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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J K직장녀 May 12. 2023

낯설고 편안한 밤을 시작하다

나의 애도일지 1편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하고 직장에서의 삶이 안정되었을 즘이었던가 그제서야 우리의 삶이 조금 많이 어긋낫을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직장내에서의 관계로 인해 회사에서 복지 지원으로 시작한 심리 상담이 화두가 되었던 걸까? 그 동안은 외면해왔던 아주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곤 했다. 우리는 신혼에서 결혼 생활의 1~2년까지 있었던 지난하고 치열한 다툼 이후 서로의 발작버튼을 알아서 피하기에 이 시점엔 표면적인 다툼과 문제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다툼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잠잠하게 서로를 말 없이 배려하였지만 하여 지나치게 건조하고 외로운 일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이 문제였고 내 가슴은 항상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가득했으며 함께 하는 것이 더 외롭다고도 생각했다. 싸울때면 서로 몇 번 내뱉고 되감기를 반복했던 말하지 못하는 단어를 나는 아주 오랜시간 품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이 시작되던 즈음, 그 날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그와 대화를 하는 도중, 보통 사람이 누가 나를 싫어하면 그게 자연히 느껴지는 것처럼 그가 굉장히 나를 귀찮아하고 경멸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길로 차분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오빠 앉아봐. 오빠가 나를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심하게는 경멸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맞지?”


그는 처음으로 긍정했다. 왜 지난 5년 동안은 말하지 않았을까? 그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남들이 말하는 평범하게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부부생활을 지속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걸까? 오래 생각한 만큼 그 시간 나의 생각의 흐름과 결정은 굉장히 이성적이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응, 그런 것 같더라. 아주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어. 그치만 왠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우리 1년때 별거 하고서도 많이 힘들었잖아…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는 없으니 내일부터 별거를 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이후의 대화는 1년 이후부터 계속되어 온 문제들, 그가 나를 마음으로 용서하지 못하는 부분, 그리하여 나에게 생긴 문제들, 집안일들과 집안대소사를 나혼자 모두 챙기는 문제, 섹스 리스, 미래에 대한 가치관 차이, 기타 등등…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쌓이고 쌓여서 가슴 속에 억울함과 홧병이 된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절대 타협할 수 없고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고, 이 문제들과 함께 우리는 미래를 논할 수도 함께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그는 그가 여태 이혼하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가 딱 두가지라고 했다. 첫번째는, 홀어머니 걱정. 두번째는, 이혼하면 내가 당신보다 분명히 더 잘 살 것이라서. 굉장히 치졸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나는 오히려 처음으로 이런 그의 솔직한 이야기에 그 동안의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어느정도의 납득이 되었다.


“오빠, 오빠는 나같은 여자 말고 오빠 벌어오는 급여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런 오빠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자식 낳아서 잘 키워줄 한국적인 현모양처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나는 멘탈 육체 건강하고 나랑 같이 으쌰으쌰해서 열심히 재미나게 살 사람 만날게. 그게 맞을 것 같아. 진심으로 당신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도 동의했다. 그리고 난 진심이었다. 정말로 살면서 그한테는 그런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내게 오랜 시간 구애할 때 그는 반대에 끌렸고, 지금의 그는 결혼을 밀어부치는 바람에 연애 기간이 짧아 잘 알지 못한 자신 인생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 누구에게도 특별한 귀책사유는 없었다. 다들 말하는 ‘가치관 차이’ 그리고 웃기지만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말할수도 혹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난 잘 헤어지고 싶었다. 그가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는 점에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으며, 그래서 선택한 내가 살아 온 삶과 결혼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이혼’을 전제로 별거를 하고 서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마무리를 ‘원만’하게 짓기 위해 부부상담을 제안했다. 상담은 내가 11월부터 받아 온 선생님과 함께하기로 했다. 그도 동의했다. 지난 4년간 나는 여러번 부부상담을 하자고 했었는데, 그는 한사코 거절했었다. 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고, 믿지도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정말 마지막이라서 느꼈던 건지, 이제 우리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아서 였던 건지, 최선을 다해보고자 하는 것 같아서 내심 고맙기도 하고 그동안 노력했다면 다른 결론이 있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에 쓸쓸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이유에서 한번 더 노력해보고자 동의를 하였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별거와 이후의 과정을 결정하기까지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으며 그저 담담하게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결정하였다. 현실적으로 그가 숙소를 구해서 나가 직장을 다니는 편이 편하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음 날인 12월 9일, 그는 단촐하게 나의 무인양품 기내용 캐리어에 짐을 꾸려 나갔다. 그리고 퇴근 후 여느때와는 달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낯선 밤의 시작이었으나, 오랜 시간 혼자 살아온 내가 그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킹사이즈 침대 중간에 ㄷ자로 쿠션 벽을 만들어 놓고 혼자 자는 것이, 누군가가 있었던 집에 혼자 있고 혼자 먹고 혼자 티비를 보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오히려 함께할 때보다도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게 나의 별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 시작의 기분은 오래 생각한 만큼 확신에 찬 마음과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마음 그리고 자유로움 홀가분함 등으로 기억한다. 이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우리는 계속 이야기할 것이다. 이혼이라는 것이 인간의 인생에서 겪는 고통 중 가장 상위권에 들어가는 고통 중 하나라고 하는데 실제로 이후 이어질 고통들과 혼란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난 오늘 기록한 저 대화를 시작하지 않았으리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도리어 지금은 편안하게 여행지에서 이 애도 기간의 모든 시간을 곱씹으며 모든 순간 순간의 인생과 관계와 사랑, 가족이라는 관념속에서 배우고 깨우친 것을 글로 풀어내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혀있는 이런 내가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내가 살고자 하는 생에 대한 열망과 자기애로 용기를 냈기에 시작을 했으며, 또 회피하지 않고 그 고통 속에 침잠하여 견뎌내고 멱살잡고 끌어와 마침내 내 스스로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고, 내 마음 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날 정도이니 어느 정도 이 모든 애도 기간을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그런 내 결혼 생활과 마무리에 대한 애도이자 헌사이며 애도를 끝낼 수 있는 마무리가 되길 바라는 글이며, 이 글이 완성될 즈음에는 내가 다시 편안함을 넘어서 행복해 질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라며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마음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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