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차 캥거루 엄마 아빠 품을 떠나다
내일 이사를 한다. 나는 30년 째 같은 동네에 살았다. 4살 때 이 동네로 이사를 왔고 그 뒤로 여기서만 산거다. 심지어 2년 전 결혼을 하고도 엄마 아빠와 같은 단지에 살며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웠다.
나는 엄마랑 안 친했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극도로 서운해지면 종종 다른 집 딸들은 어떻다던데.. 할 정도로 나는 왜인지 엄마랑 유난히 서먹서먹했다. 그리고 나도 그게 참 싫었다. 엄마에게 딸의 역할을 한 건 4살 터울인 내 남동생이었다. 왜 였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내가 엄마를 오해한 것 같다. 오랜 시간. 그리고 엄마도 나를 조금은 오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내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여린 사람이었다. 내 기억을 찬찬히 살펴보면 엄마가 울고 있는 기억이 많다. 나를 키우는 것이 많이 힘들었던 걸까? 왜 엄마가 자주 울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같이 아기를 키우면서 나눈 이야기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는데, 엄마 내 나이일 적에 결혼을 하고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나를 키우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했다. 아빠는 영업직이라 도와주지도 않지 나는 잘 먹지 않는 결코 쉽지 않은 아기였지. 그러니 눈물이 마를새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기를 키워본 입장에서 나 같은 아기를 키운다..? 매우 끔찍하다 ㅎㅎ
다시 엄마의 울음에 대해 생각해보면 엄마가 울면 나는 불안해졌고 덩달아 슬퍼졌던 것 같다. 내가 무척 예민한유형의 사람이라 그런 불편한 공기들이 더 심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게 나이가 먹어가면서는 방어기제처럼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고, 그런 상황을 너무 미리 과하게 부정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엄마와 일상의 대화는 했지만 마음을 나누는 대화는 전혀 안됐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어떤 부정적인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데 집중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엄마의 마음에 공감하고 위로해줬으면 되는 건데 말이다.
무튼 이런 연유로 나는 거의 항상 엄마랑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엄마랑 나는 더욱 데면데면해졌었다. 그러다 갑자기 임신을 했고 결혼을 했고 출산을 했더랬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나는 2년 동안 엄마랑 무척 가까워졌다. 정말 소리를 빽빽 지르면서 싸운 적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엄마의 표현대로 '꿈 같은' 시간이었다. 아기 덕분에 엄마 덕분에 엄마의 깊고 넓고 따스한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됐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를 가려니 며칠 전부터 이사 생각만해도 눈물이 내 작은 눈을 비집고 나왔다. 이건 비밀이다. 남편도 모른다. 아직 말 못하는 우리 아기는 알지도. 오늘은 이 동네에서는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네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몰래 밥솥 위에 편지를 숨겨놓고 왔다. 엄마에게 밥솥을 살펴보고 오라고 한 뒤 엄마는 2시간 동안 아무 말이 없었따. 그리고 방금 메시지가 왔다. 이삿날 눈이 퉁퉁 붓게 하려는 우리 엄마의 계락인가. 비록 자정이 다되어가도록 눈물을 질질 짜고 있지만 엄마의 사랑과 응원으로 33년간의 캥거루 족 생활을 잘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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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나야. 잇츠태이암. 내일 이사다. 꽉 채운 33년동안 엄마랑 아빠 품에서 살다가 쪼까 멀리 이사를 간다니 기분이 묘하구먼 (슬픔 50% 기대 30% 걱정 20%) 결혼하고 태이를 엄마가 봐주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물론 내잘못이 컸제...) 그래도 엄마랑 살면서 최고로 시간도 많이 보내고 친해진 것 같아서 참 좋았어. 엄마도 좋았으려나~^^:: 자식을 낳아 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하잖아? 태이를 2년 키워본 입장으로서 뭔말인지 조금은 알것 같아. 2년 키운 태이가 이쁘거든? 그럼 엄마가 33년 키운 나는 그거의 16배 정도 이쁘려나? 싶달까 카카카 그런데 16배까진 아닐 것 같고, 무튼 그동안 내가 엄마를 좀 오해한 측면도 있는거 같아. 암튼튼 여기 살면서 우리가족이 상당히 신경쓰였을거 같은뎁숑. 늘 최선을 다해서 우리 챙겨줘서 고마워. 엄마덕분에 정말로 든든하고 걱정없이 살았어. 엄마가 근처에 관살았으면 매우 자주 눈물콧물 흘리면서 육아했을 것 같아. 그리고 우리 둘이 이렇게 시간 보낼 일도 없었을 테고 이렇게 (내 인생에 엄마랑) 최고치로 친밀해지지도 못했겠지...? 암튼 다음엔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사를 가더라도 자주 놀러올거야. 그니께 안심하지마^^ 자주 귀찮게 할 예정. 항상 고맙고 사랑하삼~♡
- 전 캥거루족 현 독립예정인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