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에 시작하는 자기혁명
부끄럽지만 나는 읽어본 고전이 거의 없다. 이 세상엔 책은 물론이고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나니 고전을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고전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정지우 작가의 《고전에 기대는 시간》을 읽으면서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그런데 이 고민에 대한 치열한 생각들이 고전에도 담겨있었다. 때로는 고전에 담긴 해답의 실마리가 극단적이거나 이상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마냥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작가마다 깊이 파냈던 생각의 흔적이 그들만의 언어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각이 극단적 혹은 이상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내 안에 있는 외부의 언어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온전히 내가 느끼고 생각한대로 살지 못한다. 외부의 언어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기보단 해야 할 것 같은 것들을 강요한다. 그렇게 살아왔단 것을 《고전에 기대는 시간》에 담긴 열 두 편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다짐했다. 나의 생각과 언어로 나를 정의하며 살아가겠다고.
책의 마지막 챕터 <진실을 상상하는 언어-잉게보르크 바흐만 「삼십세」>는 나에게 진정한 자기혁명의 길을 열게 해주었다. 자기혁명은 진실한 나를 마주하고 나만의 언어로 삶을 시작하는 과정이다. 이 챕터에서는 [서른에 시작하는 혁명], [자기만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 [내 손에 남은 진실의 조각들] 이라는 3개의 소제목에 따라 「삼십세」를 풀어간다. 그리고 이 고전을 통해 작가의 삶을 해석한다. 이 해석의 과정은 나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었다. 아래는 내가 책을 다 읽은 후 마지막 챕터의 흐름에 따라 나의 삶을 다시 재정의 하는 과정이다.
[서른에 시작하는 혁명]
보통 주변에서 서른이 되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거나 혹은 결혼이나 이혼 등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30세’라는 말은 무언가를 깨닫고선 큰 결심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때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 주인공들 역시 30세이다. 그들도 이와 같이 새로운 결심과 자기혁명을 앞두고 있는 인물들이다. 나 역시 외부의 언어를 빌리자면 아홉수라는 나이에 서있다. 이 곳에서 나는 지난 20대의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20대를 보내면서 온전한 내 생각보다는 외부에서 주어진 생각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 훨씬 많았다.
나는 줄곧 나의 브랜드 혹은 채널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외부의 언어는 늘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라고 강요했다. 또 누구나 그런 꿈을 갖고 있지만 모두가 참고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줄 알고 참아왔다. 그랬던 지난 모습들을 떠올려보니 괴로웠다. 후회와 자책감,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또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막막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다시 그 꿈에 다가가기로 마음 먹었다. 스물 아홉에 시작하는 자기 혁명이다.
[자기만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
자기 혁명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는 것이다. 나만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은 나를 두렵게 만들던 외부의 언어를 정리하고 나의 언어로 다시 채워 넣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 관심 있는 분야, 주로 하는 생각을 온전히 나의 언어로 다시 정리해본다. 그리고 이것들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언어만이 매일 옳고 늘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겠지만 외부의 언어를 따라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을거라는 확신과 믿음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 어느 것도 100% 옳은 것은 없다. 내 것이 옳다고 믿고 행할 뿐이다.
[내 손에 남은 진실의 조각들]
지난날을 떠올리다보면 사실로 존재하는 나의 삶들을 어떤 언어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어려움이 생긴다. 외부의 언어와 나의 언어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내 삶의 진실들이 외부의 언어로는 볼품없거나 초라한 것으로 읽힐 때가 있다. 나에겐 애매한 회사 경력, 뾰족하지 않은 재능, 적은 연봉 등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들은 매순간 진실하려고 했던 나의 도전들 때문이었다. 세상이 옳다고만 한 길을 걸어가면서 ‘이상함’을 느낄 때마다 하던 일을 스탑했고, 나를 설레게 했던 일들에 새롭게 도전해왔다. 스물 아홉이 되어 그러한 조각들을 다시 모아보았다. 나를 설레게 했던 것들, 나를 도전으로 이끌었던 것들. 대단하진 않아도 무언가 만들어 낼 재료로는 충분했다. 나는 이 조각들을 합치고 깎아내어 나의 채널을, 나의 콘텐츠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이 책엔 이런 말이 나온다. “누군가에게 진실이었던 것은 나에게도 진실이 될 수 있다.” 고전의 이야기가 정지우 작가의 삶에서도 진실이었고, 또 그의 삶은 내게도 진실이었다. 나는 나의 언어가 충분치 못해 나의 삶을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지우 작가는 내가 마주해야 할 진실을 그의 언어로 정확히 말해주었다. 그 언어를 만난 것은 감동이었고 안도감을 느끼게 해줬다. 정지우 작가가 진실을 만나게 해주었던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진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이들을 위하여 치열하게 생각하고 그리고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