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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하루 Aug 04. 2023

관찰

말 많은 말띠 아이의 말말말

아이 문화센터 다녀오는 길, 바람도 너무 불고 아이가 너무너무 졸려 해서 택시를 타고 왔다. 

열심히 달리던 택시가 복사골 문화센터 앞에서 신호등에 걸려서 잠시 섰다.

건물 벽에는 ‘어린이 도서관’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었고 기차가 그려져 있었다.

기차에 푹 빠져있는 세진이, 당연히 흥분했고, 그러면서 하는 말. 

 

"엄마. 기차가 안보여. 나무가 가렸어"

“나무는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기차가 안보여도 조금만 참아.”.


"나무는 움직일 수 있어"

“아니야. 나무는 못 움직여.”

 

"아니야 엄마. 택시가 움직이면 나무도 움직여."


                               2005년 어느날의 기록



아이가 말을 시작하고 폭발적으로 말이 늘어가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관찰했던 내용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서 말을 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상황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본인의 방식으로 표현을 했다. 


빨래가 끝나면 나오는 음악소리를 듣고 “엄마. 빨래통이 노래해요.” 라고 말하기도 하고. 

걷는데 유난히 발소리가 커서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고 있었더니 “엄마. 신발이 노래하는 거야”  이렇게 대꾸하기도 했다.  


주변을 끊임없이 둘러보고, 들여다보고,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했다. 일일이 대답해줘야 하는 난, 진짜 힘들었지만 아이에게는 그때만큼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시기가 또 있을까. 


점점 커가면서 아이는 관심의 폭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로지 관심사는 핸드폰, 게임, 그리고 친구들. 성장과정이라고 하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줄었고, 아이는 내 말을 점점 듣지 않았고, 나 역시 아이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갔다. 아이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3학년 봄, 여수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오동도에 잠시 들어갔었다. 난 혼자 뒤쳐져서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녔고 아이도, 아이아빠도 본인들의 관심사를 찾아 각자 움직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아이가 다다다~ 달려오면서 손을 쑥 내밀었다.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꽃” 


아이의 손바닥 위에는 빨간 동백 한송이가 있었다. 이미 동백시기가 지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 꽃들 중에 가장 멀쩡하고 예쁜 꽃을 주워서 가져다 준 아이. 이 아이가 내가 좋아하는 꽃을 알고 있었구나. 한 번도 말 한적 없는데.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사촌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아이가 선물이라며 불쑥 무언가를 내밀었다. 포장을 풀어보니 빨간색 몰스킨 노트 한권. 선물을 나에게 건낸 후 아이는 계속 내 앞에서 내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내가 환하게 웃으면서 진짜 갖고 싶었던 거라고 말하니 아이도 표정이 풀어지면서 


“안그래도 면세점에서 만년필이랑, 노트 중에서 엄청 고민했잖아. 엄마가 둘다 좋아할텐데 뭘 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러면서 계속 종알종알종알..  


아이는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어떨 때 기분 좋아하고 어떨 때 화를 내는지. 단지 표현을 하지 않은 것이고, 들어주지 않으니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 뿐. 아이가 그런 시기라고, 아이가 변해서 나도 어쩔 수 없다고 계속 이야기 하며 스스로를 납득시켰었던 건 나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했으니까. 더 이상 어릴 때와 같지 않다고, 커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게 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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