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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재 Jan 19. 2022

설악산 이야기 12. – 옆방 K에게 2부


설악산 이야기 12. – 옆방 K에게 2

선생님은 이십 대 초반에 처음 피아노를 배웠는데도 단 1년 만에 수석으로 음대에 합격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하여 현재는 자신의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얻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입시를 준비하던 1년 동안 연습실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하셨다. 잠도 피아노를 끌어안고 주무시고, 식사도 연습실 안에서 대충 해결하면서 말 그대로 처절하게 연습하셨다. 달마로부터 가르침을 얻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자른 혜가도 함부로 명함을 내밀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 분이 연주하시던 Autumn Leaves를 잊지 못한다. 같은 악기에서 어떻게 이렇게 다른 소리가 나올 수 있는가. 나는 이번 생에 그런 연주를 결코 해낼 수 없으리라고 손쉽게 체념하게 만드는 경지의 소리가 선생님의 피아노에서 흘러나왔다. 내 책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 6-13. 예술에 관하여 파트에서 ‘어떤 이는 쉬운 동요를 연주해도 첫 건반 터치부터 이미 청중을 울게 한다.’는 바로 이 분의 피아노를 생각하며 적었던 한 줄이었다. 당신은 삶이 먼저 예술이 되었기 때문에 예술을 달성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연주 중에 피아노 줄을 끊었던 이야기를 해 주셨다. 나무 재질의 피아노 건반과 그것을 때리는 손가락의 압력, 그리고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소리의 주파수 같은 것들이 정확히 딱 맞아떨어졌을 때에만 피아노 줄이 탁, 하고 끊어진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3개의 스트링으로 단단히 엮여 있는 그랜드피아노의 줄까지도 끊어본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때의 쾌감이 엄청났다고 덧붙이셨다.


나는 그것을 완전한 몰입의 순간이라고 받아들였다. 이거구나, 내가 이번 생에 도달해야 하는 경지는 바로 이것이구나. 피아노의 줄을 끊는 것이 나의 꿈으로 자리 잡던 그 순간, 나는 피아노에 대해 일종의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갖게 되었다.


UDT는 야간 훈련이 거의 매일 있기 때문에 피아노를 연습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또한 부대 생활에 지장을 주는 일체의 행위를 나는 극도로 혐오했다. 나는 23시 정도에 퇴근하면 씻지도 않고 바로 차를 몰아 연습실로 갔다. 거기서 고작 한두 시간일지라도 피아노를 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야간 훈련이 없는 날은 저녁도 먹지 않고 바로 연습실로 가서 김밥을 씹으며 피아노를 쳤다.


누군가 어떤 일에 진지하게 임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된다. 겉멋을 위해서였다면 나는 어떻게든 있어 보이는 연주부터 하려고 덤볐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매일 연습했던 것은 스케일, 다이아토닉, 코드 자리바꿈 따위의 몹시 기초적인 것뿐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연습을 메트로놈 bpm 60-120 사이에서 5 단위씩 올려가면서 세밀하게 연습했다. 그것도 선생님의 지시 하에 예식장에서나 낄 법한 하얀 장갑을 끼고 마찰력의 소중함을 연신 깨달으며 지독하게 연습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최대의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한번 연습실에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나를 보고 입시생들은 ‘저 오빠 또 왔다.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우리도 질 수 없다.’라면서 놀라워하기도 했다.


당시 피아노를 향한 나의 열정은 입시생에 준할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몹시 진지한 것이었다. 여러 실패의 경험으로 한 번 지나가버린 꿈의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피아노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지도 몰랐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나를 다녀간 많은 것들이 그러했듯이 나의 피아노 역시도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아득한 미련으로만 남을지도 몰랐다. 그러한 내게 선생님은 이런 구절을 보내주셨다.


“연습실에서 비참할수록 무대에서 화려하다.” – 바이런 케이티


그러나 코로나의 창궐로 나는 마음껏 비참해질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집단 감염의 우려로 부대 차원의 통제가 심해져 집 밖을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대로부터 멀어져 가는 나의 삶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삶에 패배했다는 씁쓸함에 오래 사로잡혀 지냈다.


나는 피아노를 향한 나의 사산된 꿈을 아직도 품에 꼭 끌어안고 살아간다. 피아노 앞에서 더욱 비참하게 몰락하고자 하는 나의 욕망을 완벽히 충족시킬 그날이 오기까지, 그리하여 언젠가는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무대 위에 올라설 그날이 오기까지, 나의 피아노는 먼지 쌓인 유리창 너머에서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외로이 서있을 것이다.


(13부에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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