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하완 Mar 18. 2019

별거 아닌 콤플렉스





콤플렉스가 뭐냐는 질문에 한 연예인은 이렇게 말했다.

"콤플렉스는 숨기고 싶은 건데 그걸 말하라고 하는 건 실례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콤플렉스는 숨기고 싶은 거다.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 콤플렉스는 이겁니다, 하고 말을 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이미 그것은 심각한 콤플렉스가 아니다. 그 말인즉슨 숨기면 콤플렉스가 되고, 당당히 드러내면 콤플렉스가 아닌 게 된다는 얘기다.

내게도 숨기고 싶은 콤플렉스가 있다. 아니, 있었다. 내 오랜 콤플렉스는 가난이었다. 처음 가난하다 의식한 순간부터 나는 주눅이 들었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쭈구리 모드가 되어서는 말수가 적은 조용한 아이가 되었다. 말을 많이 하면 들통나기에 십상이니까. 내가 가난하다는 걸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물론 가난은 쉽게 감춰지는 게 아니어서 티가 났겠지만 가능하면 아무도 몰랐으면 했다.
학창 시절 동안 집에 친구를 데려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사는 꼴을 보여주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가난하기만 하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아버지가 사흘이 멀다 하고 가족들을 두들겨 패대는 통에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일도 안 나가고 매일 술에 취해 집에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보여줄 수 없다. 친구들이 우리 집을 볼까 봐 괜히 멀리 돌아 집에 오곤 했다.
여러모로 혼자가 편했다. 어울리는 무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학교 안에서만 적당히 잘 지내고 학교 밖에서는 가능한 만나지 않았다. 초중고 12년을 그렇게 다녔다. 말이 좋아 친구지 나는 조직에 위장 잠입한 스파이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다. 신뢰와 호감을 얻되 정체를 들키지 말 것.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했고 진정한 의미의 친구도 없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진짜 인간관계가 시작된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인간관계에 서툰 나를 필요 이상으로 아껴주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 덕분에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은 지금의 내가 있다. 아, 그리고 술(酒)이 빠질 수 없다. 어쩌면 모든 게 그놈의 술 때문이다. 술만 아니었으면 여전히 정체를 들키지 않고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즐거운 일, 슬픈 일, 그리고 말 못 할 아픔들도. 이들에겐 숨길 게 없다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나의 오랜 콤플렉스를 툭 하고 꺼내놓게 된 것이다. 딴에는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은 거였는데 상대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이고 그랬구나 정도랄까. 그래서 좋았다. 상대가 호들갑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면 다시는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거다. 내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큰 문제 아니라는 듯 들어줘서 좋았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나와 비슷한 경험들, 혹은 그보다 더한 일들. 누군가는 이런 걸 두고 ‘불행 배틀’이라 부르며 조롱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게 봐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결코 ‘배틀’이 아니었다. 누가 더 힘든지를 겨루자고 하는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백이었고 그 고백에 대한 다정한 대답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걸 두고 ‘공감’이라 부른다.
오랫동안 세상 고통은 나 혼자 끌어안고 사는 것처럼 죽상을 하고 살았다. 많은 밤, 많은 술, 많은 이야기 덕분에 나만이 그런 아픔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내 어둠을 좀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 속에 숨기고 있을 땐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어둠이었는데 막상 밖으로 꺼내놓고 보니 생각보단 작은 놈이었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내 콤플렉스를 마구 떠벌리고 다녔다. 애써 숨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도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대할 수 있었다. 별거 아니네. 여전히 자랑할 거리는 못된다 생각하지만 딱히 부끄럽게 느끼진 않게 되었달까. 그렇게 나의 콤플렉스는 사라졌다.

“고생 같은 건 하나도 안 하고 곱게 자란 얼굴이에요. 맞죠?”
최근에 알게 된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티가 나나요?”
이제는 내 귀족적인 분위기를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웃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내 얼굴에 그늘이 없다는 얘기니까. 사실 어린 시절 내내 내가 들었던 말은 “넌 왜 그렇게 얼굴이 어둡냐?”였다. 유사품으로 ‘무섭다’ ‘우울하다’ ‘차갑다’ 소리를 자주 들었다. 지금 그와 정반대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이유는 2년 전에 피부과에서 받은 레이저 시술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내면은 반드시 얼굴에 드러난다고 믿는다.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가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내 안의 어둠이 사라지자 내 얼굴은 서서히 밝아졌다. 앞으로도 이렇게 밝은 얼굴로 늙고 싶다. 그러려면 올해 다시 레이저 시술을 받아야… 응? 이게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열등한 존재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