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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Mar 22. 2024

아주아주 나쁜 꿈을 꾼 것이라 여기기로 했어

우리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볼까. 미뤄둔 빨래를 하고 한바탕 청소를 해보는 것도 괜찮겠어. 사람이 늘어져 있으면 더욱 무기력해진다고들 하잖아. 그래서 한동안 내가 우울과 뒤섞여 더 옴짝달싹 못했는지도 몰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친구를 만나는 것 대신 혼자 카페에 들러 커피와 디저트를 시키고 앉아. 오래 덮어두었던 책을 읽거나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과 감정들을 글로 적어두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어.


대책을 세울 틈도 없이 직면해야 했던 사건들과 또 한 번의 배신. 홀로 감당했던 무게. 난 왜 이렇게 나쁜 패를 집어 들까.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발생할까. 탓할 건 없어 나를 향해 쏘아댔던 비수들. 차라리 몽땅 잊고 싶어 나를 들여다보지 않으려 회피했어. 내가 나를 보면 아플 것 같아서 말이야. 더불어 ‘그때 그러지 말걸’ 후회하느라 나를 미워하고 ‘어쩌면 전부 내 잘못이 아니었을까’ 굴 것 같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무서웠다. 생각보다 잃을 게 많던 거 있지. 가족과 친구들. 가까운 나의 사람들. 사랑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다면 날 잃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았지. 한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날 잃는다는 건 곧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한다는 거나 다름없더라. 나는 지키고 싶은 것들과 지켜야 할 것들이 수두룩했어. 그리하여 다시 일어나야겠다는 판단이 섰고. 누구도 쉬이 들추지 못할 상처를 안고 살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 뒤엔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었기에 노력해야 했어.


친구가 그러더라. 불안에 떠는 나에게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니 본인의 운을 나눠주겠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반드시 나아가야 했지. 아주아주 나쁜 꿈을 꾼 것이라 여기기로 했어. 악몽이 몹시 길었어. 이젠 깨어날 때가 된 것 같아. 안 좋은 일들을 어서 잊어야 앞으로가 있을 테지?


사람은 여러 번의 큰 사건을 겪고 나면 오히려 매사 담담해진다고 해. 덕분에 대부분의 일들이 별것 아니게 되었어. 이보다 더한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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