


“이야압!”


‘휙. 휙휙’


겸세는 윤대감을 골릴 의도로 헛주먹질을 몇 번 했다. 윤대감은 여전히 겸세의 주먹을 곧잘 피했다.


‘파앗. 팍팍’


겸세는 앞발차기와 뒤돌려차기를 연속으로 날렸다. 윤대감은 뒤로 훌쩍 날아가며 이마저도 모두 피해버렸다. 분명 자신의 기운까지 흡수한 겸세였는데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윤대감은 어쩌면 겸세를 제압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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