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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Mar 17. 2020

아프지 말고

엄마와의 통화는 꼭 건강 당부로 끝이 났다

서울에 작은 딸을 혼자 똑 떼어놓은 겨울부터 엄마는 통화를 건강 당부로 단단히 여몄벼릴 없을 땐 '밥 잘 챙겨 먹고', 무더운 날엔 '배는 따시게 자고', 아플 땐 '약 챙겨 먹고', 바람이 차면 '마스크 끼고 다니고'.

그의 마무리 멘트를 들을 때면 애틋하고 송구스러워진다. 정작 나란 인간은 엄마가 봤으면 '뽐내다 얼어 죽을' 차림으로 대충 집을 나서선 뒤집어지게 술이나 마시곤 하는데. 엄마가 소중히 여기는 걸 내가 막 쓰는 것 같아서 전화를 끊고는 괜시리 민망하다. 그의 보살핌을 받던 시절에는 아파서 고생한 적 없었다.

 

연중행사로 한두 번 찾아오던 감기는 엄마의 간호와 주사면 룻저녁만에 아났다. 그는 엎어지고 찢어 생채기를 무심하고 살뜰하게 보살펴 기어코 새살을 틔워냈다.
몸이 슬금슬금 비실대기 시작한 건 혼자산 지 2년이 되던 즈음, 감기가 3일이 되도록 가시지 않던 날에 전화기를 붙잡고 푸념을 늘어놨다.
'엄마, 진짜 불편해 죽겠다! 감기가 안 떨어진다니까!'
그럼 에 있던 비실이 친구들은 복에 겨웠다는 눈초리를 흘기고.

지금의 나도 몇 년 전의 본인에게 같은 눈초리를 보낸다. 감기라는 게 어디 하루 이틀 만에 가실 수 있는 거던가. 쌩쌩하던 몸이 가물하다. 통 없던 소화불량이나 근육통, 자잘한 몸살과 불면증이 차례로 왔다. 오.. 이게 두통이라는 건가. 이런 게 생리통이군. 어디 한쪽이 불편할 때마다 엄마의 번호를 눌렀다. 이럴 땐 어쩔까. 나 저런데 뭐 먹어야 나을까. 죽겠다고 슬쩍 투정을 얹으며.


정작 죽을 것 같이 아프거나 힘들 때는 전화하지 못했다. 건강이 살짝 모자라서 어리광 피울 수 있을 정도 일 때만 투정을 부렸다. 한겨울은 무사히 넘기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목감기가 따라붙었다. 생사의 문제는 아니었기에 엄마에게 칭얼거리기를 머릿속 투두 리스트에 넣어뒀는데, 엄마가 독감에 걸렸다.

어, 다혜야. 힘없는 음성이 수화기를 넘었다. 내가 아이고.. 어떡해.. 어쩌다.. 하면, 엄마는 한 목소리로 뭘, 별 거 아니다, 하셨다.
건넨다는 말이 고작 어떡해라니. 무한 걱정만 목구멍을 달짝였다. 엄마는 나보다 덜 무력했을까? 완고한 사람이니까. 불덩이 같은 어린 나도 살려내곤 했으니까. 

진심 어린 걱정은 애틋한 무력을 동반한다. 힘아리 없고 단단한 다정. 그걸 삼키는지도 모른 채 때마다 복용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당신은 언제까지고 단단할 줄 알고.


통화의 마지막 멘트는 내가 했다. '푹 쉬고. 죽 꼭 챙겨 먹어요.' 엄마는 죽 해줄 사람도 없댄다. 나 죽 할 줄 아는데. 혼자 사는 나는 그렇다 쳐도 엄마는 왜 죽 쒀줄 사람이 없어. 속상함에 찔끔 울었다.

비죽이는 입과 김 나는 죽은 전화로 실어다 드리지 못했다. 다행이고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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