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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Apr 14. 2024

130화 조선대악귀전 - 삼방악신 6



‘나를 소멸시키려던 자들의 도움을 받아 영명을 부지하는 날이 올 줄이야. 이래서 오래 살고 볼 일인가..? 허어참.’


일령의 갑주 방어구에 놀란 건 이무량뿐만이 아니었다.


‘인간 따위가 만든 방어구에 내 공격이 막히다니. 허어, 기가 막히네.’


백화는 곧장 방어구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가 손을 뻗자 방어구는 백화의 영체가 들어오지 못하게 튕겨냈다.


선준은 일령을 꼭 쥔 채 백화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백화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떨리는 손은 숨길 수 없었다.


“선준, 덕분에 내가 위기는 넘겼군. 이제 내가 저 악신놈을 처리할 테니 조금만 버텨봐.”


이무량이 선준을 지나가며 그의 어깨를 툭툭하고 쳤다. 이무량도 섣불리 방어구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일령의 갑주 안에서 마음 놓고 백화를 상대하는 편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선준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무작정 갑주를 만들기는 했지만 자신만의 영력으로는 오래 유지하긴 힘들었다. 일령 안에 호령, 자겸, 태례의 영력이 있다고 하지만 이를 발현시키는 건 오직 일령의 쥔 자의 영력에 달렸다.


“껄껄껄. 그래도 그 안에 있는 걸 보니 내가 어지간히 무서운가 보군. 이제 깨달았느냐? 이게 바로 너와 나의 차이다. 일개 악귀 따위가 어디 감히 신급에게 덤벼들..”


“파멸공!”


‘우우웅. 슝슝. 슈슈슈슈슝. 슝슝슝’


이무량의 한마디와 함께 순식간에 보랏빛의 커다란 영력 구체가 만들어지더니 수십 가닥의 파괴적인 영력파가 백화를 향해 날아갔다.


‘츠팟’


‘파바바바바박. 파악. 팍팍팍’


‘쿠과과과과과과과광. 쾅쾅쾅.’


이무량의 파멸공 수십 가닥이 떨어진 곳에는 나무고 바위고 할 것 없이 모두 먼저가 되어 자욱한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파앗’


이무량은 채 연기가 걷히기도 전에 방어구를 벗어나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검붉은 빛으로 빛나는 이무량의 양주먹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영력이 모였다.


‘이무량, 저거 뭐하려고 저래?! 설마 직접 붙으려고??’


겸세는 남방악신과의 전면전은 위험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무량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어차피 네놈이 어디에 있는진 다 안다. 그냥 제대로 붙어보지 뭐..!’


순간 이무량의 눈에 백화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무량은 달아나고 피해봤자 녀석의 손아귀 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역으로 더 적극적으로 붙어 공격하는 것이 현재 이무량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흑룡극전기! (黑龍克傳氣)”


‘뭐?!’


이무량의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 주변의 하늘이 갑자기 빛을 잃은 듯 새카맣게 변했다. 이에 지상의 일행들이 놀란 것은 물론 백화마저도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어둠은 곧 한데 뭉치더니 어느새 대궐만 한 흑룡이 영력 구체 안에서 튀어나왔다.


‘쑤우우우우우욱’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마치 천둥번개가 치기 전 거대한 구름이 울듯 흑룡은 낮고 깊은 울음과 동시에 백화를 향해 벼락처럼 날아갔다.


‘크흑..!’


백화는 곧바로 합장을 하더니 온몸을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불덩어리로 만들었다. 흑룡은 큰 입을 벌리고 백화에서 달려들어 그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됐다. 이제 사라져!”


백화를 삼킨 흑룡은 그대로 녀석이 튀어나왔던 까만 영력 구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꿈틀거리며 틀어 돌아가려 했다.


‘이대로, 이제 이대로 구체 안으로만 들어가면 악신도 가둘 수 있다.’


이무량은 자신의 기술이 제대로 끝맺음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집중했다.


‘쑤와아아아아아아악’


“됐다!”


영력 구체에 들어간 흑룡은 금세 사라졌고 영력 구체는 그대로 이무량의 몸으로 다시 흡수되었다.


‘뭐야, 이무량. 백화를.. 흡수한 거야?!’


이무량은 곧 땅으로 돌아왔다. 백화가 사라지며 안심한 선준도 방어 갑주를 해제하며 바닥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방어 갑주의 영력 지속이 어찌나 힘들었던지 선준은 몸과 옷은 온통 땀범벅이 되었다.


“어.. 어찌 된 거요? 백화를 해치운 거요?”


“그렇죠. 사실, 이 안에 흑령이 백화를 먹은 거긴 하지만. 히히.”


이무량은 곧장 원래대로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었다. 어쨌거나 악신 셋을 쓰러뜨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야, 이무량. 너 진짜 대단한 놈이구나. 난 말로만 들었지..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겸세, 내가 니 안에 갇혀서 그렇지 한 때 조선과 이 일대 나라들을 전부 호령하던.. 으읍”


거들먹거리며 걸어오던 이무량은 갑자기 속이 불편한지 배를 움켜잡았다.


“왜 그래, 이무량? 뭐야??”


이무량의 얼굴과 몸이 삽시간에 붉어지더니 마치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처럼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으윽.. 이, 이 악신놈이..”


“야, 혹시 백화가 아직 니 안에 살아있는 거 아냐..?”


겸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무량의 몸 여기저기에서 불길이 터져 나오더니 곧 전신이 새빨갛게 불타올랐다.


‘화르르르륵’


“으아아, 야! 이무량!!”


겸세가 이무량을 불렀지만 이무량은 불타는 열기보다 속이 더 괴로운지 배를 부여잡고 자리에 털썩 꿇어앉고 말았다.


“겸세.. 이무량, 이무량은 괜찮소?”


선준이 겸세에게 다가와 물었다. 하지만 겸세 역시 자신의 몸을 떠난 이무량의 상태는 전혀 파악할 순 없었다.


‘화르륵.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순간 이무량 몸의 불길은 몇 곱절이나 더 커지며 강해졌다. 이무량은 고통이 극에 달한 나머지 바닥에 엎어진 채 뻗고 말았다.


“아무래도.. 백화가 이무량의 안에서 발화한 것 같아요.”


이무량은 고통에 못 이겨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화는 이무량의 몸에서 나오기는커녕 그 안에서 이무량에 전소시킬 작정인 듯 불길을 더 키웠다.


“끄아악. 끄아아아아.”


선준과 겸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무량을 돕고 싶지만 능력도 부족한 데다 방법도 몰랐다.


“호.. 혹시 일령으로 베어버리면 이무량 안의 백화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요?”


“이무량을.. 벤다고요..?”


“그.. 일령은 기검이지 않습니까? 집중해서 백화를 베어버린다는 생각으로 이무량을 베면, 이무량은 무사하고 백화만 처치해서 끄집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데요.”


겸세의 말은 그럴듯했다. 어차피 이무량은 절대 악귀라 선준이 일령으로 한 번 벤다고 해서 어찌 될 약한 악귀도 아니었다.


“그.. 그렇다면.”


‘꿀꺽’


선준은 마른침을 삼킨채 일령을 쥐었다.


“일령, 기..!”


선준의 주문과 동시에 일령에 푸른 불꽃이 튀어나오며 일렁였다.


선준은 긴장됐지만 지금은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자신들을 윤대감은 물론 악신들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영력자인 이무량을 구하기 위해 그를 베어야 한다는 게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졌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 잠깐!!!”


선준과 겸세의 뒤에서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둘은 곧장 돌아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정법 아저씨!!!”


정법은 몸 여기저기 자상과 열상으로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정법, 괜찮습니까? 지금 죽고 사라진 이들이 너무 많은데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선준이 달려와 정법을 부축했다.


“해, 해치를 불러. 해치를..”


정법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선준과 겸세는 정법을 의아하게 바라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해치가 이무량의 영력 절반인 불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건 알지?”


“네.. 아! 네, 알고 있습니다.”


“이제 돌려줄 때가 되었어.”


선준과 겸세는 놀란 눈으로 서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되는 거죠? 전.. 전 좋습니다. 이십 년도 넘게 제 안에 이무량이 있었는데 그는.. 좋은 놈이었습니다.”


“해치가 오면 이 열쇠를 먹여. 그럼 해치는 알아서 이무량에게 달려갈거야.”


정법은 나무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열쇠를 겸세에게 건넸다. 겸세는 열쇠를 살펴보았다. 열쇠에 대해 더 물어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이무량은 여전히 온몸이 불타오르며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백화 역시 당장 이무량의 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무량 안에서 그를 완전히 태워 소멸시킬 작정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없다. 제아무리 이무량이라도 악신의 저주는 엄청나게 지독해. 그렇다고 저승의 사천왕이 도와줄 리도 만무하니..”


“해.. 해치는 어떻게 부르는 거죠?”


“그러게 젠장.. 누이.. 누이도 떠난 거지? 하아, 황천길은 나랑 같이 가자더니.”


“잠깐, 해치와 불가살이도 북악산에 있지 않습니까?”


선준의 말에 정법은 뭔가 깨달았다는 얼굴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흰둥아! 흰둥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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