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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재 Jan 26. 2022

설악산 이야기 마지막. 7번 국도를 떠나며

설악산 이야기 마지막. 7 국도를 떠나며

10월 16일, 처음 이 길에 올 때가 생각납니다. 도시의 삶에 지쳐가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죠. ‘이 녀석. 벌써 지쳤어? 정신을 못 차렸군. 썩 필드로 꺼지거라!’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며 약 100일을 거리에서 머물렀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여행은 출발할 때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연쇄적으로 불러왔습니다.


저의 화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으며 어떻게 자신을 주체해내야 하는가’였습니다. 자신을 이해해보려 애쓸 때마다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대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저 자신의 내적 혼란이었습니다.


특히 <맹자>에 나오는 ‘무항산무항심’ 즉 생활의 안정이 있어야 바른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에 저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항산을 구축하기 위해 오래 달려왔으나 감정적으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항심(마음)은 항산(자본)에 종속된 것인가?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순서가 뒤바뀐 것 아닌가. 그러니까 ‘무항심무항산’ 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요.


그런데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를 본격적으로 파는 것이 주업이 되니 더는 항산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소통하느냐의 싸움이 됐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고 문학, 철학, 예술에 다시 손대기 시작한 순간, 저는 순식간에 행복해졌습니다. 니체가 말한 ‘실질 세계의 가장 큰 적은 실질 세계’라는 말을 그때 이해했습니다. 돈돈돈 거릴수록 돈이 벌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분의 세계’로 상징되는 예술, 문학 등 소위 ‘쓸데없이 인간적인 것들’의 필요성을 니체는 역설했던 것입니다. 여분의 세계를 통해 실질 세계를 달성한다, 항심을 통해 항산을 구축한다. 이것이 가능해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저의 책을 상품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책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고자 합니다. 제가 저의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목표를 100만 부라고 했지만 그건 상징적인 것입니다. 판매 부수는 결과적으로 따라와야만 하는 것이고, 달성하지 못해도 아무런 상관없는 마음으로 과정에 매몰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올 한 해 신나게 달려보려고 합니다.


100권을 읽겠다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한 50권 읽었을까요. 많이 부족합니다. 엄청난 독서가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이곳에서 큰 울림을 얻었던 세 권의 책을 조심스레 소개해드립니다. 아래 책들을 통해 저는 저 자신의 직감의 근원을 규명해낼 수 있었습니다.


최진석 – 탁월한 사유의 시선

”반역자는 정해져 굳은 것에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그것과 과감하게 결별하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반역은 기존의 것에 저항하는 것, 이미 있는 것보다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더 궁금해하는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려는 도전, 이것이 반역의 삶이다. 모든 창의적 결과들은 다 반역의 결과다.”


강신주 – 김수영을 위하여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어떻게 어떤 사람을 사랑하기도 전에 미리 사랑하는 방법을 가질 수 있겠는가? … 김수영도 온몸으로 밀어붙이면 그것이 바로 시가 되고 삶이 되고 사랑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정해진 방법이 없기에 우리는 자신의 온몸을 온몸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이럴 때 삶도 사랑도 예술도 자기 자신의 것이 되니까. … 한 번 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스타일로 살아 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자 인문학이 추구하는 자유정신 아니겠는가.


앤소니 드멜로 – 깨어나십시오

“나로서는, 만일 여러분이 진정으로 깨어나고자 한다면, 여러분이 아셨으면 하는 첫째 사실인즉 여러분이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깨어나기 위한 첫 단계는 깨어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만큼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함석헌은 혁명이 완수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혁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자는 자기 혁명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자기를 바꾸는 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지난 여정은 자기 혁명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자기 혁명이 됐냐구요? ㅋㅋㅋ아뇨. 그러나 사고와 감정의 물줄기는 분명히 바뀐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만 남은 것 같아요.


그동안 저의 여행기를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필드,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댓글에 노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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