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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Feb 23. 2020

아무거나 먹기에는 세상에 맛있는 것이 너무 많다

오늘은 무엇을 먹어 볼까?

  5년간 해외에 살면서 다쳐서 병원에 간 적은 있지만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은 없었다. 그 비결은 현지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만든 삼시 세 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식재료와 조리법을 사용하는 다른 나라에서 ‘아무거나’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아쉽다.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아서 재료만 신선하면 우선 시도를 해보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고수'는 일부러 찾아먹진 않아도 들어있으면 그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 미리 빼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채소는 괜찮지만 고기 재료에는 다소 민감한 편인데 한국에서도 고기를 먹으면 살코기만 먹고 내장이나 특수부위들은 안 먹기 때문에 메뉴판에서 재료를 우선 확인하는 편이다. 다져지거나 갈려있는 고기도 잘 안 먹는다. 조리법은 구운 것이나 튀긴 것을 좋아하고 삶거나 물에 빠진 상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옛 어른들 말씀에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야 어디 가서 밥도 잘 얻어먹을 수 있다는데 잘 먹지 않는 것을 쓰고 보니 이번 생에 밥 얻어먹고 다니기엔 그른 것 같다. 


  그래도 식성을 뛰어넘는 도전정신이 있기에 늘 가는 식당, 같은 메뉴보다는 새로운 식당, 나만의 맛집을 찾아다닌다. 누가  맛집을 추천해주어서 맛있는 것을 먹는 것보다 우연히 찾아낸 맛집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어떤 음식이 나올까 기대하고 나의 기대를 뛰어넘는 음식이 나왔을 때의 희열은 단순히 음식이 맛있을 때 느낄 수 있는 미각의 기쁨을 뛰어넘는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너무 고심하지 않는 편이다. 운 좋게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에는 도무지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맛있어야 한다. 실패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현지인이 많이 가는 곳을 발견하면 구글 지도에 기록을 해둔다. 그리고 그 집을 찾아가서 가장 잘 팔리는 메뉴를 시킨다. 알고 있는 맛있는 맛을 두고 새로운 탐험을 나선 나에게 주는 상이다.   


  베트남의 요리는 마늘, 고추, 파를 많이 쓰다 보니 한국인의 입맛에 대체로 잘 맞는다. 1년에 삼모작이 가능한 나라인 만큼 쌀로 만든 요리가 한국보다도 더 풍부하다. 쌀가루를 이용해서 빵도 만들고, 국수도 만들고, 종이 같은 얇은 피도 만들어서 소화도 잘 되고 부드럽다. 밥을 ‘껌(Com)’이라고 부르는데 동남아 지역의 얇고 길쭉한 쌀로 짓는다. 이 밥은 그냥 먹는 것보다는 볶음밥으로 만드는 것이 더 맛있다. 한국에서도 많이 먹는 쌀국수는 주로 아침으로 많이 먹는데 납작하고 넓은 면을 ‘퍼(Pho)’라고 한다. 고깃국을 즐겨먹지 않는 나도 ‘퍼’는 종종 찾게 되는데 아침에 만든 생면으로 끓인 ‘퍼’는 베트남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조식이다. 라임즙이나 남방 고추를 넣어서 새콤 매콤하게 만들면 얼큰해서 해장으로도 좋다. 더울 때는 국물이 없는 비빔국수 형태의 ‘분보남보(Bun Bo Nam Bo)’나 분팃느엉(Bun Thit Nuong)’도 즐겨 먹었다. 하지만 최고의 쌀국수는 뭐니 뭐니 해도 ‘분짜(Bun Cha)’이다. ‘분(Bun)’은 소면처럼 얇은 기둥 형태의 쌀국수인데 베트남의 전통 소스인 ‘느억맘(Nuoc mam)’과 그린 파파야를 넣어 끓인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국물과 숯불에서 구운 양념돼지고기, 향긋한 허브를 함께 싸서 먹는 음식이다. 아직 이 ‘분짜’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 베트남 음식 중에서 가장 그리운 음식이 바로 ‘분짜’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공식적으로 찾은 현지 음식점이 바로 ‘분짜’ 집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키는 음식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대만 대왕 카스텔라의 시대가 지나가고 대만식 샌드위치, 대만식 흑당 밀크티가 줄 서서 먹을 만큼 인기가 있다고 들었다. 당 떨어진 느낌이 들 때 흑당 밀크티 한 모금이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달콤해서 중독성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대만에서 즐겨 마시는 음료는 과일 차이다. 한국에서 대만으로 손님이 오면 꼭 소개하는 음료는 패션프룻티(百香雙Q果-패션프룻생과일+우롱차+코코넛젤리+하얀색타피오카)인데 패션 프룻의 새콤함과 코코넛젤리의 오독오독함, 타피오카의 쫀쫀한 식감이 어우러진 맛이다. 날씨가 더워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때 패션프룻티를 마시면 도망간 식욕이 돌아온다. 


  대만은 중국에서 유명한 음식들을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중국의 면적이 넓다 보니 기후도 다양하고 그에 따른 식재료나 조리법도 무궁무진하다. 그런 식문화가 대만에 고스란히 있기 때문에 미식가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아침 식당이다. 아침 식당에서 파는 메뉴는 주로 ‘딴빙(蛋餅)-대만식 부침개’이나 ‘탕빠오(湯包)-동그란 왕만두’이다. ‘딴빙’은 겉의 반죽은 쫄깃쫄깃하고 안에 들어갈 재료는 직접 고를 수 있는데 옥수수, 바질, 고구마, 김치, 치즈, 베이컨, 참치, 소시지, 닭고기, 돼지고기 가루 등 처음 가면 무엇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선택지가 많다. 2개 이상을 골라도 되니 조합을 하면 수십 가지의 메뉴가 있는 셈이다. 갓 구운 바삭한 부침개 속에 자기가 직접 고른 좋아하는 재료가 들어 있으니 누구라도 만족시킬 수 있는 음식이다. 거기에 달콤한 ‘홍차’나 ‘또우장(豆漿)-콩 음료’을 곁들이면 건강한 아침식사가 된다. 처음 대만에 왔을 때 맛있는 ‘딴빙’ 집을 찾으려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집과 직장 주변의 ‘딴빙’ 집 탐험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김밥집이 무수히 많지만 가게마다 재료가 조금씩 다르고 맛이 다르듯 ‘딴빙’도 비슷한 것 같지만 가게마다 같은 이름, 다른 음식의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대만 음식은 선택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다. 어디를 가든지 개인의 음식 취향이 존중받을 수 있다. 2000원짜리 아침 식사가 이 정도인데,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 식당은 상상 그 이상이다. 저녁 메뉴를 주문하는 것은 행복한 선택의 연속이다. 대만 사람들이 즐겨 먹는 야식인 ‘옌쑤지(鹽酥雞)’나 ‘루웨이(滷味)’는 아예 손님에게 바구니를 주고 투명한 냉장고 안에 있는 손질된 재료를 담게 한다. 손님이 바구니에 고른 것을 ‘옌쑤지’는 튀겨 주고 ‘루웨이’는 짭조름한 탕에 넣어 데쳐 준다. 언제 먹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들어간 모든 재료가 다 내 집게를 거쳐간 것이다. 마치 스스로가 요리에 동참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재미있는 음식들이다.         


  짧은 여행에서 한 끼 한 끼의 중요함과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블로그, 카페에서 맛집이라고 소개한 집에 1시간 이상 줄을 서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재료나 방문한 나라의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을 찾아보고 시도해 보는 것도 나만의 맛집을 찾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맛집 탐방도 좋지만 재료 탐방을 권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식재료에 도전해보고 새로운 맛에 도전해보면 좋겠다. 더운 거리를 걷다 보니 지쳐서 그냥 시원한 곳에 들어가 ‘아무거나’ 먹기엔 세상에 맛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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