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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완 Apr 01. 2019

경쟁력 있는 인간




내가 특정 대학에 가기 위해 4수를 할 정도로 대학 간판에 집착했던 속물이란 사실은 이미 밝힌 바 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담임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학교를 하나 추천했다. 집에서 거리가 먼 상업고등학교인데 성적 우수 학생을 뽑고 있다고 했다.

“장학생으로 들어가면 3년 동안 학비를 안 내도 된다.”

어려운 우리 집 형편을 고려한 제안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대학에 갈 생각은 없었다. 성적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제로(0). 고등학교 졸업하면 바로 돈을 벌고 싶었다. 상고라. 직업 준비교육으로 특화된 고등학교니 취업 걱정은 없겠지.


‘아, 잘못 왔다!’

상고에 입학하고 2년이 다 지나갈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1학년 때 주산 수업이 있었다. 주판알을 튕기며 요즘도 주판으로 계산을 하나 의심이 들었지만 다 필요하니까 가르치는 거겠거니 했다. 2학년이 되었을 때 주산 과목이 없어졌다. 이젠 아무도 주판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참 빨리도 알아챘다). 기계식 타자기를 열심히 익혔는데 일 년 후에 타자 과목도 없어졌다. 이젠 컴퓨터의 시대라고 했다. 부랴부랴 컴퓨터로 문서 작성하는 법을 익혔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걸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아니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상고 출신이 번듯한 대기업에 척척 입사했던 영광은 이미 옛일. 취업에 실패하는 선배들이 수두룩했고, 간신히 취업한 선배들도 이름 없는 회사에 만족해야 했다. 괜찮은 회사는 대졸자들의 몫이었다. 주판이나 타자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학교의 잘못도 아니었다. 세상은 더 이상 고졸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대학에 가야겠어!’

누구도 내게 대학에 가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부모님조차 진학 문제에 대해선 어떤 조언이나 강요가 없었다. 솔직히 부모님은 그쪽으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본인들이 모르니 자식에게 이래라저래라 말할 수가 없었던 거다. 부모님의 유일한 걱정은 대학에 가면 돈이 많이 든다는데였다. 아무튼. 나는 대학에 가기로 결정했다. 누구의 강요 때문이 아니고 내가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먹고살기 위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주판알 아니고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고3이 다 되도록 수능 공부를 하지 않은 내가 대학에 갈 확률은? 지금부터 죽어라 공부한다 해도…… 힘들어 보였다. 그러다 내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미대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부족한 수능점수를 실기로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꽤 소질도 있어서 각종 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그림 그려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었던 터라 딱히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미술을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면 전공 따위 별로 상관없었다. 독하게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그림도 수능 공부도 절대 쉽지 않았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합격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이 정도 대학으론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더 그럴듯한 간판이 필요해. 목표는 홍대 미대. 그렇게 4수를 했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이제 꽃길만 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 이게 아닌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꽃길은 펼쳐지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시점, 세상은 또 변해있었다. 그사이 IMF가 터졌고, 21세기가 시작되었고,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고, 인터넷의 시대가 되었으며, 소녀시대가 데뷔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장만 가지고는 취업이 힘들다고 했다. 서울대를 나와도 박사 학위가 있어도 놀고 있는 사람이 널렸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응? 좋은 대학만 나오면 취직은 그냥 되는 거 아녔어? 그런 건 없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닌 것 같다. 졸업 후의 삶이 막막했던 한 학생이 교수에게 물었다.

“학교에선 취업 준비는 안 해주는 겁니까?”

교수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대학은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지 취업을 알선해 주는 곳이 아니다. 여기서 배운 거로 뭘 하던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아, 인생은 각개전투. 예 썰!

졸업과 동시에 살길을 찾아 알아서 흩어졌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 외국 유학을 떠나는 사람, 졸업을 미루고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 자기 회사를 차리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백수가 되는 사람.


대학을 졸업할 때 내 나이 서른하나였다. 나의 20대를 온전히 대학에 바친 셈이다. 경쟁력 좀 높여보려고 그 오랜 시간을 투자했건만 나는 주저앉았다. 좋은 대학에 가면 저절로 잘 풀릴 줄 알았던 인생이 꼬여버렸다. 취업활동도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헛되고 헛되게 몇 년을 보냈다. 왜 그랬냐고? 밖에는 취업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졸업장만 달랑 손에 들고 그 전장으로 뛰어들어봤자 승산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달까. 더구나 난 지쳐있었다.


더 달리는 건 무리야. 지금까지 온 것도 엄청 무리한 거라고.


경쟁력을 가지는 것. 남들보다 나은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 그 방식에 지쳐버렸다. 대학만 졸업해도 경쟁력 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대학을 나오니 그것만 가지고는 경쟁력이 없다.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모두가 그 이상을 해내면 그것 또한 경쟁력을 잃는다. 그 이상의 이상이 필요하다. 요즘은 취업을 위해 ‘스펙 9종 세트’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경력, 사회봉사, 성형수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이건 낭비다. 불필요한 경쟁이며 자원 낭비다. 과연 이게 누구에게 좋은 경쟁인가. 우리는 알아서 기고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열을 내냐면, 나는 그걸 다 갖출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장 하나 갖는데도 장난 아니게 힘들었다. 4수에, 학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에, 그렇게 보낸 10년. 더는 무리였다.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도망쳤다. 선수 이탈.


“경쟁하지 않으면 뭔 뾰족한 수가 있냐?”

내 말이 그 말이다. 방법을 모르니 백수가 될 수밖에. 역시 세상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는 방법이 없는 걸까. 길을 잃은 소년은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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