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활여행자 Feb 22. 2020

내 집은 어디일까?

해외에서 집 구하기

  어릴 때 제발 이사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나는 20살 이후로는 거의 매년 이사를 해야 했다. 한국-중국-한국-베트남-대만 심지어 나라를 넘나들며 세간살이를 옮기는 것은 20년 치 하지 못했던 이사의 한을 풀고도 남았다. 


  특별히 어느 한 곳에 정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여기 1년 정도만 살아보면 좋겠다.’ 한 적은 있어도 ‘여기서 평생 살았으면 좋겠다.’ 한 적은 없었다. 나에게 이사란 세상에 나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느낌이다. 내가 머문 집이 하나의 점이 되고 수십 개의 점들이 모여 나만의 세상이 된다. 한 동네에 1년 이상 살다 보면 정도 들고, 동네에 단골집도 생기고, 눈 감고도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다. 그럴 때 ‘아! 다시 떠날 때가 되었구나!’하는 마음이 든다. 구글 지도에 내가 다녀간 곳을 '별'로 표시하고 있는데 세계지도 구석구석이 내 별로 가득하길 바라며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난다.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나면 한국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러 동네를 돌아보며 내가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천천히 집을 구할 수 있다. 해외에 나오면서는 1주일 남짓한 시간 안에 빨리 집을 구하고 가져온 짐을 정리하고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집을 구하는 조건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어디서 집을 구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였다. 뚜벅이에게 교통이 편리하고 중심지에 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도권이라면 단연 역세권, 베트남에서는 지하철이 없었기 때문에 위치는 직장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6km밖에 되지 않는 출근길도 출퇴근 시간에 걸려 막히면 40분이 걸리기 때문에 집이 멀면 꼼짝없이 길 위에서 1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교통체증은 다소 불편할 수 있겠지만 집 밖을 나가면 바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나 장을 볼 수 있는 시장 혹은 마트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해외에서 외국인, 그것도 여자가 혼자 사는 것은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 두 번째 조건은 '안전'이다. 최대한 안전을 생각해서 24시간 경비원이 있는 집, 아이를 키우는 가정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 집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길에 이상한 사람이 따라온다거나, 집 대문에 알 수 없는 표식이 생긴다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안전을 위해 셰어하우스를 하거나 주기적으로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등 집이 북적이게 했다. 


  위치와 안전만 괜찮으면 다른 부분은 적당히 타협을 했다. 집이 깨끗하면, 전망이 멋있으면 더 좋겠지만 집을 볼 시간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이나 대만은 전세제도가 없다 보니 계약이 끝나고 전세금을 돌려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집이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야만 집을 볼 수가 있다. 인터넷에서 집 사진을 보고 옵션을 확인하고 겨우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 집주인에게 퇴근하고 집을 보러 가겠다고 약속을 잡는다. 보러 가기로 했던 집은 저녁이 되면 이미 계약이 되었다는 연락이 온다. '내 눈에 좋은 건 남의 눈에도 좋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통하는구나 싶다. 어떤 날은 보러 가기로 한 세 집이 모두 취소되어 이 동네에 이렇게 집이 많은데 나 하나 계약할 집이 없다는 사실에 서럽기도 했다. 


  집주인과 어렵사리 통화를 하면 외국인이라고 꺼리는 경우도 있고, 외국인이라 관례적인 부분을 잘 모른다고 속이는 경우도 있다. 계약서를 쓸 때 한국어가 아닌 영어나 현지어로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계약서를 읽느라 내가 요구하고 싶은 조건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인을 하게 된다. 그렇게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수리' 부분을 정확히 명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의 설비 노후로 인한 문제가 있을 때 1주일 이내에 수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입자가 스스로 고치고 그 비용은 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문구가 중요하다. 나는 새 집 냄새에 민감해서 조금 낡아 보여도 최소 4~5년 이상된 집을 선호한다. 베트남이나 대만 모두 한국보다는 습한 기후이고, 나무로 된 가구도 많고 옵션에 따른 전자제품도 많아서 잔고장이 자주 발생한다. 흰개미 퇴치, 현관문 쇠 걸쇠 부러짐 수리, 식탁 의자 6개 다리가 모두 빠져서 수리, 막힌 하수구 뚫기, 에어컨 가스 충전, 3m 높이의 천장 전등 갈기, 좌변기 물 내리는 부분 수리 등등 상상하지 못한 집과 관련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주인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세입자는 한국이면 쉽게 해결했을 일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계약서에 저 문구가 들어가면 1주일 안에 어떻게든 주인이 사람을 보내서라도 해결해주려 노력한다. 일부러 고장 낸 것이 아니라 쭉 소모되어 오다가 내 차례에 고장이 난 부분은 집주인 쪽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데 금액을 반반 부담하자거나 미리 말을 안 했으니 세입자가 부담하라는 주인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래서 내가 베트남어가 늘고 중국어가 는다.      


  매년 새롭게 집을 구하는 것은 기대되면서도 한편 고단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사를 강행했다. 계속 한 집에 머무르면 떠나기 싫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 집이 내 집이 될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싶지가 않았다. 또 한 번의 큰 이사를 앞두고 있는 지금, 나의 집은 어디일까. 어떤 도시, 어떤 풍경 속에 살게 될까. 궁금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시장 홀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