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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훈 Aceit Dec 25. 2021

운이 좋았습니다

왜 경영자들은 그렇게 이야기할까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회사는 좋은 실적을 거두었다.

사실 2020년의 높은 실적이 부담스러워 2021년의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잡았는데, 오히려 전년 보다도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으로써 이런 성과는 뿌듯하다.


내년도 사업계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금년의 실적 분석을 해 보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정리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어느 품목군에서 성장을 이루었는지, 어떤 팀에서 그리고 어느 거래처에서 성장을 이루었는지, 그것이 P(Price)에 의한 것인지 Q(Quantity)에 의한 것인지 등은 하루만 시간을 내서 깊숙히 분석하면 다 확인이 가능하다.  나는 이런 종류의 분석을 Contribution Analysis(기여도 분석) 이라고 칭한다.


기여도 분석이 끝나면 이러한 숫자상의 변화를 만들어 낸 요인들을 분석한다.  그 요인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바로 시장 성장률일 것이다.  많은 경영 서적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실제 내 경험 상으로도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 성장률이다.  그래서 애널리스트들도 항상 기업 분석시 시장 성장률 수치는 추정치라도 포함시킨다.  


시장성장률을 제외하면 주로 가격과 점유율의 영향이 남는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같은 제품이 가격 인상되는 경우는 찾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들은 신제품 개발과 판매를 통해 가격인상을 시도한다.  물론 이런 신제품들은 점유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요소들은 신제품 외에도 많으며 주로 마케팅과 영업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요인분석까지 마치고 나면 대부분의 분석 리포트는 마감이 된다.  분석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업은 현재의 전략을 고수하든 전략을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옳은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세스가 옳게 수행된다고 반드시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매우 미시적으로 들어가 보았을 때 회사의 성장에는 늘 운이 따라주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위의 내용들을 리뷰해보자.

기업의 성장에서 시장 성장률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시장의 성장은 항상 예측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만약 예측이 가능하다면 이미 그 시장은 강자들로 가득찼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전기차 시장, 그리고 배터리 시장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장 성장률이 높은 것은 알지만 그 성장률을 보고 아무나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은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이러한 시장의 급성장은 정말 적기에 M&A를 통해 뛰어든 것이 아니라면 기존에 그 시장에서 운영하던 회사들에게 유리하게 작용되도록 되어있다. 전기차로 인해 베터리 시장이 급성장 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원래 다른 용도의 베터리를 만들던 회사들이다.  이 베터리 회사들은 "전기차 시장의 성장" 이라는 외부적요인, 즉 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름 기업의 역량 등이 적용될 수 있는 점유율 확보 역시 운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는 커리어 초반을 영업사원으로 보냈고 매년 좋은 성과를 냈다.  그리고 그 회사는 외국계 회사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과는 결국 "판매활동"을 통해 만들어졌었다.

영업을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성과를 냈기 때문에 이것을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분명 성공하는 영업사원의 자질과 태도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실적을 쌓기 위한 하나 하나의 Sales Deal들을 생각했을 때 일이 잘 풀릴 수 있었던 요소도 너무 많았고, Deal을 기막히게 전환시킨 요소가 내가 아닌 고객의 상황인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내가 영업을 해야 하는 대상이 너무나도 경쟁사와 가까워 아무리 노력해도 만나주지 않던 상황에 갑자기 새로운 고객의 상급자(내 사례에서는 병원장)가 왔다.  나는 당장 이 상급자로 영업대상을 전환했고 결국 영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만약 이 병원장이 새로 오지 않았으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팔던 제품은 기계였기 때문에 항상 Demo라는 것을 했다.  모든 기계는 장점이 있고, 그 장점이 잘 발휘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따라서 Demo기간 동안 내 장비의 장점이 잘 발휘될 수 있는 사용 케이스가 들어온다면 고객의 선호도는 급속도로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타이밍 덕을 본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아마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내가 낸 실적을 오로지 그냥 "잘 하는 영업사원" 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것이 일부는 맞다.  그러나 더 미시적으로 보면 분명 운의 영향이 있었다.




굳이 겸손해지려는 것은 아닌데, 올해 우리회사의 실적도 운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작년 나는 매우 위험한 베팅을 하나 해야만 했다.  기업 보안상 상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결정은 결과적으로는 다른 회사와의 경쟁에서 매우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실적으로 이어졌다.


좋게 포장하면 선견지명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시뮬레이션과 분석을 거치기도 했으니 그냥 도박을 했다고 생각하기는 싫다.

하지만 아무리 분석을 하고 결정을 했어도 충분히 반대적인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 자체가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전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써 좋은 성과를 냈듯이, 올해 우리회사에서도 높은 기여를 한 영업사원들이 몇 있다.  이 직원들 중 일부는 내가 면접을 하여 뽑았고, 일부는 내가 들어오기 전 입사했다.

이런 능력있는 인재들이 우리회사에 면접보게 된 것이 과연 우리회사의 실력일까?

아니다.  이것은 운에 가깝다.  혹자는 이런 인재들이 입사했을 때 그들을 우리 회사에서 나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실력이라고 하지만 내가 회사를 경영하다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회사가 싫어서 나가기 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 싫어서 나간다.  그 인재에게 적합한 조직으로 배속된 것 역시 운이라고 볼 수 있다.




회사의 성공은 운으로 만들어질까 역량으로 만들어질까?

이 글의 대부분은 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회사의 경영을 베팅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는 "요소분리" 작업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올해 우리의 성공에서 "운"이라고 생각한 부분을 삭제한 후 어떻게 되었을지 결과를 예상해보고, 운만 남겨두고 우리의 노력을 삭제한 후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매우 명쾌한 결론이 나온다.

우리의 노력(경영자를 포함한 모든 임직원들의 고민과 노력)이 삭제된 상황에서는 성공할 확율은 0%에 수렴한다.  내가 영업사원이었을 때의 상황, 그리고 지금 경영자로써의 상황에 모두 대입해도 그때처럼 치열하게 일 하지 않았으면 그 결과를 득했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하지만 결과물은 분명 운의 영향을 받았다.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으면 안되었을 일은 수없이 많다.


이것을 확률 관점에서 보자.

결과는 실력(또는노력) x 운 에 의해 결정된다.

운은 Control할 수 없다. 그러나 실력은 관리가 가능하다.

내가 실력을 80%로 유지할 수 있다면 운의 %가 높을 때 좋은 성과를, 운의 %가 낮을 때에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만들겠지만 (80%*80%는 64%, 80%*10%는 8%가 나온다), 내 실력이 20%면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다만 이 수식은 숨겨져 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은 한 회사의 성공이 80%*30%인지 30%*80%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단기적으로 고용된 CEO라면 최근 만들어낸 놀라운 실적들을 갖고 내 중심으로 성공요인 분석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늘 냉정하게 보려고 하기 때문에, 올해 역시 운이라는 요소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음을 쿨하게 인정한다.


사업의 성공에 운은 절대적으로 영향을 준다.

그러나 경영자는 운에 맡겨서는 안된다.


쉽게 말해서 경영자는 날씨의 무서움을 알고(운의 영향을 알고) 동시에 여러 날씨 조건에서도 자랄 수 있는 작물을 개발해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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