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건짐_시즌2
눈을 뜨자마자 양치질을 하고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누운채로, 눈만 뜬채로 할까 말까 고민을 시작하면 끝이 없을거라는 걸 알기에, 생각하지 않고 바로 몸을 움직였다. 매트를 깔고 유튜브 영상의 재생버튼을 눌렀다. 길지도 않은 5분, 나에게는 50분 같이 느껴지던 그 시간. 제대로 되는 동작은 없었고 어디에 자극이 가야하는지,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해냈다. 챌린지라는 환경 안에 나를 넣은 것은 내 필요에 의해서였으니까. 누구의 강요도 아니었으니까. 해내야 했고 해내고 싶었다.
1년 넘게 몸상태가 별로였다. 심하게 아픈건 아니었지만 계속 골골거렸다. 아프니 안움직이고, 안움직이니 체력은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지니 외출을 줄이게되고, 그러다보니 마음까지 어둡고 우울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무기력하고 아픈채로 이렇게 시간을 보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몸과 마음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두명의 친구가 동시에 영화를 추천해줬다. 같은 영화. ‘맵고 뜨겁게’. 생소한 대만영화였다. 갑자기 동시에, 두명이 극찬을 하니 궁금해졌다. 영화를 즐기는 편이 아님에도, 낯선 영화임에도 찾아서 봤던걸 보면, 초반은 너무도 지루했지만 끝까지 버티고 본 것을 보면 그 영화가 나에게 찾아온게 아닐까 싶었다. 시기 적절하게. “나도 한번쯤은 나를 이겨보고 싶다” 라는 주인공의 한마디가 마음에 와서 박혔다. 나도, 나를 이겨보고 싶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해야하는건 알지만 하기싫고 힘들어서 미루고 또 미뤄두었던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혼자 하다 말 것 같아서 챌린지라는 환경에 나를 집어넣었다.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까지. 매일 아침 일어나 하기 싫은 것부터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이걸 하고나면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유난히 더웠던 8월, 땀을 쏟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한달을 버텼다. 조금 더 해보고 싶어졌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나를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어느날 아침,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눈뜨자마자 운동복을 갈아입고 운동을 시작했다. 계속 반복해오던 동작이 갑자기 너무 쉬워졌다. 아예 되지 않던 동작이 무리없이 되었다. 무슨일이지?조금 더 동작과 설명에 집중하니 자극이 와야 하는 지점에 자극이 느껴졌고 부들부들 떨리던 팔다리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재미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력운동이 재미있어지다니. ‘힘들다’가 아니라 ‘재밌다’라니. 제대로 운동을 해서인지 근육통은 더 심해졌고, 온몸이 아파 걷기도 힘들고 팔을 들어올릴수도 없었지만 몸과 마음은 그 어느때보다 가벼웠다. 5분도 길어서 시계만 들여다보던 내가 이제 30분정도는 웃으면서 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시간은, 노력은,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집어넣은만큼 출력을 해주는구나. 평생 가지고갈 습관 목록에 이렇게 또 재미있는 한가지가 추가되었다.
삶은 참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전혀 취향이 아닌 영화 속에서 듣게 된 ‘나도 한번쯤은 나를 이겨보고 싶다’라는 이 한마디가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시기에 불쑥. 뜬금없이. 뭐든 때가 있는 걸까. 그동안은 그렇게나 운동을 피해다녔는데 갑자기 이렇게 재미를 느끼게 되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오랜 슬럼프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