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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Jan 09. 2020

시장 홀릭

베트남의 재래 시장, 야시장 탐험

  사람이 많은 곳보다 한적한 곳을 좋아하지만 1주일에 1번은 꼭 찾게 되는 북적이는 곳이 있다. 바로 시장이다. 상상보다 더 날 것 그대로의 물건을 맞닥뜨릴 때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마트에서 보던 것보다 더 신선하고 저렴한 물건을 보면 행복해지는 마법의 장소이다. 


베트남의 시장은 새벽 3~4시부터 판매할 물건을 진열하느라 분주하다. 한국의 재래시장과 달리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꽃’이다. 아주머니들이 저녁에 열리는 꽃 도매 시장에서 받아온 색색깔의 꽃을 작은 수레에 잔뜩 싣고 파는데 그 앞을 지날 때면 꽃향기에 1단 사지 않을 수가 없다. 계속 더운 여름인 것 같다가도 아침에 꽃수레를 보면 시원한 여름, 덜 더운 여름, 아주 더운 여름 같이 계절의 흐름이 느껴진다. 아주 더운 여름이 지나고 덜 더운 여름이 왔을 때 만나는 연꽃이 가장 반갑다. 연잎에 곱게 쌓인 연꽃을 살 때면 괜히 마음도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입구 좌판에는 아침에 갓 만든 따끈따끈한 두부나 쌀가루가 들어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반미는 10000동(한국돈으로 500원)에 4~5개를 살 수 있어 가성비와 가심비를 두루 만족시킨다. 반미는 아침에 갓 구워 스티로폼 박스 안에 들어 있는데 종이봉투에 받으면 아직 따끈따끈하다. 맞은편에는 옥수수나 검은깨, 콩과 같은 곡물을 끓여 갈아서 만든 건강음료를 파는 곳이 있는데 옥수수 음료는 인위적이지 않은 단 맛이 매력이다.


  반미 봉지를 들고 시장 안 쪽으로 들어가면 새벽까지는 살아 있었을 것 같은 모습의 고기와 생선이 천장에 걸려 있거나 도마 위에 올려져 있다. 원하는 부위를 손으로 가리키고 원하는 만큼의 양을 살 수 있다. 시장을 다니면서 이미 죽었는데 아직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의 고기와 생선을 만나게 되니 이 참에 채식주의자나 되어볼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채소와 과일 가게도 오늘 갓 수확한 신선한 물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못, 하이, 바(1, 2, 3)해 가면서 손짓 발짓 필요한 채소들을 장바구니에 잔뜩 담아도 한 번도 3000원이 넘었던 적이 없다. 잔뜩 쌓여 있는 열대 과일 더미에서 맛있는 녀석을 고르는 것은 시장 퀘스트의 최고 난이도이다. 내가 용기 있게 요리조리 살피고 향기도 맡아 가면서 고른 날은 집에 가서 먹어보면 어쩐지 싱겁다. 자주 가는 단골집의 주인장이 골라 주는 것이 가장 맛있다. 


  잘 깎지도 못하면서 ‘1근에 얼마예요? 너무 비싸요, 깎아 주세요.’ 같은 베트남어도 연습할 수 있고, 다른 건 잘 못 알아 들어도 얼마인지는 알아 들어야 하니까 숫자 듣기 만큼은 기똥차게 느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베트남은 화폐 단위가 500~500,000까지 있고 숫자를 말하는 방법도 영어처럼 세 단위로 끊어 읽기 때문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시장에서 ‘10K’라고 적힌 글자를 발견한다면 10,000동을 의미한다. 머릿속으로는 ‘10000(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입에서 나와야 되는 말은 ‘10(십),1000(천)’이어야 한다. 차근차근 생각하면 이해는 되지만 실전에서 ‘10(십),1000(천)’을 듣고 10,000동짜리를 꺼내고, ‘100(백) 1000(천)’을 듣고 100,000동짜리를 꺼내고 ‘500(오백),1000(천)’을 듣고 500,000동짜리를 꺼내는 것은 오른손으로는 세모를 그리고 동시에 왼손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베트남의 시장은 보통 아침 장사가 끝나면 점심엔 낮잠 시간을 갖고 다시 해가 넘어갈 무렵에 영업을 시작한다. 시장 영업시간에 맞추어 아침에 조금 일찍 출근하거나 저녁에 퇴근버스를 타지 않고 시장에 들러 양 손 가득 장을 볼 때면 여기가 진짜 내 동네가 된 느낌이다.   


  지글거리던 아스팔트 도로가 따끈해지는 저녁이 오면 베트남 사람들은 집이 아닌 거리로 나온다. 야시장이 열릴 시간이다. 한적했던 거리에 좌판이 들어서고 천막이 펼쳐지고 알전구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면 불나방처럼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행객을 겨냥한 아오자이를 입은 여인이 그려진 각양각색의 기념품들, 요즘 동남아 어느 야시장에서든지 볼 수 있는 열대 과일 무늬의 시원한 파자마들, 야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숯불구이 음식들이나 과일들이 즐비한 야시장은 재래시장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야시장의 곁길로 들어서면 역시 길거리에 무릎 높이 정도 되는 플라스틱 탁자를 줄줄이 놓고 목욕탕 의자를 깔고 녹차나 커피를 마시며 해바라기 씨나 구아바 같은 주전부리와 함께 수다를 떨 수 있다. 바가지로 퍼 주는 1잔에 400원짜리 맥주를 마시며 거리의 악사들과 함께 밤을 노래하면 현지에 살고 있는 나도 오늘 이 도시에 도착한 듯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시장에 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무료한 일상이 될 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작은 탐험이 될 수도 있다. 눈을 반짝이며 시장 상인 분들에게 말도 걸어 보고 듣도 보도 못했던 물건을 사보기도 하고 먹어 보지 못했던 음식도 먹어 보자. 생활 속에서 작은 여행을 떠나는 것은 시장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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