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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지 Jul 21. 2020

육아하며 순댓국 먹기

 저는 순댓국을 그렇게 자주 먹는 편이 아니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많으면 세 번 정도 먹는 것 같습니다만 한번 일때도 있고 한 달 동안 한 번도 먹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육아를 하기 전에는 더 가끔 먹었고요. 아무튼 엄청 비싼 음식도 아니고 가끔 먹고 싶을 때면 그냥 먹으러 가면 되는 음식이었는데 육아를 하면서는 이게 어려운 일이 돼버렸습니다.


 순댓국을 먹을 기회는 보통 하루에 세 번입니다. 식사를 일반적으로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세 번 하니까요. 일단 아침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불가능합니다. 아침부터 문을 연 곳을 찾기도 쉽지 않고 그 시간에 깨어있다면 아이 유치원 등원 준비를 도와야 하니까요.(평소 아침 유치원 등원은 아내 담당입니다. 제가 일 관련 작업을 새벽에 할 때가 많아서요.) 아이 유치원 등원 후에 이동해서 먹기엔 출근 차량들 때문에 시간이 평소보다 더 걸립니다. 그래도 가서 먹는다면 먹고 돌아오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이후 일정이 밀리며 이런저런 문제가 생깁니다.


점심시간엔 아이가 유치원에 있어서 이동은 자유롭지만 음식점이 바쁜 시간대에 저 혼자 4인 테이블을 차지하고 먹을 용기는 없습니다. 그래서 직장인들의 식사시간을 피해서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에 몇 번 먹으러 갔었습니다만 지금은 3시부터 4시까지 운동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이마저 힘들어졌습니다. 운동을 하려면 적어도 두 시간 전에는 식사를 해야 몸에 무리가 없으니까요. 국물까지 있는 음식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운동을 했다간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예요.


저녁 시간엔 아이와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데 보통 순댓국집엔 아이와 함께 식사할 메뉴가 없습니다. 아이가 아직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거든요. 포장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걸어서 갔다 올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것도 힘듭니다. 늦은 시간이 아니면 가게 주변 주차가 어렵고, 지하 주차장이 큰, 쇼핑몰 같은 곳에 있는 순댓국집은 이동에 너무 많은 품이 들며 대부분 포장 서비스도 없습니다. 그리고 순댓국 포장은 가져와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국물과 각종 건더기를 따로 담아주기 때문에 집에서 재료를 옮겨 담은 후 끓여서 먹어야 한다는 점도 걸림돌입니다. 사 먹으며 일까지 늘리고 싶지 않아요.


중요한 일은 우선순위가 분명하기 때문에 고민 없이 그냥 하게 됩니다. 아이 유치원 상담이나 일 관련 미팅 때문에 시간을 아까워하거나 할지 말지를 고민하지는 않죠. 하지만 순댓국을 먹으러 갈지 말지는 결정하기 힘듭니다. 점심에 순대국 한 번 먹으려면 그날 운동만 하루 빠지는 게 아니라, 사실상 오후 일정은 아무것도 못하고 순댓국 하나 먹는 걸로 끝나더군요. 순댓국을 먹으러 나가더라도 최소한의 외출 준비는 해야 하며 이동시간 등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먹기 전후로는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다른 일을 하기가 힘듭니다.


순댓국 먹는데 거의 반나절을 쓰고 나면 시간을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자괴감이 몰려옵니다. 순댓국 한 번 먹는 일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할 일인가 싶고, 육아 외의 일상은 사치가 된 것 같다는 생각과 순댓국 먹기가 아닌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해집니다.


요즘은 순댓국이 먹고 싶은 날엔 일부러 저녁 식사량을 줄이고 아이가 잠든 후 24시간 영업하는 순댓국집을 갑니다. 제일 좋아하는 집은 아니지만 운동 및 오후 일정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 정도는 타협하고 있습니다. 밤에는 도로에 차가 적어 이동도 편하고 먹고 와선 바로 잘 수도 없으므로 적당히 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합니다. 이렇게 먹고 오면 다른 원하는 일들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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