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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하루 Apr 02. 2024

[어느 날 한권의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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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권의 책을 읽었다] 새로운 인생 / 오르한 파묵.


어느 날 한권의 책을 읽었다. 책꽂이 한 구석에 꽂혀 있던, 언제, 누가 샀는지도 모르는 처음보는 책이었다. 책장정리를 하다가 발견했고, 낯선 책이라 호기심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다. 햇빛이 닿은 부분은 이미 색이 누렇게 변해버렸지만, 책 자체는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듯 깨끗했다.


한 장씩 넘기며 읽어가다가 깜짝 놀랐다. 어디선가 많이 본 내용, 왠지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보는 책인데 내용은 왜 낯이 익지? 읽었던 건데 잊고 있었던가? 읽었던 책을, 내용을 기억 못하고 다시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마치 책 속의 주인공이 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내 삶을 들여다보고 옮겨 써 둔 것 같았다. 주인공이 나라고 생각하니 결말이 궁금했다. 빨리 결말을 보고 싶어 빠른 속도로 읽어내기 시작했다.

태어난 순간, 자라면서 겪었던 일들, 사춘기의 방황을 지나 성인이 될 때까지. 오래전 찍어 둔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한 장면 한 장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잊고 있던 부분이 다시 생각나기도 했고, 기억하고 있던 것은 새롭게 그때의 기분이 함께 떠올랐다. 


신나게 읽고 있는데 갑자기 비어 있는 페이지가 나타났다. 

‘아니, 여기서 끊는다고? 왜 다음 내용은 없어? 누가 찢어갔나?’ 

온갖 추측을 해보고, 혹시 연결되는 다음책이 있는지도 열심히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마지막 내용으로 돌아가봤다. 정확히, 현재의 내 이야기까지 쓰여 있었다. 


그렇구나. 이 책은 내가 보내는, 살아내는 시간만큼 기록이 되는구나. 누가 기록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의 나의 시간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아직 보내지 않은, 남아있는 시간들도 그대로 남겨지겠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든 나의 시간들을 허투루 보낸 건 아니지만, 충분히 푹 빠져서 읽을 만큼의 내용이었지만, 이제 채워져 갈 나머지 페이지들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나에게 달려있다니.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재미있게 보내야 할 명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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