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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어 Mar 13. 2024

이 지금

2022, <사소한 고백>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알람이라는 것은 너무 기분 좋은 음악으로 설정해 놓으면 때때로 잠에서 깨기가 어렵기에 보통 다소 시끄럽게 울리는 띠리링 기본 설정 음악으로 해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시끄러운 음악을 듣지 않아도 계획해 둔 시간에 일어나게 되는 일은 꽤 큰 행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이부자리를 대충 정리해 두고 거실로 나왔다. 아직은 다소 서늘한 공기를 품고 있지만 기분 좋은 햇살이 거실을 밝혀주고 있다. 고양이가 다리 사이로 걸어와서 얼굴을 부비적거린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아침 스트레칭 루틴으로 덜 깬 몸의 잠까지 깨워주면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완성된다.

 한쪽 팔은 펴고 한쪽 팔은 굽혀서 팔꿈치를 가슴으로 당기면서 호흡을 내뱉고, 힘을 풀며 호흡을 들이쉬고, 다시 당겨주면서 호흡을 내뱉고...


 세안과 양치를 마치고 물 한 컵과 함께 유산균을 털어 넣었다. 다음은 커피를 내릴 차례. 분명 잠을 잘 잤으니까 알람 없이 잠에서 깼을 텐데, 아직 눈과 뇌는 잠을 갈망하는 거 같으므로 보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굳이 잠이 오지 않더라도 커피는 마실 거다. 왜냐면 갓 내린 커피 향은 기분을 좋아지게 하니까. 그리고 맛도 좋으니까!

 그라인더에 원두를 하나 반 스푼 넣고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갈아준 뒤, 여과지 필터에 부어 한두 번 탁탁 쳐서 표면을 고르게 정리해 준다. 물줄기가 얇게 나오는 전용 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중간부터 살짝만 적셔준다는 느낌으로 물을 한 바퀴 둘러준다. 뜸이 충분히 들었다 싶으면 바깥쪽부터 천천히 물을 내려준다는 느낌으로 둘러준다. 물에 젖은 원두가 부풀어 오르면서 커피 향이 온 집안에 은은하게 퍼진다.

 산뜻한 러닝 복으로 갈아입고 난 뒤에는 잠깐 앉아서 유튜브 가이드 영상을 따라 명상한다. 방금 마신 커피 탓인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처럼 느껴진다. 의식적으로 느리게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코끝에 집중해 본다.


나는 모든 것이 좋아진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어려운 시절 지나가고 새날이 오고 있다.

모든 문제가 물 흐르듯 가장 자연스럽게 풀어진다.

나는 점점 더 좋아진다.

내 몸의 세포가 날마다 회복하여 새롭고 건강해진다.

내 마음의 원한과 번뇌가 자취 없이 사라져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나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내가 살아가기에 필요한 모든 것이 언제나 충족하게 따라온다.

내 삶은 여유로우며 생활은 부유하고 풍요롭다.

나는 점점 더 좋아진다.

나는 나 자신을 존중하며 내 곁에는 서로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함께한다.

나는 모든 것이 좋아진다. ...


 날씨가 풀려서인지 산책로에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보인다. 기지개 켜는 고양이와 오줌 싸는 강아지들과 인사를 나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발을 빠르게 굴러주면 몸에 열이 퍼지면서 쌀쌀한 기운이 서서히 사라지는 걸 느낀다. 상쾌한 공기가 몸속에 가득 번지면 남아있는 한 톨의 잠기운마저 달아나게 된다.

 가벼운 러닝 후에는 집에 돌아와 부드러운 스트레칭으로 긴장된 근육을 풀어준다. 아침은 간단하게 바나나와 샐러드, 그리고 닭가슴살로 영향을 골고루 채워준다. 매일 비슷하게 먹는 아침 식사이지만 샐러드드레싱을 바꿔준다거나 닭가슴살을 삶은 달걀로 대체해 준다거나 하는 작은 변화를 주면 매번 새로운 느낌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오후 일정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 들렀다. 짧은 시간이지만 일기를 쓰고 책을 읽으며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올해로 3년째 꾸준히 써온 5년 다이어리를 펴보았다.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가?”


 2년 전의 나는 이 질문에 따뜻한 물에 깨끗이 씻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기를 쓰는 일이라고 답하였고, 1년 전의 나는 좋은 소리, 맛, 향을 느끼는 일이라고 답하였다. 올해, 현재의 나는 나다울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라고 답하였다. 내년의 나는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수업 시간 10분 전에 교실에 도착하였다. 이번 주말에는 오케스트라 자리 오디션이 있어서 학생들도 나도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였다. 소리가 잘 나는 딱딱한 펜으로 보면대 끝을 탁탁 치며 박자를 세면 거기에 맞춰서 학생들이 연주한다.


레 레미레미 레 레미레미 레 레미레미 레 레미파미...


 완벽한 수준은 아니지만 학생들을 처음 만난 작년 말보다는 악기를 잡는 자세도 많이 좋아졌고, 소리나 음정도 좋아진 게 보여서 괜스레 뿌듯해졌다.


“선생님, 저희 토요일에 오디션 끝나면 맛있는 거 사주세요!!!!”


“이번주 수업 때 열심히 하고, 오디션 잘 보면 사줄게. 열심히 해야 사준다!!”


“앗싸! 야, 다시 한번 해보자. 하나 둘 셋 넷!”


 수업 때면 바이올린을 하는 시간보다 떠들고 장난치는 시간이 더 길던 아이들이 어느새 내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 번 더 뿌듯해진다. 저녁에 예정된 식사 시간을 더욱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세 타임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따뜻한 물을 텀블러에 담아 운전석에 앉았다. 수업 동안 소리를 지르느라 부운 목을 진정시키면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끝났어? 나는 이제 끝나서 출발하려고!”

“응, 나도 이제 막 끝났어. 비슷하게 도착하겠다!”

“응 조심히 와. 오늘 수업을 너무 열정적으로 했나 봐 목 아프고 배가 너무 고파 ㅋㅋ”

“에구 고생했어, 얼른 만나서 맛있는 거 먹자.”

“으응, 이따 봐!”


 간단하게 통화를 마치고는 매번 듣는 ‘퇴근길�’ 재생목록을 열어 the weekend – out of time을 재생했다. 시티팝 사운드와 어둑해진 보랏빛 하늘, 지나가는 차량의 번쩍이는 불빛이 제법 잘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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