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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Apr 24. 2024

136화 사대천왕 1



“끄으으으으.”


이제 윤대감만이 남았다. 선준은 일령으로 폭체를 날리기 전, 이미 합 주문을 왼 덕분에 윤대감의 등에 딱 달라붙어 버틸 수 있었다.


윤대감은 영력이 거의 소진되어 가는 걸 느꼈다. 등에는 선준까지 달라붙어있으니 더 힘이 부쳤다.


“너.. 이 새끼, 이렇게 할애비의 계획을 방해할 거냐.”


선준은 윤대감의 목을 더 강하게 졸랐다. 일령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일령은 폭체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아직도 내가 널 증조부외할아버지로 보는 줄 아느냐? 넌 이제 그냥 내 복수의 대상이자 최악의 악신 그 자체일 뿐이다.”


이무량은 백화와 수사가 빨려간 후 무량극태에서 자유로워지자 바로 무량공전에 모든 영력을 쏟아부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안 돼요! 아재, 아재가 윤대감 등에 있다요..!!!”


행장이가 계속해서 소리쳤지만 사방이 워낙 시끄러워 이무량이 들을 리 만무했다.


“이무량, 여길 봐, 여기!!!”


겸세도 이무량의 시야 범위까지 달려가 펄쩍 뛰었지만 이무량은 이미 모든 힘을 무량공전에 쏟아부은 뒤였다.


“끄으으..”


‘쉬이이이이이이’


‘휘리리리리리리릭’


‘파아앗’


‘번쩍’


‘콰앙’


결국 윤대감마저 검은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든 악신이 빨려 들어간 걸 확인한 이무량은 모든 영력이 소진되어 지상으로 떨어져 뻗어버렸다.


‘털썩’


“이무량..!”


겸세가 먼저 이무량 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곧 살아남은 모든 이들이 하나둘씩 이무량의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잘했어. 수고 많았어. 이무량, 그런데..”


이무량은 숨을 헐떡이며 누운 채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헉헉헉. 이제 다 끝난 거지? 헉헉.”


“응..”


“수고했다. 이무량.”


하지만 모든 악신을 제거한 것 치고는 반응이 영 떨떠름했다.


“왜 그래? 뭐 아직 남은 게 있어? 아니면 죽은 사람들 때문에 그래?”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던 차에 겸세가 말을 꺼냈다.


“선준도 같이 빨려 들어갔어. 그 구멍에..”


“응? 선준이? 선준이 살아있었어..?”


“응. 윤대감의 등에 붙어있었어. 아마 넌 잘 안 보였을 거야.”


“헉헉.. 뭐야? 진짜야?”



‘쾅’


“으아앗..”


선준은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어깨가 바닥에 부딪히며 통증을 느꼈다.


‘뭐야.. 왜 아프지? 나 죽은 거 아니었나?’


선준은 꼭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뭐.. 뭐야, 여긴 어디야?!’


선준은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하늘은 온통 노랬고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숲은 짙게 우거졌으나 녹색도 붉은색도 아닌 것이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선준의 눈앞에는 커다란 나무 문이 하나 있었는데 빗장으로 걸어 잠긴채 굳게 닫혀있었다.


‘저벅 저벅’


누군가 뒤에서 다가오는 소리에 선준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누, 누구요..?’


관복 차림을 한 길쭉한 몸을 가진 사내였다. 그자는 머리에 커다란 망토 같은 걸 뒤집어써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따라오시지요.”


관복의 사내는 선준의 물음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나무문 앞으로 걸어가 빗장을 풀더니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이’


나무 문이 열리자 문 안쪽에서 상쾌한 바람이 쏟아졌다. 뿐만 아니라 문틈으로 희미하게나마 빛이 새어 나왔는데 음산한 기운만 감도는 바깥과 달리 여기저기 지저귀는 새소리마저 흘러나왔다.


“여.. 여기는 대체..?”


‘쾅’


“으아앗, 깜짝이야.”


선준이 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무 문이 저절로 닫혔다. 이에 놀란 선준이 뒤를 돌아보자 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저.. 저기.”


선준이 입을 열자마자 관복의 사내가 팔을 들어 멀리 있는 한 정자를 가리켰다.


“저기로 가시오. 그럼 이만”


사내가 가리킨 곳에는 덩치가 좋은 남자 넷이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저기는.. 어?!”


선준이 멀리 있는 정자를 살핀 후 다시 돌아보았지만, 관복의 사내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도대체.. 뭐야. 여기는 어디지?’


선준은 천천히 정자 쪽으로 걸어갔다. 하늘은 새파랗게 빛났고 오른편의 강에서는 여기저기 내려오는 지류들이 모여 맑은 물이 힘차게 흘렀다.


옥구슬이 굴러가듯 지저귀는 새소리가 지천에서 울렸고 멀리 높은 하늘에는 봉황처럼 보이는 커다란 새 몇몇이 짝을 이루어 날았다.


‘뭐야.. 여, 여기는 극락인가? 그럼 윤대감은 어디로 간 거지..?’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정자에 도착했다.


막상 가까이 와서 보니 정자에 있던 사내들의 몸집은 보통 큰 게 아니었다. 소 몸통만 한 목, 떡 벌어진 어깨, 소나무 같은 팔뚝에 화려한 갑옷을 입은 넷은 다과와 함께 차를 즐기고 있었다.


“어, 이제 왔구만.”


“..네?!”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한 사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사내 넷이 동시에 선준을 바라보았다.


도드라진 광대와 소보다 큰 부리부리한 눈과 마주치니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압도당했다.


“껄껄껄. 듣던 대로 조심스럽구만. 자자, 무서워말고 이리 올라오게.”


또 다른 사내가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짐작건대 이들의 덩치는 모두 왕도깨비보다 컸고 잘은 모르겠지만 이무량이 온다고 해도 이들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난 지국천왕이다. 지국천이라고 부르지. 여기는 광목, 또 저기는 증장 그리고 저쪽 구석에 앉은 자는 다문이다.”


선준은 네 사내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선준 역시 제법 키가 크고 덩치는 있는 편이었지만 그들 사이에 있으니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사천왕이라고 자식아. 낄낄.”


남방을 관장하는 증장천왕이 잔뜩 얼어붙은 선준을 골려주려는 듯 쏘아붙였다.


“어허, 쓸데없이.”


“우리 모두 천왕이야. 각자 관장하는 방위가 다를 뿐이지. 지국이는 맨날 자기만 ‘천’을 붙여서 소개하더라.”


광목천왕이 덧 붙였다. 선준은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읽었던 사천왕과 함께 정자에 앉아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그럼 전 죽은 건지요? 그리고 윤대감.. 사방악신들은 어.. 어찌 되었습니까?”


그러자 다들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우리가 저승의 모든 비밀을 여기서 자네에게 말해준들 이해하지도 못할 테니 본론만 얘기하지.”


지국천왕이 선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네 어머니랑 아버지는 잘 있다가 갔으니 걱정 마라.”


“네..?!”


선준은 전혀 뜻밖의 소식에 곧바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걸로 네 업이 모두 해소되었단 말이다. 이로써 윤대감과의 지독한 인연은 끝이다.”


선준은 지국천왕의 말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부모님은 극락으로 가신 것으로 보였다.


“그럼 윤대감은..”


“뭐, 지금 이해하기는 힘들 테지만 이승과 영계에는 사방악신이 필요하다. 일단 그렇게만 알고 있거라. 어차피 녀석들은 우리의 발가락 하나조차도 안 되는 놈들이니 너무 걱정 말고.”


선준이 계속 어리둥절해하자 지국천은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해의 빛이 있어, 어둠을 알고, 악함이 있어 선함의 귀중함을 알지. 인간들은 거기서 진리를 깨닫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거야.”


하지만 선준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보다 윤대감이 당장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한스러웠다.


“그럼, 윤.. 윤대감이 악신이 된 게 사실이란 말씀이십니까..?”


“응.”


이무량이 최고의 필살기로 그들을 모두 저승으로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저승의 천왕들은 그들이 필요하다고 하니 선준은 그저 답답한 노릇이었다.


“아아, 참, 사방악신들은 다시 사방의 궤에 넣어 둘 거야. 그래야 함부로 날뛰지 못할 테니까.”


“궤라면.. 잠금쇠가 있는 상자 말입니까..?”


“그렇지.”


“하지만, 윤대감은.. 윤대감은 저희 부모님은 물론 너무나도 많은 자들을 죽였습니다..!”


“다 안다. 아니, 너보다 훨씬 잘 알아.”


선준은 저승의 호법신들 앞이라 떨렸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하고 싶었다.


“그래도..”


“어허, 순리가 있대도. 걱정 마라 업보는 모두 벌로 다스린다. 사방악신의 최후가 뭔지 아느냐?”


“어허, 증장아, 그걸 또 왜 인간에게 일일이 다 설명하냐. 그만둬라.”


남방신이 증장천왕이 근질거리는 입을 못 참고 설명하려 하자 서방신인 광목천왕이 말렸다.


“하긴, 설명한들 이해나 하겠냐.”


다시 지국천왕이 선준을 바라보았다.


“넌 지금 올 때가 아니니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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