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완 Apr 01. 2019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학교 하나를 추천했다.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상업고등학교였는데 성적 우수 학생을 뽑고 있다고 했다.

“장학생으로 들어가면 3년 동안 학비를 안 내도 된다.”

어려운 우리 집 형편을 고려한 제안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대학에 갈 생각은 없었다. 성적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돈을 벌고 싶었다. 상고, 직업 준비교육으로 특화된 고등학교니 취업 걱정은 없겠지.


‘아, 잘못 왔다!’

상고에 입학하고 2년이 다 지나갈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1학년 때 주산 수업이 있었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숫자에 맞춰 주판알을 튕기며 요즘도 주판으로 계산을 하나 의심이 들었지만 다 필요하니까 배우는 거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2학년이 되자 주산 과목이 없어졌다. 이젠 아무도 주판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참 빨리도 알아챘다.) 종이를 위에 끼워서 타이핑하는 기계식 타자기를 열심히 익혔는데 타자 과목도 없어졌다. 이젠 컴퓨터의 시대라고 했다. 부랴부랴 컴퓨터로 문서 작성하는 법을 익혔다. (그때 컴퓨터라는 걸 처음 만져봤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걸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아니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상고 출신이 번듯한 대기업에 척척 입사했던 영광은 이미 옛일이었다. 취업에 실패하는 선배들이 수두룩했고, 간신히 취업한 선배들도 이름 없는 회사에 만족해야 했다. 괜찮은 회사는 대졸자들의 몫이었다. 주판이나 타자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학교의 잘못도 아니었다. 세상은 이제 고졸 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대학에 가야겠어!’

누구도 내게 대학에 가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부모님조차 진학 문제에 대해선 어떤 조언이나 강요가 없었다. 솔직히 부모님은 그쪽으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부모님의 유일한 걱정은 대학에 가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대학에 가기로 했다. 누구의 강요 때문이 아니고 내가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먹고살기 위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주판알, 아니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고3이 다 되도록 수능 공부를 하지 않은 내가 대학에 갈 확률은? 지금부터 죽어라 공부한다 해도…… 힘들어 보였다. 좌절하던 찰나,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미대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부족한 수능점수를 실기로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소질도 조금 있었는지 각종 대회에서 상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그림 그려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었던 터라 딱히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미술을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면 전공 따위는 별로 상관없었다. 때마침 디자인이 뜨고 있었다. 앞으로는 디자인의 시대라고 했다. 그래서 디자인과로 방향을 정하고 대학에 갔다.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업도 문제없겠지.


‘아, 이게 아닌가?’

순진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 세상은 또 변해 있었다. 그사이 많은 일이 일어났다. IMF가 터졌고, 21세기가 시작되었고,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고, 인터넷의 시대가 되었으며, ‘소녀시대’가 데뷔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장만 가지고는 취업이 힘들다고 했다. 서울대를 나와도 박사 학위가 있어도 놀고 있는 사람이 널렸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대학만 나오면 취직은 그냥 되는 거 아녔어? (응, 아니야.) 그런 건 없었다. 마치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다. 졸업 후의 삶이 막막했던 한 학생이 교수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학교에선 취업 준비는 안 해주는 겁니까?”

교수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답했다. 대학은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지 취업을 알선해주는 곳이 아니다. 여기서 배운 거로 뭘 하던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아, 인생은 각개전투. 예 썰!

살길을 찾아 각자 알아서 흩어졌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 외국 유학을 떠나는 사람, 졸업을 미루고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 자기 회사를 차리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백수가 되는 사람.


대학을 졸업할 때 내 나이 서른하나였다. 입시생부터 대학 졸업까지, 나의 20대를 온전히 대학에 바친 셈이다. 경쟁력 좀 높여보려고 그 오랜 시간을 투자했건만 결국 나는 주저앉았다. 좋은 대학에 가면 저절로 잘 풀릴 줄 알았던 인생이 꼬여버렸다.

취업 활동도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헛되고 헛되게 몇 년을 보냈다. 왜 그랬냐고? 밖에는 취업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형편없는 학점과 졸업장만 달랑 손에 들고 전장으로 뛰어들어봤자 승산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으니까. 늘 이런 식이다. 열심히 달려도 따라잡지 못한다. 무언가의 뒤만 계속 쫓고 있는 기분. 경쟁력 없는 자의 숙명일까. 지친다.

경쟁력을 가지는 것. 남들보다 내가 낫다는 걸 증명하는 것. 그 방식에 지쳐버렸다. 대학만 졸업해도 경쟁력 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대학을 나오니 그것만 가지고는 경쟁력이 없다.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모두가 노력해 그 이상을 해내면 그것 또한 경쟁력을 잃는다. 그 이상의 이상이 필요하다. 요즘은 취업을 위해 ‘스펙 9종 세트’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경력, 사회봉사, 성형수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이건 낭비다. 불필요한 경쟁이며 자원 낭비다. 과연 이게 누구에게 좋은 경쟁인 걸까. 회사에서 저 스펙을 다 갖추고 오라고 한 것이 아니다. 사실 회사에서는 필요 없는 스펙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알아서 기고 있다. 회사는 그냥 편안하게 싸움을 지켜볼 뿐이다. 이기는 놈이 우리 편. 전지전능한 회사의 눈에 들기 위해 우리는 처절하게 싸운다. 과연 이 싸움에 끝이 있을까? 나중엔 어떤 스펙까지 갖추어야 할지 상상도 안 된다.


반대로 취업 경쟁에서 승리한 승자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쭉 뻗은 고속도로를 아무런 걱정 없이, 핸들에서 손을 놓은 채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걸까? 놀랍게도 대기업 입사 1년 안에 퇴사하는 비율이 30%에 이른다고 한다. 퇴사하고 싶어도 아까워서 못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훨씬 높은 비율의 사람이 이렇게 느낀다는 얘기다.

“아, 여기가 아닌가?”

다들 못 가서 난리인 대기업을 제 발로 나온다니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겪어보지 않고선 모르는 것들이 있다. 언제나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 고생고생해서 얻은 것을 버려야 했을 때 마음은 오죽했으랴. 하지만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봐야 자기와 잘 맞는 짝을 찾을 수 있듯 더 많은 경험, 더 많은 실패가 우리에게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안다. 한 번에 모든 걱정과 불안이 해결되는 만능키 같은 정답은 없다는 걸. 어떤 선택을 하던 우리는 항상 잘못된 곳에 와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저 끊임없이 궤도를 수정하며 나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