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창인 2021 여름에 친구가 자기 아들 결혼하는데 주례를 서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너 주례 서 본 적 있지?
응, 회사 다닐 때 직원들 요청에 어쩔 수 없이 몇 번 섰지.
이번 가을에 아들 결혼하는데 주례 좀 서주라.
야 미쳤나? 백수가 무슨 주례야. 안 해!
야 좀 부탁한다. 서 주라.
요즘 주례 없이 결혼식 잘도 하더구먼. 주례 없이 신랑 신부 동시 입장하고 양가 혼주들이 인사말 한 마디 하는 식으로 많이 하잖아. 그렇게 하면 되잖아.게다가 요즘은 49명밖에 참석 못 하잖아. 몇 명 되지도 않는데 무슨 주례야.
안돼! 주례가 있어야 해.
그럼 네가 찾아서 해. 너 교회 다니잖아. 너네 교회 목사 시켜.
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마누라 때문에 교회 나가는 거지. 뭐 신앙이 있냐? 선데이 크리스천이잖아.
그래도 너 그 교회 집사잖아.
집사? 그거 별거 아냐. 오래 다니면 다 달아줘. 태권도 도장 2년 다니면 까만 띠 매는 거와 같아.
그럼 네 친구 중에 대학교수하는 친구 많잖아. 갸들한테 부탁해.
야 너도 알다시피 나 원래 교수 싫어하잖아.
아 그럼 너네 동네 국회의원한테 부탁해.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그런 거잖아.
내가 시집도 안 간 국민의 힘 배*진 한테 부탁하냐? 미쳤다고 그女* 한테 우리 아들 주례를 부탁해?
.
.
.
이러다가 어쩔 수 없이 맘이 약해져서 수락했다. 사실 주례를 선다는 게 쉽지 않다. 새로 시작하는 신랑 신부에게 보여 줄 모범된 삶을 살아오지도 않았고 보여줄 것도 없다. 주례사를 준비해서 한다는 것도 쉽지 않고 당일날 정장 차려입고 남들 앞에 서 본지도 오래되어 익숙 치도 않다. 주례사? 그거 누가 듣는다고? 결혼식장 가보면 신부 입장 때까지는 그나마 하객들이 있지만 그 이후엔 밥 먹으러 식당으로 간다. 신부 얼굴 한번 SSG 보고는 간다. 밥 먹으면서 식式 하는 경우에는 자기들끼리 떠드느라 주례사는 듣지도 않는다. 심지어 신랑 신부 당사자들도 경황이 없어서 잘 안 듣고 못 듣는 게 주례사 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례사를 대충 막 할 수도 없잖은가? 주례를 서려면 사전에 신랑 신부를 알아야 한다.
단지 친구 아들이라는 것 가지고는 안된다. 어릴 때 한 두 번 본 것 밖에 없다. 사전에 신랑 신부를 만나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을 해야 한다.
내가 요청했다. 신랑 신부는 향후 부부가 되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에 대한 결혼 계획서를 주례인 나에게 제출해 주세요. 할 수 있지요? 난감한 표정을 보인다. 그래도 밀어붙인다. 어쩌겠는가? 주례가 갑이고 신랑 신부는 을인데... 꼰대 짓을 한 게다. 그것도 제대로 꼰대 짓을 한 거다.
나중에 친구를 통해 연락이 왔다. 결혼 계획서를 만들고 있는데 워드 파일이나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서 이메일로 보낼 테니 이메일 주소를 알려다오. No. 안돼! 둘이 상의해서 하되 반드시 손글씨로 써서 우편으로 나에게 보내기 바란다.
괜히 아빠 친구에게 주례 한번 부탁했다가 벼라 별꼴을 다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