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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훈 Aceit Aug 20. 2021

믿음의 의미

믿은 바가 꼭 사실이어야만 좋은 것은 아니겠지

"우리는 보통 우리가 믿는 바가 진실이기를 바란다."


가장 보편적인 예는 사랑일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방이 "내가 믿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다른 익숙한  정치에서 찾을  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정치인이 "내가 믿는 그런 철학을 갖고 수행할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밖에도 종교, 커뮤니티  생각해볼  있는 예는   없다.

우리가 정말 그렇게 믿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믿음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것인지는 햇갈리지만 늘 그렇게 산다.  "어떠한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우리 어머니는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  

그것도 매우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이라서 그 암을 갖고있는 환자와 보호자가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서 글을 읽고나면 앉은 자리에 살짝 걸친 다리 힘 마저 빠져버릴 정도로 부정적인 기운에 가득찼다.

그 때 나는 느꼈다.  분명 커뮤니티에서 읽은 글의 95%는 좋지 못한 결과를 맞이한 사람들이 적은 글이었는데, 내가 스마트폰에 저장한 글은 나머지 5%가 쓴 글들이었다.  그 글들은 평균 생존기간보다 오래 산 사람들이 쓴 글이었고 나는 그 글들만 집중적으로 정독했었다.  간혹 머리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하는 통계 따위는 그럴 때마다 머리속의 저 구석 뒤로 밀어넣은 상태였다.


이후 내가 취한 행동들 역시 별로 이성적이지는 못했다.  긍정적인 5%의 글에서 나온 암에 좋다는 재료들을 구매했고, 그 환자들이 먹었다는 자연식품들만 먹기를 어머니에게 강요했다.  분명 정규분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돌아가신 분 들도 그런 재료들을 먹었다는 글을 보았었는데, 즉 통계적으로 통상 이용하는 P-Value를 계산해 보았으면 전혀 유의미함을 찾을 수 없었을텐데 이미 내 믿음은 내 행동을 통제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보다 나에게 더 솔직할 수 있다.  당시 나는 그렇게 믿는다기 보다, 내가 믿고자 하는 바가 진실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회사를 경영하는 기업가다.  이론적으로 경영자는 매번 확률적 기대값이 높은 선택을 해야한다."

그 말은 내가 어머니의 병을 바라보던 것과 같은 시각으로 경영을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믿는 바가 확률이 낮다면 나는 그것을 무시해야 한다.  그리고 확률이 높은 선택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경영학에서 존경받는 경영인들은 높은 확률의 선택에만 베팅을 해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산업에서 이름을 남긴 경영자들은 항상 낮은 확률의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들이었다.  말을 해서 뭐하겠는가?  우리가 손 꼽는 스티브잡스, 제프 베조스, 일론머스크, 정주영 등 모두 높은 확률의 게임을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너무 웃기는 사실이다.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지식을 전달하는 경영학 교육을 하면서 성공의 아이콘들은 늘 이에 반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는 이들이 성공한 이유를 찾기위해 그들의 긍정적인 점들만 찾아내서 적절한 이유를 붙인다.  하지만 분명 이렇게 과감한 베팅을 해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경영자가 더 많을 것이다.

비유하면 사회는 동일한 방법을 취했어도 돌아가신 커뮤니티의 95%는 무시하고 살아남은 5%가 취한 행동에만 집중했던 그 때의 나와 동일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잠깐 생각을 해 본다.




만약 내가 나머지 95%의 글들에 집중했으면 무엇이 더 좋아졌을까...............?

달리 말해 내가 조금 더 현실적이었다면 무엇이 더 좋아졌을까..............?



안타깝게도 어머니의 사례는 기적의 사례는 되지 못했지만 나는 어머니가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갖고 어머니에게 좋을 것을 드리고, 엔돌핀을 위해 어머니를 웃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공기 좋은 곳으로 모시러 다니고 했던 시간들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렇게 믿기 보다는 내 믿음이 맞기를 바라고 행동했던 것이지만, 그 행동은 내가 이후 가질 수 있는 후회를 덜어주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가 믿은 바가 꼭 사실이어야만 좋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믿은대로 행동하는 것 자체가 인생 전반에 더 높은 만족감을 줄 수 있다. 설사 그 믿음이 틀렸더라도.



사회물을 점점 먹으며 "생일" 을 점점 덜 특별하게 보내고 있다.

 

예전과 같은 생일파티나 모임도 없고, 그냥 평소와 같이 출근하고 퇴근하여 하루를 마감한다.

이번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자정까지 끝내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고 컴퓨터를 끈 후 피곤한 상태로 생일을 맞이한 후 잠에 들었다.


잠에 들기 전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 예전 사진들을 보고 자서 그런지 생일에 꾼 꿈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꿈에서 암으로 의식없이 누워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눈을 뜨고 일어나시더니 내 이름을 부르고 안아주셨다.

꿈에서 어머니를 안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꿈에서 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분명 내가 나을꺼라고 이야기했자나!"

그리고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시고 나를 안아주며 이야기하셨다.

"그래 승훈아, 니가 말한대로 엄마가 나았어!  엄마 이제 나았어!"


아침에 일어난 후 피식 웃으며 생일이라 내가 올해 돌아가신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나했다.

그런데 생일날 먼 공장에서 미팅을 마친 후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어머니가 생일이라서 꿈에 나타나셨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내가 참 마음속으로 염원했던 장면이구나 싶었다.



다시 글의 주제로 돌아와서 내가 하고 싶었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믿음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믿음을 위해 사는 것 자체,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가?


Written by 신승훈

20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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